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지옥에서 온 판사(2024)

출처=SBS
출처=SBS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재판 결과에 화 한번 안 내본 사람이 있을까. 심신 미약 상태라 감형, 만취 상태라 감형, 미성년자라 감형…. 법에 적힌 그 많은 감형의 사유들은 반성도 안 하는 끔찍한 범죄자들을 숱하게 용서해 왔고, 우리는 그 장면을 목격하며 “정의는 죽었다”라는 씁쓸한 절망을 거듭해 왔다. 물론 몇 차례 논란이 불거진 뒤, 법과 판례도 변하기 시작했다지만 안타깝게도 사법부가 정의를 실현해 주리라는 믿음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하다. 그래서일까? 최근 사적 복수를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범죄자를 처단하는 ‘악마’가 주인공인 <지옥에서 온 판사>(SBS)도 그 흐름과 맞닿아 있다.

<지옥에서 온 판사>의 주인공 강빛나(박신혜 분)의 직업은 현대 사회의 정의 심판자, 판사이다. 하지만 판사라는 직함이 무색하게도, 빛나는 얼토당토않은 감형 사유로 범죄자들을 풀어주는 나쁜 판결만을 일삼는다. 가해자를 심판하기는커녕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이나 박아 넣다니… 주인공이 뭐 이래! 싶겠지만, 사실 빛나가 엉터리 판결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범죄자들을 직접 처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빛나의 진짜 이름은 유스티티아. 그는 사후세계인 지옥에서 살인자 전담 재판관을 맡고 있는 악마이다. 이런 유스티티아가 인간 세상에 떨어진 이유는 재판 중 죄인을 잘못 처단하는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 강빛나의 몸에 들어가게 된 유스티티아는 실수에 대한 만회로, 사람을 죽였음에도 반성하지도, 용서받지도 못한 인간 10명을 처단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빛나의 임무 수행 방식은 간단하다. 먼저 판사라는 직위를 통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들을 찾아낸 뒤, 일부러 온갖 감형 사유를 붙여 그들을 풀어준다. 그리고 재판이 끝난 후 그들을 찾아가 그들이 피해자를 괴롭힌 방식과 똑같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되갚아 준다. 교제 폭력범에게는 교제 폭력으로, 가정폭력범에게는 가정폭력으로 말이다. 그렇게 빛나는 가해자들로 하여금 피해자의 고통을 경험하게 한 뒤, 궁극적으로는 그들을 살해한다. 단순한 복수를 넘어 범죄자들을 직접 살해하기까지 하는 여성 주인공이라니, 전무후무한 캐릭터이다.

하지만 악에 대한 징벌이 통쾌한 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마음 한구석에는 ‘가해자에게 폭력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것이 과연 정의일까?’ ‘법을 제쳐두고 행하는 징벌이 과연 정의일까?’하는 의문이 계속해서 피어오른다. 왜냐하면 사이다 같은 사적 복수가 픽션에서만 가능한 일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경찰 한다온(김재영 분)이다. 판사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판결에 절망하든 말든 자신의 편의를 위해 가해자들을 풀어주는 빛나와 달리, 다온은 끊임없이 가해자들을 법 앞에 세우려 노력한다. 그는 빛나가 아무리 범죄자가 죽었으면 오히려 좋은 거 아니냐 같은 말을 해도, 이를 “법으로 처벌받지도 않고 죽어서 분해요”(4회)라고 받아치며 법치주의 국가의 정의를 말한다. 초반의 빛나는 이러한 다온에 코웃음을 치고 지나가지만, 점점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피해자의 사연에 공감하게 된다. 결국 빛나는 피해자를 위한 판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판사’로서 피해자를 위로할 수 있는 판결을 내린다.

마지막 회에서 드라마는 강빛나의 입을 빌려 말한다. 법은 “피해자에 대한 애도와 죽음 같은 삶을 살아온 피해 유가족에 대한 위로”를 건네야 한다고. 그러려면 피해자들이 법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피해자와 피해 유가족이 용서하지 않는 죄는, 법 또한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고”. 그게 법원에 정의의 여신이 저울과 칼을 들고 서 있는 이유라고 말이다.

<지옥에서 온 판사>는 빛나가 진정한 판사로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가해자들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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