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2030의 가장 큰 관심사는 취업을 비롯한 커리어 활동이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해 이대학보는 사회 각지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이화인들의 여정을 전하는 이화잡(job)담을 연재 중이다. 이번 학기부터는 직업 정보에 잡담(雜談)을 곁들여, 그 직업이 가진 매력을 한층 입체적으로 전하고자 한다. 1717호에서는 ‘전자제품의 쌀’을 만드는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 공정설계자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공정설계자로 근무 중인 권도현(화학·19년졸)씨. 그는 연구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공정을 설계하고 있다.채의정 사진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서 공정설계자로 근무 중인 권도현(화학·19년졸)씨. 그는 연구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반도체 산업의 핵심 공정을 설계하고 있다.채의정 사진기자

손톱보다 작고, 종이보다 얇은 반도체 칩 안에는 작은 우주가 있다. 치밀한 분석과 정교한 기술이 담긴 반도체는 우리 손에 쥔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힘이다. 10억분의 1미터에 달하는 나노미터의 세계를 세심하게 직조하는 권도현(화학·19년졸) 반도체 공정설계자를 만났다.

 

반도체 연구소 공정설계자로 입사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나

연구소 규모가 크다 보니 여러 조직으로 나뉘어 있다. 지금은 정보를 처리하는 반도체인 ◆시스템 반도체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핸드폰 카메라에 들어가는 CMOS 이미지 센서(CIS) 반도체를 전담하고 있다.

CIS는 렌즈로 들어오는 빛 에너지를 감지하고, 전기 에너지로 변환해 영상으로 만드는 장치다. 설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지켜보고, 성능 확보와 수율 개선, 불량 확인까지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반도체 업계 교과서로 통하는 ‘8대 공정’의 흐름이 궁금하다

완성된 칩이 나오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크게 8단계로 나눠 ◆반도체 8대 공정이라 부른다. 가장 먼저 회로를 그릴 도화지부터 만들어야 한다. 순수 실리콘 원기둥을 얇게 포를 떠서 원판형 ‘웨이퍼’를 만든다. 그 위에 회로 패턴을 그린 후 필요한 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식각한다.

다음으로 웨이퍼에 이온(ion)이라는 불순물을 넣는다. 초코칩 쿠키를 만들 때 원하는 위치에 초코칩을 박아 넣는 작업과 유사하다. 이로써 웨이퍼는 전류가 흐르는 소자가 된다. 마지막으로 반도체에 에너지를 가할 수 있는 전기길을 만들고, 반도체가 원하는 품질 수준에 도달했는지 점검한다. 고객에게 보내기 전에 패키징하는 작업을 하면 모든 공정이 완료된다.

 

비전공자가 국내 반도체 업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에 입사하려면

자기소개서에 ‘How-to’가 드러나야 한다. 이를테면 많은 지원자들이 ‘A라는 실험을 했을 때 C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로 끝낸다. 원인과 결과만 말하는 게 이공계 사람들의 특징이다.(웃음) 그런데 '어떻게'라는 B가 있어야 한다. 어떤 역량을 가지고 있고, 이 역량으로 어떻게 반도체 기술을 강화할지를 설명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작은 것이라도 직무와 엮을 수 있는 경험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학부생 때 실험 수업에서 했던 실수를 알아차리고 개선했던 기억처럼, 대단하지 않은 사소한 배움도 좋다. 자연대 후배들에게 경험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또 면접에서 하는 말이 꼭 정답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답이 아닌 풀이 과정이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그래서 어떤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하면 된다.

 


화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심화전공까지 했지만, 갓 졸업한 ‘자연대 학사’에게 취업 시장은 매서웠다. 그는 학사가 지원할 수 있는 회사라면 가리지 않고 원서를 넣었고, 삼성은 수많은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먼저 고민하고 답을 찾은 선배인 권씨는 ‘자연대 벗들’에 대한 선연한 애정을 비췄다. “비전공자에게 업계 문턱이 높아 보일 수 있지만, 입사 후에 배우는 내용이 더 많다”며 후배들이 풀 죽지 않았으면 한다는 응원을 전했다.


권씨는 “작은 경험이라도 직무와 엮을 수 있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며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채의정 사진기자
권씨는 “작은 경험이라도 직무와 엮을 수 있다면 충분한 의미가 있다”며 후배들에게 조언했다. 채의정 사진기자

 

삼성전자 반도체 연구소에 첫 발을 들인 계기는

학부생 때는 친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솔라셀(태양 전지) 랩실에서 졸업 인턴을 했다. 햇빛을 받아 전기 에너지로 변환하는 개념에 마음이 끌렸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기사를 찾아보다가, 솔라셀과 비슷하게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CIS를 알게 됐다. 

빛을 전기로 바꾸는 전지인 솔라셀과 달리, 카메라 본체는 전기를 바탕으로 빛을 만들고 이미지를 구현한다. 이런 반대 관계가 흥미로웠다. 당시 카메라로 풍경 사진 찍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웃음) 

 

여성으로서 반도체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다 보니 여초 사회에 있다가 남초 직군에 취직한다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다. 특히 처음 입사했을 때 여자 선배가 없었다. 그대로 본받을 수 있는 선배가 없으니 초반에는 길을 잃고 방황했다.

운이 좋았을 수 있지만 해내는 만큼 인정해 주는 리더들을 만나서, 성별로 업무 간 차등을 두지 않는 분위기에서 일하는 중이다. 지금은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여성 선배님도 있어서 그분처럼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뒤에 올 후배들을 위해 선배 자리를 유지해야겠다는 마음도 있다.

 

손톱보다 작은 초미세 영역을 다루는데, 일의 성과는 어떻게 확인하나

대외비가 많아 업무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으니, 성과를 바로 확인할 수 없다는 오해가 생기는 듯하다. 그런데 사실은 확인 절차가 정말 많기 때문에 (성능이) 개선됐는지, 안 됐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빵을 반죽하고, 발효가 잘 됐는지 들여다보고, 또 다시 소분해서 발효하고 잘 됐는지 보는 것과 같다. 보통 연구소에서 눈으로 데이터를 보고 넘기거나, 물리적으로 파괴해서 불량 원인을 찾아내기도 한다.

 

미래 반도체 업계에 진출하기를 꿈꾸는 이화인에게 한마디

기죽을 필요가 전혀 없다.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 어필에 능하지 않다. ‘이 정도 수준은, 이 정도 능력은 남들도 다 하는 거 아닌가’라고 스스로를 낮춰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간 봐온 이화인, 사회에서 만난 여성들은 다들 능력이 뛰어났고 실제로 인정받는 분들도 많다. 부족하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뒀으면 좋겠다.

 

◆시스템 반도체: 디지털화된 전기적 정보(Data)를 연산하거나 처리(제어, 변환, 가공 등)하는 반도체

◆반도체 8대 공정: △웨이퍼 제조 공정 △산화공정 △포토공정 △식각공정 △증착·이온주입 공정 △금속배선공정 △EDS(Electronic Die Sorting) 공정 △패키징 공정으로 이뤄진 일련의 과정

◆식각(Etching): 웨이퍼에서 필요한 회로 패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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