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하(국문·17년졸) 농민신문 기자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를 2017년에 졸업하고 현재 농민신문사에서 문화부 차장기자로 일하고 있다. 전통주를 주제로 한 기획기사로 2023년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했다. 최근 전통주에 관한 에세이 ‘취할 준비’를 출간했다.

 

주량 석 잔 기자와 술이라는 적 

직업은 농민신문 문화부 차장기자. MBTI는 ENTJ. 취미는 양궁과 게임, 야구 보기. 그리고 주량은 석 잔. 기자는 모름지기 술을 잘 마시는 직업이라고 알려졌는데도 하찮은 주량이다. 이 주량으로 4년 동안 농민신문에서 ‘우리술 답사기’를 연재하고, 인스타그램에서 ‘술플루언서’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위즈덤하우스에서 ‘취할 준비’라는 주류 에세이를 출판했다. 서울 서대문역 인근에 있는 농민신문사는 농협 소속 언론사로, 유료 부수 약 35만 부(전국 5위)를 발행하고 있다. 

대학 시절부터 학보사를 하고 언론고시를 거쳐 어렵사리 기자가 됐건만. 내게 또 다른 산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술’이었다. 술은 일생일대 ‘최악의 적’이었다. 주량이 소주 석 잔이라 술로부터 도망가기에 바빴고, 회식 자리는 늘 힘들었다. 그때 빚은 실수담을 늘어놓자면 ECC 한 바퀴를 돌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 내게 문화부에 온 첫해에 ‘우리술 답사기’ 라는 기획이 맡겨졌다. 우리나라 양조장을 탐방하는 기사였다. 다른 문화부원 전부가 술을 사랑하고, 나보다 술을 잘 마셨는데도 말이다. 당시 부장에게 “왜 술 제일 못마시는 저한테 기획을 맡기느냐”라는 질문을 하자 “술을 못마시니까 안 놀고 일만 하고 올 것 같아서”라는 반농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1%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

우리술에 관한 기사를 써야 했지만 처음엔 아무것도 몰랐다. 짐처럼 맡은 기사를 한동안 바보처럼 꾸역꾸역 버텼다. 어느 날 내가 쓴 기사를 훑어보는데, 내용이 비슷비슷한 게 술이름만 바뀌었을 뿐 깊이가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 이런 식으론 안 되겠다는 경각심이 들어 공부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간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반엔 ‘우리술’이라는 단어에 눈을 반짝거리는 애주가들이 가득했다. 자격증을 딴 이후에도 직접 누룩을 만들고 술도 빚었다. 가랑비에 옷깃이 젖듯, 나도 우리술의 세계에 점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엔 양조장이 1400개나 있다는 사실, 매력적인 우리술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배웠다. 

지식이 쌓이고 알아듣는 게 많아지자 그 전엔 보이지 않던 문제도 차츰 보였다. 가령 전통주 산업은 빠르게 발전하는데, 주세법이 이를 미처 못 좇아가는 형국이었다. 종가세, 종량세 문제나, 20%로 정해진 부재료 첨가 비율, 생산 용량 문제 등 취재하면서 드는 의문점을 한 개씩 적어 두다보니 이것도 기사가 되겠다 싶었다.

문화부 후배들과 함께 전통주 현황, 문제점, 발전 가능성을 담은 기획을 만들어 ‘1%의 시장, 전통주 붐은 온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주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주류시장에서 1%대라서 붙인 제목이다. ‘기호식품’이나 ‘사치재’ 같은 술의 산업적·경제적 측면보다 우리 농산물로 빚고, 전통을 이어오는 술의 역사적, 사회문화적 가치에 주목했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프랑스의 샴페인, 일본의 사케를 취재하러 해외 양조장과 증류소도 다녀왔다.

2023년 가을, 기사는 19회, 21면에 걸쳐 연재됐다. 지금까지 전통주를 주제로 다룬 심층 기획 중에선 국내에서 최장 기획이다. 기사는 많은 이들에게 전통주 가치에 대한 화두를 던졌고, 그해 국정감사 참고 자료로도 사용됐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과 농협회장 ‘특종상’도 받을 수 있었다. 

 

최악의 적이 ‘내 편’이 되기까지

얼마 전, 위즈덤하우스에서 책 ‘취할 준비’ 를 냈다. 취재하고, 풋살대회를 나갔던 지난 해 남는 시간을 활용해 틈틈이 쓴 것이다. 우리 술을 주제로 한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지만 나는 이 책을 ‘알쓰’가 술과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이자, 우리술을 탐방하는 ‘여행기’, 그리고 우리술을 알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가이드북’이라고 정의한다. 

세상에 어엿하게 나온 책도 제법 기특했지만, 무엇보다 술이라는 적을 ‘내 편’으로 만든 사실이 뿌듯했다. ‘하면 된다’라는 남들에게 감히 말 못할 촌스러운 구문을 가슴 속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술은 평생 극복하지 못할 어떤 것이었다. 지금도 누군가 “주량 늘었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젓는다. 여전히 술 한 잔에 얼굴이 빨개지고, 주량 이상으로 마시면 두드러기가 나서 팔 접히는 곳을 긁는 신세다. 달라진 게 있다면 오히려 싫은 걸 받아들이는 태도다. 못하는 걸 극복 해낸 경험이 있으니 어려운 일도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간 할 수 있겠지”라는 꽤 여유로운 생각이 피어 오른다. 늘 잘하고 싶고, 빨리 이겨내고 싶은 조급증 현대인에겐 쉽게 가질 수 없는 큰 선물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조금 진부하다. 그래도 지금 마음 속에 갈등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일단 해보라고 응원하고 싶다. 대신 하다가 금세 그만두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될 가능성이 크니, 뭐든 꾸준히 오래해 보는 걸 추천한다. 힘든 일, 지금은 하찮아 보이는 일도 3년이 지나면 이력 한 줄이 된다. 그게 자신도 모르는 훗날에 나를 지지해주는 든든한 아군이 될 수 있다.

박준하(국문·17년졸) 농민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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