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흔히 가을을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한다. 가을 날씨는 서늘해서 등불을 밝히고 책 읽기에 딱 좋은 때라는 말이다. 그러나 자극적 콘텐츠가 만연한 사회에서 독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독서는 어렵다는 생각에 첫 쪽을 넘기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대학보는 “책은 낯설고 어려운 것이 아니며 이미 우리 일상에 있다”고 말하는 ‘애독가’들의 이야기를 1688호부터 세 번에 걸쳐 연재한다. 이번 호에서는 퀴어문학 전문 출판사 ‘큐큐’ 최성경(45·여)대표를 만났다.

퀴어문학이 오랫동안 빼앗긴 퀴어들의 언어를 되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선재)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등 큐큐출판사의 책들이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서가에 진열돼 있는 모습. 강연수 사진기자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 등 큐큐출판사의 책들이 우리대학 중앙도서관 서가에 진열돼 있는 모습. 강연수 사진기자

현대문학에서 퀴어는 ‘가장 보통의 존재’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올해의 문제소설’을 비롯한 다수 작품에 퀴어는 일상적으로 등장한다. 문학은 퀴어의 일상과 미래를 다루며, 이들을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주체로 서술한다. 그리고 젊은 작가의 소설을 읽는 청년 세대는 퀴어를 일상적으로 느끼게 된다.

문학에서의 퀴어 별난 존재에서 일상 속으로 스며들기까지

안해인(국제사무·22)씨는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퀴어가 자주 등장하지만, 소설 속 인물의 성정체성이 특별히 부각되지는 않는다고 느꼈다. 그는 문학 속 보통의 존재로서의 퀴어를 자주 접하며, 누군가가 퀴어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것을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

한국교원대 김현지(국교·23)씨는 현재에 이르러 문학 속 퀴어가 타자가 아닌 주체로서 자리매김했다고 느낀다. 김씨가 공부하는 한국 근대문학에도 이광수 작가의 ‘사랑인가’ 속 ‘분키치’와 같은 퀴어 등장인물이 분명히 존재했지만, 드물었다. 그러나 김씨는 한국 현대문학을 공부하며 퀴어 등장인물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서술되는 존재가 아닌 서술의 주체가 됐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는 “소설은 주체의 이야기이기에 서술의 주체가 중요한데, 박상영 작가의 ‘보름달 이후의 사랑’을 읽으며 퀴어가 객체에서 나아가 주체로 거듭났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동안 퀴어 인물이 그저 개성이 강한 인물로 소모됐다면, 요즘은 소설 속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있어요.” 이선재(국문·21)씨는 소설이 현실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퀴어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느꼈다. 이씨는 세대 갈등을 다루는 ‘딸에 대하여’처럼 현실에서 퀴어가 마주할 수 있는 일상적 문제들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많아지는 것을 반기고 있다.

연남경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초기에는 (퀴어가) 성소수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어려움을 강조하며 이성애 규범성에 대항하는 존재로서 두드러졌다면, ‘반려빚’, ‘젊은 근희의 행진’ 같은 최근작에서는 삶의 기본 형태로서 레즈비언 커플이 보인다”고 말했다. 주목받는 작가인 김멜라의 작품 역시 퀴어들의 언어와 삶의 방식을 다루며 작품에서의 퀴어 재현을 다양화했다.

분홍색 피부를 가진 캐릭터가 표지에 그려져있는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왼쪽)’와 연보랏빛 표지로 시선을 끄는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의 모습.  강연수 사진기자
분홍색 피부를 가진 캐릭터가 표지에 그려져있는 ‘나의 레즈비언 여자 친구에게(왼쪽)’와 연보랏빛 표지로 시선을 끄는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의 모습. 강연수 사진기자

 

퀴어의 공론장으로서 미래를 말하는 퀴어문학

문학은 새로운 미래를 가늠하는 곳이자 동시대를 상징하는 공론장이다. ‘포스트페미니즘 시대 한국 여성문학·퀴어문학 연구: 2010년대 이후 시민권 담론과 소수자정치’(오혜진, 2024)에서는 퀴어문학을 ‘소수자 시민권에 대한 서사적 상상력을 실험할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라 말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 해외의 동성혼 법제화 소식 등 소수자 인권 의제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동시대 문학에 기록된다. 연 교수는 최근의 퀴어문학이 갈등과 혐오가 만연한 세상에서 ‘다른 삶’을 긍정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회복시킬 수 있다고 평가한다.

“문학은 각종 미래의 시뮬레이션이기에, 시대의 공론장이 되는 것도 문학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씨가 생각하는 문학의 매력은 시대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작가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학 작가들은 미래를 수없이 시뮬레이션해 보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상을 만들어내 독자를 설득한다.

안씨는 자신의 글에도 퀴어의 사랑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다. 8월30일, 그는 글쓰기에 관심 있는 지인 5명과 단편소설집 ‘충동우주’를 출간했다. ‘충동우주’의 수록 작품 ‘초능력이 없다’에는 성별이 정해지지 않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문학을 통해 소수자의 이야기를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삶을 서술하기까지. 퀴어문학은 동시대 소수자들의 공론장이자 퀴어의 일상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될’ 미래를 향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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