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한업 불어불문학과 교수·다문화연구소장
불어불문학과 교수이자 다문화·상호문화협동과정 주임교수, 다문화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 불어 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대에서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부터 유럽의 상호문화교육을 연구하면서 이를 국내에 도입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저서로는 ‘다문화사회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상호문화교육’, ‘차별의 언어’ 등이 있다.
‘읽어야 산다’라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대개 무엇을 읽는다고 생각할까요? 아마 ‘책’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가장 많을 거예요. 책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 지혜, 기술 등이 담겨 있으니까요.
그런데 글자를 모르면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 글자를 모르는 사람을 문맹(文盲)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맹(盲)’은 ‘亡(망할 망)’ 자와 ‘目(눈 목)’ 자를 합친 것으로 ‘눈을 잃는다’라는 의미지 요. 한국에는 수십 년 전만 해도 문맹이 꽤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없어졌어요. 모두 다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과 꾸준한 교육의덕분이지요. 문맹에 대해서 말하니 색맹이라는 단어도 생각이 나네요. 색맹(色盲)은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시각이나 사람을 말하지요. 색을 구분하지 못하면상당히 위험할 수 있어요. 길을 건너는 사람이 신호등의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또 우리 시대 신조어인 ‘컴맹’도 생각이 나네요. 다 알다시피 이 말은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요.
또 다른 신조어는 ‘다문화맹’이에요. 이 말은 글자 그대로 다문화라는 현상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을 말해요. ‘다문화’라는 말을 듣고 외 국인이나 동남아인만 떠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다문화맹에 걸린 거예요.
이런 다문화맹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다문화라는 현상을 잘 이해해야 해요. 다문화는 아주 오래된 현상이에요. 중국 춘추전국 시대가 다문화였고 고대 로마 시대도 다문화였어요. 오늘날 다문화가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전파 속도가 매우 빠르고 범위가 매우 넓다는 것이지요. 이런 변화는 1950년대 비행기의 상용화로부터 시작됐어요. 이 시기 사람들은 비행기 덕분에 과거보다 20배나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지요. 인간은 문화를 가지고 다니는 동물이라 인간의 이동성은 바로 문화의 혼성으로 이어졌지요. 이제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라 규범이 되고 있어요. 과거에는 동질성이 규범이었다면 오늘날에는 다양성이 규범이 된 것이지요.
한국도 이런 거대한 물결 속에 있어요. 1990년대부터 농촌 노총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신부를 맞아들였고,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를 불러들였지요. 이들이 늘어나면서 그 자녀들도 늘어났어요. 여기에 외국 국적 동포, 외국인 유학생들도 합세했지요. 이들처럼 국내에 90일 이상체류하는 외국인을 ‘외국인 주민’이라고 부르는데, 그 수는 2022년 기준 226만 명에 달해요. 이들을 한곳 에 모으면 충청남도 도민보다 많고 대구 시민보다 조금 적어요. 이들은 한국의 저출생, 고령화 로 인해 점점 늘어날 전망이에요. 통계청에 의하면 2040년에는 323만 명으로 늘어나 전체 인구의 6.4%에 달할 것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외국인 주민이 늘어나면 이들과 잘 지낼 준비를 해야 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처럼요. 그런데 우리의 준비는 부족 해 보여요. 외국인 주민을 여전히 무시, 차별, 배제하기 때문이지요.
2019년에 있었던 몇 가지 사례를 볼까요. 5월, 꽤 큰 시의 시장이 외국인 어머니를 둔 학생들을 ‘잡종’에 비유했어요. 이들이 ‘잡종’이라면 한국인 부모를 둔 학생들은 ‘순종’이라는 이야기인데 이는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는 말이에요. 2020년 국내 한 유전체 정보 분석 회사에 따르면 한국인 의 혈통 유전자 평균값은 한국인(49.6%), 일본인 (25.1%), 중국인(20.7%) 등으로 나타난다고 해 요. 이 결과대로라면 한국인도 잡종인 셈이죠.
같은 해 6월,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분이 외국인은 한국에 기여한 바가 없다고 했어요. 이 말 역시 받아들이기 어려워요. 그럼 1960년대 서독으로 간 한국 광부와 간호사는 서독에 기여한 바가 없나요? 자기가 나가서 한 것은 기여이고 남이 들어와서 하는 것은 기여가 아닌가요? 7월, 한국인 남편이 베트남 아내를 두 살짜리 아이가 보는 앞에서 3시간 폭행한 일이 있었어요. 집에서 베트남 음식을 자꾸 해먹고, 한국어가 좀처럼 늘지 않는다는 이유였지요. 저는 그 남편에 게 다시 묻고 싶어요. “국제결혼을 할 때 그럴 줄 몰랐나요?” 8월엔 한 농장에서 우즈베키스탄 노동자가 장갑을 달라고 하자 그를 일으켜 세우고 뺨을 때리고 발로걷어차는 일도 있었어요. 한국은 이미 동방예의지국이 아니에요.
외국인 주민들은 이런 대우를 언제까지 참고 견딜까요? 10년, 20년 후에도 그렇게 할까요? 그땐 더 많은 갈등이 생길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는데 막대한 사회적비용이 들 거예요. 지금 우리가 한 무시, 차별, 배제에 대한 청구서가 다음 세대로 날아들겠지요. 이를 막기 위해서는 상호문화교육이 절실해요. 이 교육은 다수와 소수가 자신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성찰해 원만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교육이에요. 이 교육은 가정, 학교, 사회 모두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대학도 예외일 수 없어요. 초·중·고에 다문화가 범교과 학습 주제이듯이 대학에서도 다문화를 필수교양으로 가르쳐야 해요. 다문화 시대에는 다문화를 ‘읽는’ 것이 사는 길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