아직도 서울, 도쿄, 오사카 등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생계를 책임지며 떠돌아다니고 있다.
일본 이와테대학 양인실 교수(인문사회과학부)의 강연 ‘여성의 디아스포라적 삶을 재현하기- ‘파친코’(2022)와 ‘폭싹 속았수다’(2025)를 중심으로’가 26일 오후1시 학관 201호에서 열렸다. 강연에서는 드라마 ‘파친코’와 ‘폭싹 속았수다’에서 드러난 여성 디아스포라의 쉽지만은 않은 삶을 논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란 본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또는 그 집단을 의미한다.
미국 드라마 '파친코' 속 여성 디아스포라의 삶
강연은 양 교수의 강의와 질의응답 순서로 진행됐다. 양 교수는 드라마 속 여성 디아스포라의 일생과 드라마의 역사적 배경에 관해 설명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의 삶과 이들의 일본·미국 이민사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한국계 미국인 민진 리(Minjin Lee)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 작품은 부산에서 태어난 주인공 선자의 3대 가족의 인생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의 정착하지 못하는 삶을 조명한다. 원작자 이씨는 드라마가 방영된 후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을 희생하면서 육아해 온 수많은 재일한국인 1세대 여성의 삶을 언급했다. 동아시아 여성의 삶에 집중한 이 드라마는 2010년대 유색인종을 가시화하는 대중문화 움직임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양 교수는 ‘파친코’에서 3세대가 1세대가 가지는 정체성 혼란에 공감하면서도 시대가 달라지고 이제는 1세대가 간 길을 그대로 가지는 않는다며, 디아스포라 간에도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석했다.
그는 드라마로 재현된 ‘파친코’의 한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양 교수는 “원작은 여성인 ‘선자’의 시점에서 시대별로 사건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데 반해 드라마는 손자 ‘솔로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며 “드라마는 원작과는 별개의 작품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원작자 또한 원작과는 다소 다른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파친코’ 프로듀서 테레사 강(Teresa Kang)은 남성 중심 서사로 전해져 온 이민자의 이야기를 여성 가장의 시선에서 드라마를 그렸다고 밝혔다.
양 교수는 ‘파친코’가 애플 TV+에서 만들어진 미국 드라마임에도 한국 드라마로 소비되는 양상을 지적하며 디아스포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오바마는 소셜 미디어에서 ‘기생충’(2019)과 ‘파친코’를 한국 드라마로 언급했다”며 “그 후 언론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파친코’를 ‘기생충’에 버금가는 영화”라 소개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파친코는 ‘한국 드라마’로 명명되곤 했다. 양 교수는 “한국 사람들은 한국과 관련된 것이면 한국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며 “한국 뿌리를 가진 사람 중 외국에 있는 사람이 약 25%인데도 여전히 한국은 디아스포라에 무지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여성 3대의 이주 서사를 담고 있는 '폭싹 속았수다'
이어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 드러난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강연이 이어졌다. ‘폭싹 속았수다’ 속 광례는 경기도에서 태어나서 제주로 이주했다. 그의 딸 애순은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애순의 딸 금명은 제주에서 태어나서 서울로 상경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에서 1세대와 3세대의 삶이 닮아 있었다.
‘폭싹 속았수다’는 주인공 3대가 모두 여성인 여성 서사 작품이다. 양 교수는 “디아스포라는 이들처럼 돌아갈 고향이 없는 사람을 칭하는 말”이라며, “한 다큐멘터리에서 ‘그렇다면 우리는 태어난 고향이 아닌 우리가 죽는 곳은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라는 말을 듣고, 태어난 곳에서 죽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을 일컫는 논의가 시작됐음을 확인해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두 작품이 한국의 역사와 여성 서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노스탤지어(고향이나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감정)와도 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노스텔지어와 레트로 붐이 일어나 한국의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성 서사의 경우 ‘미투 운동’ 이후 한국 대중문화가 여성과 소외계층에 집중한 결과라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강연을 통해 여성 디아스포라의 삶에 대한 이해도 높여
강의가 끝난 후 양 교수와 참석자 간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천서윤(국어국문학 전공 박사과정)씨는 “자기 집안이 아닌 곳에서 생계를 이뤄야 하는 여성 디아스포라 삶은 모성과 떨어질 수 없는 것 같다”며 “‘파친코’ 원작에서 표현된 여성의 디아스포라적 삶이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에 양 교수는 작품 속 디아스포라마다 재현된 모성의 형태는 다르다고 답했다. 또한 그는 “‘파친코’의 엔딩 자막 ‘우리는 견뎌냈다’는 여성 주인공이 극한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살아왔음을 보여줘 우리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덧붙였다.
강연에 참석한 사람들은 여성 디아스포라를 더 깊게 알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천씨는 “여성 디아스포라적 삶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와 최근 콘텐츠의 연결이 시의적으로 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강연이 이해도 잘 됐다”는 소감을 남겼다. 류연희(국어국문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평소 재미교포들이 쓴 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 특강을 통해 작가들이 어떤 마음과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었는지 알 수 있어서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