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그날. 우리 모두 처참한 심정으로 내내 부끄러움을 곱씹었던 그날. 썩 유쾌하지 않은 일로 각종 일간지 톱을 장식했던 2월26일의 이야기다.

이런 지옥은 상상해 본 적이 없건만. 학보사로 출근하던 길이었다. 우리대학 정문에 높다란 깃발이 솟아 있었다. 내란 수괴의 웃는 안면이 커다랗게 인쇄돼 있었다. 미국 국기와 한국 국기를 동시에 든 사람들이 막힌 정문을 에워싸고 침을 튀기며 무어라 소리쳤다. 정문 편의점 앞에는 극우 남성 단체의 검은 봉고가 서 있었다. 몇몇은 라이브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우두커니 바라만 봤다. 마음이 무섭도록 가라앉았다. 이내 학생증을 놓치지 않게 꽉 쥐고, 후드를 뒤집어쓰고, 어쩐지 공기가 탁해 보이는 그곳을 비집고 들어갔다. 이렇듯 재앙은 난데없이 발생한다.

재난 상황이 닥치면 현실의 균열이 더 크게 벌어지며 선명해진다. 탄핵 반대(탄반) 시위대는 중국인, 북한, 여성, 페미니스트, 정치인, 복지 제도, 어떤 공통점도 없는 요소를 한데 모아 맥락을 가늠하기 어려운 혐오를 토해냈다. 단지 자신이 해석하는 세계가 얼마나 옳은지 설파하는 데에만 골몰하는 듯했다. 이태원 참사, 채 상병 사건, 오송 지하차도의 재난, 일전의 계엄 사태, 여타 국가적 재난 및 사건 사고 등… 이런 일을 보고 겪은 이들이 말하는 고통은 외면당하는 현장이었다.

사람은 성장 배경이나 고유의 인간성이 다르기에 저마다의 세계관을 가진다. 하나의 현실에서 각자가 다른 진실을 믿는 이유다. 그래서 저 치들에게 그릇된 믿음이라는 설교는 무용하다. 그들이 그러하듯 나도 어떤 사안에 대해선 그러하겠지. 하지만 성찰 없음, 겸허함 없음은 문제가 된다. 불행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딱히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물음표가 생긴다. 저런 맹목적인 믿음은 어디서 비롯됐나? 예속도 자발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들을 자발적 예속 상태로 만들었나?

정문에서 발언을 마친 탄반 시위대가 대강당 계단으로 장소를 옮겨왔다. 탄반 시위대 사이에는 학생 대표가 될 뻔했던 사람도 있었다. 캐리어를 든 학생이 그들을 쫓아 뒤늦게 달려왔다. 학생의 손에는 ‘윤석열 퇴진’ 피켓이 들려 있었다. 오르막길을 뛰어오른 탓에 숨을 몰아쉬는 학생 곁으로 탄반 시위대가 서서히 모여들었다. 넋이 빠진 학생을 막아서고 “정신차리라”며 다그치는 이도 있었다. 그와 학생 사이에 끼어들어 잠시 틈을 벌렸다. 아랑곳 않고 탄반 시위대는 더 과격하게 달려들었다. 그들 속으로 학생이 말려들어갔다. 그들은 학생의 피켓을 빼앗아 바닥에 던지는가 하면, 주변을 둘러싸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경비원이 탄반 시위대를 제지했다. 인파 속에서 학생이 다시 보였다. 눈이 마주쳤다. 소리 없이 많은 이야기가 지나갔다. 곧 그가 입을 열었다. “머리채 잡혔어요…” 1월19일 윤석열이 구속되자 서부지법에 난입해 폭행 및 시설 훼손을 자행했던 폭동 사태가 겹쳐 보였다. 이런 세력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지난한 투쟁을 거쳐온 우리 학교 안까지 데리고 들어왔구나.

‘나르시시즘’은 고대 신화 속 ‘나르키소스’의 이름을 딴 용어다. 나르키소스는 강물 속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지만 자신이 아니다. 본인 눈으로 바라본 강물에 비친 이상적인 타자였다. 극우 세력의 자발적 복종도 비슷한 작동 방식이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순종하는 이유가 아니라 순종한다는 사실이 한 사람을 신민으로 만든다.” 자발적 복종은 세계와 자신의 관계를 밀착시킨다. 자신의 세계관 자체를 이상적 타자로 상정한다. 그들은 자기 세계관으로 바라본 현실이-부정 선거가 사실이고 계엄은 정당했다는, 현재 탄핵 찬성 측은 중국인이 대다수고 공산주의자일 것이라는-가장 옳다고 믿는다. 

끝내 나르키소스는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본인임을 깨닫고 슬픔에 빠져 죽는다. 하지만 극우 세력은 아직 세계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다. 한국 근현대사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그들은 타인의 고통으로 한눈팔지 않고 충실하게, 사랑하는 세계가 있는 강물만을 오래오래 들여다보고 있다.

그렇게 한바탕 소동이 지나갔다. 음료 한잔할 요량으로 ECC 내부 카페에 갔다. 탄반 시위대가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극우 취급을 받아서 억울했는데 이렇게 같이 있으니 좋다”, “사람들이 뉴스만 믿어서 곤란하다”고 대화하고 있었다.

곤란한 쪽은 듣는 나였다. 극우 남성 단체가 학생들을 괴롭히는 모습을 보고도 떳떳한가. 페미니스트 뒈지라고 위협하던 이들을 보고도 수치를 모르겠나. 웬 백인 남성이 공산주의자라며 우리 학생들에게 고함치는 게, 속이 시원했나… 만약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저들 사이에 앉아 만족스럽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을 테지. 세상은 무척이나 넓다. 구태여 이해하지 않아도 될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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