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부터 이화여대는 내 꿈이었다. 초등학생 때 나는 작은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방학을 맞아 교회를 도우러 서울에서 경상도까지 온 우리대학 학생들을 만난 덕이었다. 어린 내 눈에 그들은 학교 얘기를 할 때 눈이 반짝였고, 그런 사람들이 있는 학교는 너무 좋은 학교일 것 같았다. 나는 그렇게 꿈을 가지게 됐고, 중학생을 지나 고등학생까지도 한 대학만을 바라보고 공부했다. 어렵게 재수까지 한 끝에 꿈을 가진 지 10년 만에 원하던 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입학하고서는 캠퍼스에 있는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꿈에만 그리던 곳에서 수업을 듣고, 학교생활을 하며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이 나를 행복하게 했다. 예쁜 교정이 있고, 신촌이라는 좋은 위치에, 벗이라는 따뜻한 호칭이 있는 학교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학교도 좋고, 신문도 좋아해 이대학보에까지 들어오게 됐다.

한 해 학보사를 활동하며 본 학교는 내 꿈처럼 완벽한 모습만은 아니었다. 여러 과에서 교원이나 수업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각 단대나 건물별로 서로 다른 불편함을 겪고 있기도 했다. 냉방시설이 제대로 되지 않은 체육관, 녹물이 나오는 조형예술관, 누수 사고가 발생한 기숙사부터 교원이 부족한 무용과, 인지대까지 많은 상황을 보게 됐다. 계속해서 고쳐지지 않는 문제를 두고 학교에 전화하면 돌아오는 답변은 노력 중이라는 것이었다. 학교도 학교의 속도대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지만, 문제를 직접 몸으로 느끼는 학생의 입장에서는 아쉽게 느껴지는 변화였다. 학생들은 그런 상황에 포기하고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 학교에 계속해서 변화를 요구했다.

학보사 기자가 되면 생기는 버릇이 있다. 학교 곳곳에 붙은 홍보 포스터와 대자보를 절대 지나치지 못하고 하나하나 읽게 된다. 좁은 내 생활반경 안에서도 일 년간 읽은 대자보는 몇십 장이 될 것이다. 모두 각자의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학교의 변화를, 심지어는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붙여둔 것이었다. 새삼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을 안 지키는 사람들이 우리대학 학생들이 아닌가 싶었다. 이들은 이곳을 떠나지 않고 마음을 두고 더 좋은 학교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에 힘을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대학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예쁜 교정이나 긴 역사보다도 이것들을 지켜온 학생들인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문제를 바꾸는 사람들은 그곳에 마음을 둔 사람들이었다. 이번 호 신문에선 광장에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는데, 이들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꿈꾸며 나온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무언가를 변화시키는 일이든, 변화를 막는 일이든 모든 일은 마음이 있어야 할 수 있다. 그때 내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학교에 마음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되돌아보게 됐다. 입학할 때 설렘과 행복으로 가득했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이화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그 마음이 지금은 그냥 내가 기자니까 관심을 가지는 정도로 변해있었다. 내가 속해 있는 취재 1부서는 교내에 더 관심을 가지고 취재하는 부서다. 그중에서도 수업팀을 지원해 학생들의 문제에 더 가까이 있고자 했다. 스스로 초심을 잃었음을 알아본 순간 내가 앞으로 어떤 취재를 해야 할지 생각하게 됐다. 온 맘 다해 기사를 쓴다고 변화가 생기는 거 같지 않아도 나는 더 노력해야 한다. 나보다 더 큰 마음을 가지고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도 10년이나 기대했던 학교에 벌써 실망하기는 이르다. 그래도 이곳이 내 마음이 있는 곳이라는 사실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혹시 실망했을지라도 아직은 학교에 마음을 좀 더 둬야 한다. 이건 비단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이 글을 읽고 있을 독자들께도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다. 이번 등록금 납부 기간 고지서를 보니 등록금의 숫자가 바뀌었다. 인상된 등록금은 어디로 가는지, 학생들이 만족할 수 있을지 계속 마음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새로이 바뀐 총장과 처장단이 어떤 일들을 이끌어갈지, 새로이 바뀐 총학생회가 어떤 학생 자치를 이끌어갈지 지켜봐야 한다. 이들 모두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당연히 학교를 좋은 변화로 이끌어갈 거로 생각하지만, 그 방향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언론이 하는 일이고, 기자의 마음으로 하는 일이다. 그리고 타당하지 않게 느껴진다면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이곳을 사랑하는 학생 구성원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대학보 1면에 적힌 성구처럼 마음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스스로 알고 그 마음에 품은 소망이 현실이 되길 꿈꾸고 행동해야 한다. 그 마음을 지킬 때 살아가는 힘을 얻어 행동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쳐도 계속할 수 있는 용기가 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다시 내 마음이 있는 이곳에서 모든 좋은 변화가 시작되고, 소망이 이뤄지길 기대한다. 이곳은 변화가 시작되는 곳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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