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본지는 1616호부터 1620호까지 학보메이트로부터 직접 여성학과 관련된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답변을 본교 전문가 선생님들로부터 들어보는 칼럼 코너 ‘똑똑, 여성학에 묻습니다’를 운영해 독자들로부터 긍정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습니다. 이에 1638호부터 1642호까지 코너를 확대 및 재연재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여성학과 관련된 학우들의 궁금증을 넘어 일상적인 고민 기반의 사연까지 폭넓게 답변을 들어봅니다.
네 번째 질문
우리나라의 성교육이 열악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제껏 보수주의적 관점에서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교육이 주로 이뤄졌는데, 어떻게 하면 그 누구의 성도 억압하지 않는 성교육이 이뤄질 수 있나?
“여성은 외모, 남성은 경제력을 높여야 한다.” “여자는 무드에 약하고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 2015년 교육부는 이러한 내용의 성교육표준안을 배포한 직후 이분법적 성별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배제할 뿐 아니라, 성폭력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린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활동가들의 질타 끝에 2016년에 이르러서야 “문제가 될 수 있는 자료”라는 이유로 해당 표준안은 웹사이트에서 비공개 전환되었고 이후 표준안을 손보겠다고 교육부가 결정했으나 결국 작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2년 현재까지 개편도, 폐지도 되지 않은 채로 표준안은 유명무실하게 남아있다. 그런데도 일부 학교에서는 출장 오는 성교육 강사에게 표준안을 따르는지를 묻고, ‘페미니즘’을 덧붙이지 말라 당부한다.
현행 정책상 초·중·고등학교는 연간 15시간의 성교육을 시행하고 보고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와 다르게 실제로 알차게 수업하는 학교는 드물다. 일단 성교육은 주로 보건, 혹은 생물, 체육, 창의적 체험활동 과목에서 시수를 빼서 가르치는 형식으로 별도 과목 형태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공식적으로 학교에 성교육 전문 교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수업에서 잘못된 지식이 공유되기도 하고, 리플렛을 나눠주는 것으로 아예 교육을 대체하거나, 심지어는 성교육 시간이 자습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있다. 외부에 수업을 요청하는 학교는 그나마 나은 경우지만 이마저도 강사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한 교시 정도로 내실 있는 내용을 전부 전달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교육이 연속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매년 교육자가 변경되면서 교육 내용 또한 단순 개념들의 나열에 그치기에 십상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학교 성교육은 교사와 강사 개인들의 역량에 맡겨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분명 성교육이 존재하지만 이처럼 제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입시 위주 체제 속에서 성교육은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성교육 정책 또한 여러 근거법에 발을 걸친 채 명확한 전담 부처도 없이 체계화되지 못했다. 게다가 가정과 학교의 성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청소년성문화센터에 대한 지원도 부족한 실정이며 각 센터 운영 주체가 달라 교육의 질을 평준화하기도 어렵다. 성교육 강사 채용의 제대로 된 기준이나 전문 훈련 시설도 없어 교육자를 양성하기에도 미흡한 상황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성교육의 내용과 목표, 중요성에 대한 인식들이 충돌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사회적 합의’가 요원해지는 동안 국가 주도 성교육은 기존의 보수적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성교육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극단적으로 와해하여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성교육 전쟁’이다. 일부 보수 개신교 세력이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성교육 등을 ‘외설적’이라며 민원을 제기하고 시위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성평등’이란 단어를 쓰거나 ‘젠더’를 설명하거나, ‘성소수자’ 관련 내용이 삽입되거나 성소수자 강사가 강의해도 이들에겐 항의의 대상이 된다. 물론 자위, 성관계, 임신, 출산, 동성애는 언급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청소년은 ‘보호’해야 할 존재이며, 따라서 성을 ‘절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생기지도 않은 성문화센터의 설립 자체에 나서서 반대하는 일도 있다. 이들은 보수 정당 및 학부모 단체들과의 연합을 통해 여론에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반면 성교육의 변화를 지향하는 청소년성문화센터들은 이런 공격에 맞서 ‘포괄적성교육’을 이야기한다. 이는 하나의 방법론으로서 금욕에 치중한 성교육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대안적 모델이다. 포괄적성교육은 단순히 생식기에 대한 개념들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들이 전 생애에 걸쳐서 건강한 성적 선택을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내용에서도 성을 생물학을 넘어선 포괄적인 분야로 인식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며, 평등과 인권의 개념을 역설한다. 물론 포괄적성교육 또한 완벽할 수 없으며 여러 한계가 있다. 가령, 성소수자가 주요한 교육 대상으로 고려된다기보다는 다양성의 사례로서 예시된다는 점 때문에 포괄적성교육의 ‘포괄성’은 종종 의심받는다.
오늘날 한국의 성교육은 멀리서 보면, ◆태아가 겁에 질려 도망 다니는 ‘낙태’ 영상을 보여주며 공포를 심는 ‘순결교육’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허나 성교육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나은 성교육의 모습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교육자들이 많다. 포괄적성교육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피교육자의 상황에 따라 맥락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교육자와 피교육자가 상호적으로 섹슈얼리티라는 주제를 다뤄야 성문화가 바뀔 수 있다는 이 교육론의 지침은 우리의 현실에 큰 의미를 준다. 성은 연령, 정체성, 지역 등 상황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며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성을 실천하기 때문이다. 또한 “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관점’의 문제가 교육의 장 안팎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물론 ‘성’뿐 아니라 ‘인권’이나 ‘평등’이 무엇인지조차 질문의 답이 아닌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하나의 단어를 놓고 다른 언설을 무한히 반복하는 폐쇄적인 논쟁의 틀을 깨기 위함이다. 정책적 관심과 더불어, 이처럼 교육 내용의 변혁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비로소 새로운 성교육이 도래할 수 있을 것이다.
박부영 아시아여성학센터 연구원
◆주로 1990~2000년대 한국에서 성교육 자료로 활용되었던 이 영상은 미국에서 여성의 임신중절 반대를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 <소리 없는 비명 The Silent Scream(1984)>으로 많은 의학자들은 이 영화가 사실을 심각하게 왜곡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영상이 기술적으로 조작되었음을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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