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인문여행작가

우리대학 사회과교육과 1983년 졸업. 출판계에서 일 하다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가 됐다. 이후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책들을 집필하며 작가로서의 두 번째 삶을 살고 있다. 저서로는 『역사가 보이는 조선 왕릉 기행』, 『궁궐, 그날의 역사』, 『잘! 생겼다 대한민국』, 『대한제국 실록』, 『펭귄쌤과 함께 떠나는 우리 근현대사 여행』 등 다수가 있고 2010년 ‘조선일보 논픽션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내가 책벌레가 된 것은 세 살 위 오빠와의 경쟁에서 비롯됐다. 초등 5학년이던 나는 중2 오빠의 독서 달리기를 숨차게 좇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광수 전집, 펄 벅(Pearl Buck) 전집, 대하소설 ‘대망’ 등 예전에 웬만한 집에는 한 질씩 있었다는 그 덤핑 전집들을 앞다투어 섭렵했다. 그리고 삼국지. 아직 제대로 된 국역 본이 없던 당시, 일본어 중역본인 열 권짜리 ‘삼국지 연의’를 오빠가 네 차례 읽었다. 나도 질 수 없어 표지며 책장이며 ‘날랑날랑해진’ 그 열 권을 세 번이나 읽었다.

오빠는 성인이 된 후에도 열심히 독서하고 책을 모았다. 훗날 은퇴하면 모아둔 책으로 동네에 작은 도서관을 열겠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었다. 대학 졸업 후 출판계에서 책과 일하게 된 것도 참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내 동료들은 아침에 출근하면 자신이 무슨 책을 읽었으며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부터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과 더불어 다시 책 읽기 ‘경쟁’에 뛰어들었다. 

그 직장 다닐 때, ‘명사의 서재’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서재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단독 주택 별채에 마련된선생의 서재는 웬만한 중견 출판사 물류 창고를 방불케했다. 규격 맞춰 짜 넣은 책꽂이에 도서관처럼 책이 질서있게 정돈돼 있었다. 이미 선생의 서재는 그 무렵 책 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부러움을 사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멋진 서재를 갖겠다는 꿈을 안고 그 집을 나왔던 기억은 지금도 선연하다. 

우리 부부는 신혼 때부터 많은 장서를 가지고 출발했음에 자부심을 느꼈다. 박목월 시인의 아들인 박동규 교수가 어린 시절 가난의 서러움을 잊고 살게 해 준 것은 ‘글쓰는 명예로움’이었다고 자신의 저서에 썼듯이, 우리는 가난했지만 책들을 가졌기에 명예로웠다. 어느 집에서 사나 방 하나의 한쪽 면은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책은 삶의 원동력이었고 나에게 독서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자부심이었으며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아이를 낳고 산후 우울증에 시달릴 때는 한동안 그 책들에 몰두할 수 없음이 나를 슬프게 했다. 방에 누워 한 쪽 벽에 빼곡히 꽂힌 책들을 보고 ‘내가 다시 저 책들을 읽을 수 있을까’라는 공연한 걱정에 눈물 흘렸다. 그렇게 책은 내게 세상으로 통한 창이었고 내가 움직인다는 것과 뗄 수 없는 개념이었다. 

책을 버리기 시작한 것은 넓은 집에서 살 때였다. 구석에 쌓여 있는 책이 괜스레 부담으로 다가왔다. 저 책들만 없으면 내가 훨씬 홀가분하게 움직일 수 있을 텐데, 집안이 훨씬 깔끔하고 쾌적할 텐데. 예전에는 책을 물려 읽었기에 읽은 책도 버리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닌데, 이 먼지 쌓인 구닥다리 책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집필 기간이 길어 몇 차례 끊어서 발간됐던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 내가 처음 읽은 ‘토지’ 1〜3권은 깨알 같은 글씨가 세로쓰기로 인쇄돼 있다. 더는 그런 모양으로 책을 만들지 않지만 나는 자랑스럽게 그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만원 전철에서 사람들 사이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읽던 조그만 판형의 삼중당 문고들도 트로피처럼 보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책들을 읽었으면 읽었지, 그렇게 늘어놓을 일은 또 뭔가? 다시 읽을 것도 아니면서.... 

‘절대 버릴 수 없던’ 책들을 거의 다 버렸다. 1만 권 가까운 장서 중 의미있는 책 몇 권만 남겼다. 두 번째 정리할 때는 4,000여 권 중 필요한 책 몇 권만 추리고 아예 철거업자에게 통째로 내맡겼다. 더러는 중고 서점에 팔아서 용돈도 챙겼다. 아무튼 버려보니 그렇게 ‘못 할 짓’도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책을 많이 읽는다. 더구나 나는 집필을 위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구하지 않는다. 퍼 돌리고 또 퍼 돌린 인터넷 자료들은 신빙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책을 많이 사고 책상 주변에는 책이 잔뜩 쌓여 있다. 다만 내가 경계하는 것은 그 책들에 대한 미련이다. 책의 용도는 보관이 아니라 독서이다. 두고두고 다시 들여다볼 책이 아니라면 보관은 의미가 없다. 

오빠가 읽던 책을 물려 읽던 때와는 세상 돌아가는 속도가 다르다.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음은 당연한 이치이다. 은퇴한 오빠도 나도 작은 도서관 관장이 되는 꿈은 오래전에 버렸다. 지금 내게는 독서의 즐거움과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의 깊이, 그 효용의 폭이 중요하다. 이는 장서가 아닌 독서로 성취할 수 있을 뿐이다.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인문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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