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도, 이번 달, 아니 이번 주의 마녀는 누구인가. 한국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현대판 단두대’ 정신에 잡아먹혔다. 과거 마녀사냥이 불에 타 죽는 여인을 만들어냈다면, 지금은 여론이라는 횃불이 특정인을 태워버린다. 한국의 달궈진 냄비에 양동이째 들이부어지는 가십거리들은 수만 개의 계정 사이에서 씹히고 맛봐지고 물어뜯긴다. 기어코 목숨 하나를 내어줘야만 그 냄비는 차갑도록 식는다.
미디어는 사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하나의 소비재로 전락했다.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위해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을 앞세운다. 심지어는 보도가 나가기 전에 이미 SNS에서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과정조차 ‘쇼’로 취급되며, 반응이 부족하면 진정성 없는 사과라며 또다시 비난이 쏟아진다. 같은 실수를 해도 사람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다르며, 특정 성별의 행동은 더 쉽게 논란이 되고, 더 오래 비난받는다.
뉴스는 더 이상 사건을 분석하거나 해결책을 모색하는 역할을 하지 않는다. 대신 짜인 서사 속에서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 분노를 유도하고, 대중은 그 과정에서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얻는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현실 속 피해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가십 하나가 던져지면, 사람들은 더 자극적인 이야기로 이동하며 끝없는 소비를 이어간다. 딸기 한입에 모든 것이 비호감으로 평가된다. ‘노브라’를 했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보이콧 당한다. 그저 장난으로 시작된 마녀라는 외침은 천만 명이 믿는 사실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광장의 단두대 앞에서 사람들은 분노로 자신의 조롱을 정당화한다.
인터넷과 SNS는 정의를 구현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빠르고, 가장 자극적인 정보만이 살아남는 환경을 조성하며, 대중의 분노를 쉽게 유도한다. ‘이 사람, 뭔가 수상해’라는 댓글 하나가 거대한 폭풍을 불러오고, 한순간에 가해자가 만들어진다. 외모, 옷차림, 말투까지 공격 대상이 되며, 도덕적 심판이 이어진다. 비판을 넘어선 조롱과 희화화는 정당한 처벌이 아니다. 광장의 유희 속에서, 법과 제도가 해결해야 할 문제는 희미해진다. 온라인 익명성은 책임 없는 정의감을 부추긴다. 사람들은 얼굴 없는 판사가 되어 타인을 심판하고, 조롱하고, 단죄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은 애써 외면한다. ‘나는 단지 의견을 말했을 뿐’이라는 변명 뒤에 숨어, 끊임없이 돌을 던진다. 하지만 정작 돌을 맞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같은 논란이라도 특정인은 더욱 가혹하게 평가받고, 논란이 사그라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조롱하는 것은 비판이 아니다. 낙인을 찍고,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것이 반복되고 있다.
왜 우리는 이렇게 분노하고 소비하는가. 이 현상은 ‘집단착각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개인이 스스로 사고하는 대신, 다수가 믿는 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이다. 인터넷과 SNS의 극단적 여론은 곧 집단의 ‘확신’으로 변하고, 사람들은 이에 동조하며 돌을 던지는 행위를 마치 도덕적 의무처럼 받아들인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동이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준다는 점이다. 정의를 실현했다는 착각 속에서 분노를 표출하며, 이는 곧 하나의 집단적 놀이가 된다. 이론이 이념으로 변질되며, 논리적 사고 없이 폭력적 배척이 정당화된다.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편리한 결론을 선택하는 사회에서 마녀사냥은 더욱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언론은 선정적인 보도를 멈추고, 대중은 신중하게 정보를 소비하며, 법과 제도는 마녀사냥을 조장하는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상황에 따라 가혹하게 평가되는 구조, 사생활을 침해당하고 인격적으로 공격받는 문화는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
여론의 불길은 한 사람을 집어삼키고, 타오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나간다. 그러나 불은 통제될 때 비로소 온기를 전한다. 이제는 무작정 불을 지필 것이 아니라, 그 불이 무엇을 밝히고, 무엇을 태우고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 불은 쉽게 타오르지만, 방향을 잃으면 모두를 위협하는 들불이 된다. 순간의 분노는 빠르게 퍼지지만, 그 감정이 언제나 정당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타당한 문제 제기도 무분별한 비난에 묻혀버리고, 감정적 동조는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연기가 된다. 우리 사회가 키우는 불길이 무엇을 태우고 있으며, 그 열기가 향해야 할 곳이 어디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제는 ‘단두대의 나라’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