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페미야?” 집회 참여 인증 게시물을 올리자 ㄱ(경영·23)씨는 남성 지인에게 해당 메시지를 받았다. “ㅇㅇ”이라고 대답하자 곧, SNS 팔로우가 끊겼다. ㄱ씨가 참여한 집회는 지난해 12 월27일 혜화역에서 열린 ‘민주없는 민주동덕’ (동덕 집회) 1차 집회였다.
동덕 집회에 광장은 유독 각박했다
1차 집회는 동덕여대 대학 본부의 일방적 공학 추진이 기폭제가 돼 그간 비민주적 행태를 규탄하며 열렸다. 혜화역 집회에 참여한 ㄱ씨는 노골적인 혐오를 마주했다. 남성들은 휴대전화를 들이밀며 촬영했고, 한 남성은 통화로 집회 참가자의 외모를 비하했다. ㄱ씨는 그제야 얼굴을 가리기 위한 마스크를 챙기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건너편 인도에는 남고생들이 무리 지어 “얼굴이나 보자”며 키득대고 있었다. 인도 가까이 앉게 된 ㄱ씨는 ‘사진 찍히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한 남성은 현장에 난입해 다른 참가자의 얼굴을 찍었다. 참가자들은 “찍지 마”를 외치며 그를 쫓아냈다. 신상 유포로 인한 괴롭힘을 우려한 ㄱ씨는 익명을 요청했다.
ㄱ씨는 매주 토요일, 12.3 내란 사태를 계기 로 촉발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에도 꼬박 꼬박 출석했다. 그곳에서는 ㄱ씨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겁낼 이유가 없었다. 광장에서 여성들은 ‘응원봉 연대’의 주체였기 때문이다. 탄핵 집회에서는 곳곳에 놓인 대형 스크린에 종종 집회 참가자의 얼굴을 띄웠고, 카메라에 잡힌 참가자들은 즐거워하며 호응했다.
한국여성민우회 채윤진 활동가는 탄핵 집회와 동덕 집회가 “민주적 소통과 의사결정을 무시하는 권력과 사회 구조에 대항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다만 그는 페미니즘 ◆백래시로 인해 (두 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다르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비교적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한 탄핵 집회와 달리, 동덕 집회는 시위 주체가 ‘여대생’으로 특정된다. 대학 본부의 일방적 공학 전환을 막기 위해 동덕 집회가 시작된 만큼, 평소 페미니즘을 공격 하던 이들이 이 사안을 동일한 방식으로 비판하며 나선 것이라고 채 활동가는 설명했다.
특정 시위는 혐오해도 괜찮다는 “비문명” 발언
동덕여대 학생들을 향한 조롱과 비하는 온라인에서도 이어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자신의 SNS에 동덕 집회가 “야만적 폭력”, “그저 비문명일 뿐”이라며 거센 비난을 일삼았다. 동덕여대 대학 본부는 18일 이 의원을 비밀스럽게 동덕여대 월곡 캠퍼스로 초대했다. 만남의 이유를 밝히라는 재학생들의 목소리에 이 의원은 “폭동에 의한 피해 상황을 확인하러 갔다”며, “폭도들이 시위 불참 학생을 괴롭힐 우려가 있다”고 했다. 그는 동덕 집회는 폭동이고, 참여 학생은 폭도라고 묘사했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은 ‘비문명’이 라는 표현이 혐오 발언을 정당화하는 신호탄이 됐다며 비판했다. 이 의원은 2022년 전국 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시위에서도 이를 비문명이라고 저격한 바 있다. 비문명이라는 말 아래 특정 시위를 ‘혐오해도 되는’ 대상 으로 만드는 것이다. 신 최고위원은 2021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 추문으로 인해 열린 재보궐 선거를 기점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적대적 반응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됐다고 분석했다. 남성들이 기본 소득당 등 성평등 공약을 내건 정당을 ‘페미 정당’이라고 낙인찍고, 혐오 표현을 지속했다는 것이다. 신 최고위원은 “(이때부터) 신남성 연대를 비롯해 페미니즘, 혹은 여성의 목소리가 담긴 이슈에 적대적 표현을 하는 행위가 괜찮은 일처럼 이어져 왔다”고 설명했다. 채 활 동가 또한 “우리 사회는 언론을 통해 노동자 파업 등을 폭력적, 위법적, 집단 이기주의와 같은 프레임을 씌우는 데에 익숙하다”며, “동덕여대 시위 역시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전달 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학생 목소리에 귀 기울였더라면 사태가 이 정도로 악화됐을까”
근처 남고 학생들은 집회 현장에서 참가자들의 사진을 찍어 자신의 SNS에 게시하며 조롱했다. 동덕 집회 운영진의 인스타그램 계정 등 신상이 악의적으로 유포되기도 했다. 동덕 집회 운영진은 지난달 24일 이대학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학생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언론이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어 “광장으로 나온 여성들이 여성 의제로 목소리를 내면 공격당하기 쉽다”며, “여성 공간을 수호하려는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된 집회인 만큼 참가자의 신원 보호를 각별히 신경 써야 했다”고 말했다.
2차 동덕 집회에서 운영진은 참가자 보호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서로를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불렀으며 현장에서 마스크를 배부했다. 사진 촬영과 개인 인터뷰도 철저히 금지했다. 또한 2차 집회 장소를 인도에서 조금 떨어진 도로로 옮겨 참가자들이 직접적인 위협에 쉽게 노출되지 않도록 했다. 안전 관리 스태프도 증원해 집회 현장 곳곳에 배치했고, 건너편 횡단보도에서 촬영하는 남성을 제지하기도 했다.
동덕 집회 운영진은 “여성의 지지를 얻고 싶을 때는 여성 친화적 정책을 내놓을 것처럼 하지만 결국 여성을 동등한 발화자로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7년간 반복되는 것 같다”며 “‘응원봉 연대’라고 부르길래 이번엔 여성을 동등한 발화자로 인정할까 기대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현 상황에 회의감을 드러냈다.
민주동덕의 봄, 학내 민주화를 기다리며
그럼에도 변화는 분명했다. 채 활동가는 “지금까지 정치 주체는 중년 남성이었지만, 여성 청년이 새로운 정치 주체로 조명되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고 말했다. 광장의 분위기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시위와 비교된다고 평가했다. 채 활동가는 “당시에는 여성혐오적 발언과 박 전 대통령을 성별로 조롱하는 음악이나 구호들이 서슴없이 오고 갔다”며, “현재는 그래도 (탄핵 시위에서) 여성혐오 발언이 시민들에 의해 바로 제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평등한 광장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9일 오후2시, 종로구 동덕빌딩 앞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이 주관하고 총 12개의 단체가 공동주최한 ‘민주 동덕에 봄은 오는가’ 집회에 는 약 8천 명이 참여했다. 동덕여대 졸업생 연합은 11일 ‘민주동덕에 봄은 온다’ 입장문에서 “동덕여대 재학생은 민주동덕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거리로 나왔고 광장은 응답했다”며, “학내 민주화의 열망이 대학 사회를 넘어 범시민사회로 나아가는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집회 당일 동덕빌딩 앞에는 동덕여대 학내 민주화를 지지하는 각양각색의 깃발이 즐비했다.
한편, 오는 3월3일 오후4시 동덕여대 재학생 연합의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 2차 집회가 동덕빌딩 앞에서 열린다.
◆백래시: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진보적인 사회 변화에 따라 기득권층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 그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다.
◆페미니즘 리부트: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00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등으로 촉발된 페미니즘 대중화 흐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