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흔히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한다. 가을 날씨는 서늘해서 등불을 밝히고 책 읽기에 딱 좋은 때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극적 콘텐츠가 만연한 사회에서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독서는 어렵다는 생각에 첫 쪽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대학보는 “책은 낯설고 어려운 것이 아니며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하는 ‘애독가’들의 이야기를 1688호부터 세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 최성경(45·여)대표를 만났다.

큐큐의 책을 판매하고 있는 최성경 대표. 큐큐 출판사는 퀴어문학 독자로서 읽고 싶고 궁금했던 책들의 목록이 쌓여 시작됐다. 제공=최성경 대표
큐큐의 책을 판매하고 있는 최성경 대표. 큐큐 출판사는 퀴어문학 독자로서 읽고 싶고 궁금했던 책들의 목록이 쌓여 시작됐다. 제공=최성경 대표

문학에 기록된 등장인물은 영원히 산다. 기록으로만 과거 세대를 마주하는 먼 훗날, 사람들은 퀴어를 어떻게 기억할까.

“감옥에서 온 편지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우연히 큐큐퀴어단편선을 보게 된 독자가 보낸, 퀴어 이야기를 꾸준히 출간해 줘 정말 고맙다는 편지였어요.” 큐큐가 기록하는 퀴어의 일상은 아직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현재의 독자에게 용기가 된다.

문학으로 퀴어를 기록하다

출판사 큐큐는 2017년, 퀴어가 등장하는 문학을 더 많이 읽고 그들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고 싶다는 최 대표의 바람에서 출발했다. ‘큐큐’는 퀴어를 연상케 함과 동시에 그동안 어둡게만 느껴졌던 퀴어의 이미지를 유쾌하게 반전하고자 하는 바람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텔레니’, 마시마 유키오의 ‘금색’ 등 고전 퀴어문학이 담긴 ‘큐큐클래식’은 퀴어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기록물이며, 매년 한 권 발행되는 단편선 ‘큐큐퀴어단편선’은 현재와 미래를 살아가는 퀴어의 문학이자 기록이다.

최 대표에게도 퀴어문학은 삶의 기록이자 흐름이다. “분명 ‘퀴어’라는 말이 없었을 때부터 퀴어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계속 받았어요.” 퀴어의 삶이 잊히지 않고 기록됐으면 하는 마음은 그를 퀴어문학 출판의 길로 이끌었다.

“(퀴어문학은) 역사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남기고 싶었죠.” 큐큐퀴어단편선은 처음 출간된 2018년부터 동시대 퀴어문학의 흐름을 반영한다. 최 대표는 자연스러운 퀴어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작가들에게 특별한 주제 없이 자유롭게 작품을 완성해 달라고 의뢰한다. “단편선 출간을 2028년까지 하다 보면, 동시대 퀴어문학의 흐름을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당장 1~2년 안에 큰 변화를 체감하긴 어렵지만, 그는 갈수록 수록되는 작품의 주제가 레즈비언, 게이의 이야기에서 머물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 및 지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큐큐퀴어단편선 3-언니밖에 없네’ 중 정세랑 작가의 ‘아미 오브 퀴어’는 200년간 출생 인구의 35%가 ◆간성인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성별 이분법에서 벗어난 가상세계를 다룬 것이다.

퀴어문학, 교차성으로 나아가다

큐큐에 기록된 이야기뿐 아니라, 현대문학 시류에서도 퀴어는 자연스러운 존재로 서술된다. 전문 출판사가 아니더라도 퀴어문학은 양적으로 많아졌으며, 이야기 또한 다채로워지고 있다. 최 대표는 “이전에는 퀴어라는 정체성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주를 이뤘다면, 지금은 일상을 살아가는 한 존재로서의 고민에 대한 서술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문학에서 다루는 교차성도 증가했다. 퀴어의 정체성뿐 아니라 이주민, 노동자, 여성으로서의 복합적 소수자성 또한 서술된다. ‘큐큐퀴어단편선 6-서로의 계절에 잠시’ 중 천선란 작가의 ‘검은 혀’에서 주인공의 퀴어 정체성은 자연스레 표현된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퀴어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검은 혀가 주류인 사회에서 붉은 혀를 가진 이주민으로서의 삶 또한 집중적으로 조명된다. 최 대표 또한 교차성에 주목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다루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교차성을 중심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큐큐퀴어단편선 시리즈. 제공=최성경 대표
큐큐퀴어단편선 시리즈. 제공=최성경 대표

최 대표는 문학을 퀴어의 공론장으로 표현한다. 그는 “퀴어를 다루는 매체는 늘어났지만, 문자로 읽는 이야기들은 여전히 현재를 인식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타 매체와 달리 문학은 독자들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사고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서점과 같은 오프라인 공간에서 독자가 기록된 퀴어를 직접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 역시 큐큐의 존재 의미다.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의 의미가 사라질 때까지

큐큐가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던 이유는, 지금까지 논의되지 않았던 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퀴어문학’이라는 정의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 대표는 현재 문단에서 퀴어는 전문 출판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히 기록되고 있다고 본다. 그는 앞으로도 퀴어가 문학에서는 특별하고 별난 존재가 아닌, 일상적으로 서술되기를 소망한다. 이러한 최 대표의 꿈은 전문 출판사인 큐큐의 소멸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문학의 본령인 소수성이 특정 언어로 정의되지 않고 “단지 기록될 뿐인” 미래를 꿈꾼다. 인터뷰 내내 웃음꽃을 피웠던 그는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담아온 한마디를 꺼냈다.

더 많은 퀴어문학이 만들어져, 퀴어문학이라는 말 자체가

무용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간성: 염색체, 유전자, 호르몬, 성기 등 인간의 성별(sex)을 범주화하는 주된 요소들의 구조가 전형적 조직화에 어긋난 모든 사람을 통칭하는 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