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 기사에서 ‘따돌림’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것과 같이 ‘학교 내외에서 2명 이상의 학생이 특정 학생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신체적·심리적 공격을 가해 고통을 느끼게 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해당 법률은 “학교폭력”의 “학교”를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특수학교 등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대학 내 학교폭력에 대한 법률 미비로 인해 불가피하게 해당 정의를 사용했다. 또한 본 기사는 따돌림 피해자의 신원을 보호하고 2차 가해 및 보복을 방지하고자 학생자치단체의 이름을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가명 표기를 사용했다.

학생자치단체에서 활동하던 김지연(가명)씨는 대다수 회원들의 지지를 받아 회장으로 선출됐을 정도로 주변 친구들과 잘 지냈다. 하지만 선거에서 낙선한 회원에 의해 집단 따돌림을 당하면서 점차 주눅들기 시작했다. 주동자는 김씨와 같은 학생자치단체 소속으로 그의 임기 동안 함께 일했다. 주동자는 김씨에게 필요 이상으로 많은 업무를 떠넘기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서 시작해 공개적인 면박을 주고, 폭언을 했다. "우리 모두가 회장을 마음에 안 들어하니까 어떻게 해임하는 방법을 만들 수 없을까?" "능력이 없으면 회장 직책 내려 놔야지." 모든 구성원이 함께하는 회의에서 김씨가 주동자에게 들었던 말들이다. 계속된 폭언에도 적극적으로 주동자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주동자의 말에 끄덕끄덕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고 결국엔 제 편이 아무도 남지 않았어요.”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출처=게티이미지뱅크

 

대학에서도 벌어지는 학교폭력, 따돌림의 사각지대

대학생은 법률상 학교폭력의 대상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에서 괴롭힘과 따돌림이 발생하는 빈도는 무척 높다. 학술지 '한국청소년연구'에 게재된 논문 '대학생의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개선을 위한 예방대책 방안 연구'(지연정 영남대 학교교육연구소 연구원 등, 2023)에 따르면 2023년 전국 4년제 대학생 10명 중 3명은 대학에서 학교폭력을 목격한 것으로 나타났다. 467명 중 28.9%인 135명이 학교폭력을 목격했으며, 8.6%가 학교폭력 피해를 경험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학 내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규제도 없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에서 따돌림을 정의하고 따돌림에 대한 처벌 절차와 조치를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초·중등교육법이 적용되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초중고)만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성인이라는 이유로 대학 내 따돌림이 법적 보호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만은 아니다. 2018년 선후배 간 갈등에서 비롯한 간호사 자살 사건이 화제가 되며 제정된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규정은 근로기준법 내에서 직장 내 성인에게 가해지는 괴롭힘의 정의와 조치를 규제하고 있다.

취재원들도 “대학 내 따돌림은 피해자가 벗어나기 힘든 심각한 문제”라고 말한다. 어쩔 수 없이 휴학이나 활동 중단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학업 상의 문제는 오롯이 피해자의 몫이다. 김씨는 “따돌림을 피해 휴학하면 학과 커리큘럼을 맞추지 못해 졸업이나 취업이 미뤄질 수 있고, 타 활동을 포기하는 데 따르는 부담도 피해자가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남대 학교교육연구소 지연정 연구원은 “대학이 개방적인 공간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굉장히 폐쇄적인 곳”이라고 말했다. “동기, 선배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학교 생활과 졸업 이후의 커리어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대학생 학교폭력을 연구한 우리대학 미래교육연구소 문명현 연구교수는 일반 성인 간 폭력과 대학 내 폭력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신고를 해도 계속 같은 곳에 소속돼 있기에 어떻게든 얼굴을 보며 지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전공이 같다면 따돌림이 취업 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대학의 특수성’으로 강조했다.

 

누군가 죽어야만 이슈가 된다, 지속된 대학 내 학교폭력 원인은 관심 부족

대학 내 따돌림 문제가 법으로 명확히 규정돼 있지 않은 것에 대해 지 연구원은 “정치·교육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부족하기에 법률도 없고, 대학 내 학교폭력이라는 정의도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 연구원이 대학 내 따돌림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것도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따돌림이 발생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대학 내 따돌림에 대한 연구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 연구원은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시 조치 규정 모두 특정 자살 사건이 이슈가 돼 발의된 것”이라며 “누군가의 사건·사고가 발생해 이슈가 되지 않으면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문 교수도 “대학생 학교폭력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이 많이 없다 보니 실태조사조차도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학 내 따돌림 규제 시스템이 마련되기는 더욱 어렵다. 2021년 대학 인권센터 설치가 의무화되고, 학내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다수의 대학 인권센터에서는 학내 성폭력 구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따돌림을 비롯한 대학 내 학교폭력은 학내 성폭력과 비교했을 때 후순위로 여겨져 한정된 예산 내에서 학교폭력 구제를 위한 체제는 비교적 마련되기 힘들다. 문 교수는 “성폭력이나 성매매는 어느 정도 인권센터에서 다루고 있지만, (학교 내 따돌림은 비교적) 사소하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신고할 수 있는 창구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당사자인 대학생들조차 대학 내 따돌림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대학보가 5월22일(수)~30일(목)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대학 재학생 111명 중 8.1%가 대학 내 따돌림을 경험했으나 42.3%는 대학 내 따돌림이라는 말조차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피해자가 따돌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학 내 따돌림을 겪은 김씨 또한 그랬다. 김씨는 “대학에서 따돌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 집단 따돌림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내가 잘못해서 친구들이 날 피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학 내 따돌림 근절 위해선 대학의 관심이 필요하다

김씨는 “학교가 개입해 책임지고 대학 내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3자의 개입 없이 학생들끼리 만나면 2차적 감정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는 “심리상담가 등 전문가를 제3자로 초빙하고, 화해가 이뤄질 때까지 연속적으로 지원하는 등 학교 측의 체계적인 관리가 있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 교수와 지 연구원 모두 대학생 따돌림 구제를 위해 대학의 활발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문 교수는 “대학 내 학교폭력에 대한 사회 전반의 관심이 증진돼서 학교폭력을 전담으로 다루는 부서가 생겨야 학생들을 위한 활발한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동시에 이를 위해서는 “인식 변화를 뒷받침해줄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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