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 있는 센서만으로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하고, 스마트폰이 땀 냄새를 분석해 건강상태를 측정한다. 후각을 감지하는 스마트폰이 개발되면 가능해지는 일이다. 다른 감각에 비해 후각이 디지털화되기까지의 과정이 매우 복잡하지만, 후각을 디지털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전까지 상상하지 못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박태현 교수(식품영양학과) 연구팀은 서울대 오준학 교수(화학생물공학부)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인간 후각 수용체와 뉴로모픽 소자를 활용한 인공 후각 시스템 기술을 개발했다. 박 교수는 “인공 후각 시스템 기술을 기기에 접목한다면 냄새를 감지하는 스마트폰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 연구팀의 연구는 5월23일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게재됐다. 박 교수를 만나 인공 후각 시스템 연구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람의 코를 닮은 뉴로모픽 소자를 개발해 인공 후각 시스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박태현 교수. <strong>이유민 기자
사람의 코를 닮은 뉴로모픽 소자를 개발해 인공 후각 시스템 연구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박태현 교수. 이유민 기자

 

냄새를 반도체로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다

박 교수가 ‘냄새’가 무엇인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1990년대, 후각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로 2004년 노벨생리학상 및 의학상을 받은 후각 수용체 연구는 후각 연구 분야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인간의 콧속에 냄새 분자의 변환 장치인 후각 수용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낸 연구로, 냄새도 분자 차원에서 분석하고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이 논문 결과를 바탕으로 박 교수는 "냄새를 맡는 기기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박 교수를 비롯해 많은 연구자들이 후각을 인식하기 위한 시스템을 연구했지만 정밀히 후각을 인식하는 장치를 만들지는 못했다. HPLC(고성능 액체크로마토그래피·High-Performance Liquid Chromatography), GC(가스 크로마토그래피·Gas Chromatography) 등 ◆크로마토그래피를 이용해 냄새를 구분하는 화학 분석 장비가 개발됐다. 하지만 화학 분자를 분석하더라도 냄새를 명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 박 교수는 "냄새라는 것은 화학 성분 그 자체가 아니라, 화학 분자가 인간 콧속의 다양한 종류의 후각 수용체와 결합하여 생성하는 패턴 정보이기 때문에 화학 성분의 분석이 냄새를 대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의 후각 수용체를 닮은 인공 후각 수용체를 만들어 기기에 적용한다면 냄새를 맡는 기기를 만들 수 있다. 현재 박 교수 연구팀은 냄새 분자들과 결합하는 인공 후각 수용체를 만드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뉴로모픽 소자로 인공 후각 시스템의 새로운 길을 열다

박 교수 연구팀은 뉴로모픽 소자에서 이전까지의 인공 후각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할 답을 찾았다.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냄새 분자 고유의 패턴 정보를 만든다. 박 교수 연구팀과 오 교수 공동 연구팀은 ◆뉴로모픽 소자를 활용해 이 패턴 정보를 기억할 수 있는 후각 정보 기억 장치를 개발했다. 과거에도 '전자코' 기술 등 냄새 분자의 패턴을 활용해 냄새를 인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전자코 기술은 고분자 플라스틱이나 산화철 등을 화학적으로 변형시킨 센서 소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단순한 구조의 화학 소자로 구성된 전자코 센서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냄새만을 구별할 수 있다. 화학 소자들은 인간 후각 수용체라는 복잡한 구조의 단백질을 대신하기는 어렵다. 박 교수는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단백질의 일종이기 때문에 3차원적으로 매우 복잡한 구조를 가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와 오 교수 공동 연구팀은 단백질인 후각 수용체 소자와 그 소자가 만든 패턴을 기억하고 저장하는 기억 소자인 뉴로모픽 소자를 합쳤다. 인간의 후각 수용체는 인공적으로 생산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많은 양의 후각 수용체를 확보하기 위해 박 교수 연구팀은 인간의 후각 수용체 유전자를 자른 후, ‘플라스미드'라고 불리는 운반체에 붙여 대장균 속에 집어넣었다. 이 수용체가 대장균 속에서 과발현되고, 이 수용체를 분리해 지질 성분과 섞으면 스스로 구조를 형성해 인간 콧속에 있는 것과 매우 유사한 후각 수용체의 구조를 갖게 된다. 이를 패턴 정보를 생성하고 저장하는 센서에 장착하면, 냄새를 감지하는 기기를 만들 수 있다.

박태현 교수는 인간의 콧속에 있는 후각 수용체와 유사한 나노 디스크를 개발했다. <strong>이유민 기자
박태현 교수는 인간의 콧속에 있는 후각 수용체와 유사한 나노 디스크를 개발했다. 이유민 기자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올 인공 후각 시스템의 미래는

박 교수는 인공 후각 시스템이 실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 교수는 특히 “질병 진단의 측면에서 가장 기대된다”고 말했다. 일례로 인공 후각 시스템이 상용화되면 폐암 환자가 내뿜는 냄새를 인지해 폐암을 진단하고, 소변의 냄새를 감지해 전립선암 환자를 구별해낼 수 있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뿜는 독특한 냄새가 있기에 스트레스로 인한 냄새를 감지해 피부 미용에 도움을 줄 수도 있다. 박 교수는 냄새를 감지해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건조를 방지하고 피부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의료기기 개발을 위해 화장품 회사와 함께 연구 중이다.

박 교수는 디즈니 만화책 '미키마우스와 놀라운 냄새 기계’(Mickey Mouse and the Marvelous Smell Machine)를 내보이기도 했다. 책 속의 괴짜 과학자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냄새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발명했다. 박 교수는 "아직 즐거운 상상에 불과하지만 미래에는 만화와 영화 속에서만 등장했던 냄새를 내뿜는 장치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냄새 정보를 감지하는 기술이 만들어진다면, 냄새를 구현해내는 기술 개발에도 가능성이 생긴다. 인공 후각 시스템을 통해 냄새를 정보화하고 패턴으로 기억할 수 있다면 패턴 정보를 통해 냄새를 조합하고 만들어 실제로 냄새를 구현하는 장치가 만들어질 수 있다. 박 교수는 “(이러한 장치가 만들어진다면) 미래에는 내가 맡고 있는 냄새를 휴대기기로 전송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친구도 똑같이 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후각 수용체 소자를 통해 냄새를 시각화하고 코드화해 기기에 적용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박 교수는 현재 연구팀 학생들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인공 후각 시스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크로마토그래피: 분자들이 고정상과 접촉해 흐르는 이동상 사이에 분배되는 성질을 이용해 화합물들의 혼합 상태를 구성 성분별로 분리하는 방법

◆뉴로모픽: 뉴런을 뜻하는 neuron과 형태를 뜻하는 morphic의 합성어로, 뇌와 신경세포의 구조와 특성을 모방한 인공지능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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