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점자 메뉴판 비치 프로젝트, 시각장애 소비자의 정보 접근권 문제를 조명하다
본 기사는 2024년도 2학기 전공연계 및 봉사 소모임 E-Bridge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본 기사의 내용은 이대학보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가게의 손잡이를 찾아 출입문을 열고, 메뉴판을 열어 원하는 메뉴를 고르고, 형형색색의 패키징 앞에서 고민하는 것.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상이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다. 시각장애 소비자들은 좁은, 혹은 익숙한 선택지 내에서 결정할 수밖에 없고 소비를 통해 양질의 경험을 얻는 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증가하는 키오스크, 그러나 모두에게 편리한가?
설치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키오스크는 직원과 대면할 일 없이 간편하게 주문할 수 있도록 도입되었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오히려 더 큰 불편을 초래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박웅진 씨는 “키오스크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시각장애인을 고려한 인터페이스 없이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도입된 것이 문제”라며 키오스크 보급의 한계를 지적했다.
2022년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장애인 무인정보단말기 접근·이용 개선 방안 토론회’에서 발표한 키오스크 장애인 접근성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전국 1,000여 개 키오스크를 무작위 조사한 결과 장애 유형별 편의를 모두 갖춘 기기는 인천의 한 병원에서 사용되는 단 1개의 기기뿐이었다고 한다. 키오스크가 전국적으로 보편화되고 있지만 그 편리함은 누구나 누릴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을 통해 소규모 사업장의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설치를 의무화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는 점자블록, 이어폰 단자, 스크린 높이 조절 등의 기능을 포함한 기기로, 장애인의 접근성을 향상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2024년 12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4년 소상공인 키오스크 활용현황 및 정책발굴 실태조사’에 따르면, 소상공인85.6%가 의무화에 대해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체계 없이 시작된 정책에 소상공인 연합회는 ‘소규모 사업장에 큰 부담이 된다’는 입장을 펼치며 유예를 요청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중소형 카페를 비롯한 다수의 소규모 사업장에서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거의
보급되지 않아, 시각장애인들은 활동지원사의 도움 없이는 독립적인 소비 활동을 수행하기 어렵다. 시각장애인 임동준 씨는 “카페에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있는 곳이 드물고, 카운터에서 메뉴를 빠르게 읽어야 해 눈치가 보인다”라고 답하며 독립적인 소비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시각장애인 자립 생활을 지원하는 점자 메뉴판
우리 사회에서 점자는 일반 활자와 동등한 언어로 보장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예컨대, 식품의 점자 표시는 법적 의무 사항이 아니다. ‘식품 등의 표시·광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점자 표시를 할 수 있다’ 정도의 권고 사항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화여자대학교 전공연계 봉사 소모임 ‘E-Bridge’(이하 이브릿지)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이브릿지는 2024년 3월부터 우리동작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함께 교내외 카페 15곳에 점자/NFC 메뉴판을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장애인의 자립 생활을 지원하고, 비시각장애인이 점자를 일반 활자와 동등한 언어로 인식할 수 있도록 ‘보편화’하는 작업을 수행하고자 했다.
점자 메뉴판 도입은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류혜준 한국장애인재단 매니저는 “점자 메뉴판은 시각장애인의 독립적인 메뉴 선택을 돕는 중요한 도구”라며, “소비자의 자율성을 높이고 인식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 김바른이 씨 역시 “이전에는 주문할 때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스
스로 주문할 수 있게 되었다”며 자립의 의미를 강조했다. 점자 메뉴판이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에 미치는 영향이 오히려 더 크다는 평가도 있었다. 시각장애인 김바른이 씨는 “이러한 시도가 비장애인의 인식 변화를 유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으며, 시각장애인 이은혜 씨 또한 “점자 메뉴판을 통해 비장애인들도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주문하는지 알게 되는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브릿지가 점자 메뉴판을 비치한 ‘카페 ING’와 ‘북카페 파오’의 사장님 역시, “비장애인 고객들이 좋은 프로젝트라며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고 전했다.
배리어프리 키오스크의 보편화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점자 메뉴판은 더욱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점자 메뉴판은 상대적으로 설치와 운영에 있어 부담이 적고, 중소사업장에서도 쉽게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점자 메뉴판의 도입은 시각장애 소비자의 선택 폭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인식 개선 측면에서 대중의 미비했던 관심을 끌어올릴 긍정적 신호탄이 될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개선, 향후 과제는?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개선은 추후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까? 박진석 이화여자대학교 특수교육연구소 교수는 디지털 접근성 강화를 강조하면서, “디지털 콘텐츠의 접근성이 확보되더라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며, 특히 “노령 시각장애인의 경우, 디지털 기기 사용이 어려울 수 있어 이에 대한 별도의 지원책이 필요하고, 단순히 기술적 해결이 아닌, 비장애인의 인식 개선과 시각장애인의 디지털 활용 능력 향상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일부 글로벌 프랜차이즈, 예를 들어 맥도날드와 KFC 등에서는 배리어프리 키오스크를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용자인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은 다소 다르다.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는 “현재 배리어프리 키오스크가 설치되어있는 매장 자체가 많지 않으며, 설치되어 있는 경우에도 키오스크 이용이 간편하지는 않다. 특히 기기에 오류가 발생했을 때 직원들조차 해결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불편함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히 하드웨어 개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실제 사용자 경험을 반영한 운영 매뉴얼과 직원 교육이 병행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한국장애인재단의 류혜준 매니저는 시각장애인의 소비권과 선택권 보장을 위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서비스 제공자를 대상으로 한 적극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교육과 매뉴얼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하게 한다.
추가적인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접근성 개선 방안으로, QR코드·NFC 태그·위치 기반 자동 메뉴 알림 서비스 등 다양한 방식의 음성 안내 시스템의 도입이 제시될 수 있다.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는 “박물관에서 사용하는 음성 도슨트 안내 기기가 카페나 식당에도 도입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또한, 시각장애인 김바른이 씨는 “토스 애플리케이션의 블루투스 친구 맺기 기능처럼, 특정 매장에 들어서면 자동으로 메뉴가 휴대폰에 전송되어 보이스오버 기능을 통해 내용을 들을 수 있다면 훨씬 편리할 것”이라고 의견을 더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 문화·여가생활을 아우르는 모든 영역에 걸쳐 정보 접근권의 보장이 필수적이지만, 시각장애인은 이러한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받는 데에 여전히 많은 제약을 받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인 시설 확충보다는 실질적으로 접근성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할 뿐 아니라, 장애를 가진 동료 시민의 사정에 관심을 두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할 것이다.
이브릿지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점자 메뉴판을 비치한 ‘카페 ING’의 사장님은 이렇게 말했다. “이 프로젝트를 접하는 점주로서 지향해야 할 방향은 타인의 도움 없이도 장애인 고객분들이 불편함 없이 매장을 이용하실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사회적 소수자에게 편리한 환경은 누구에게나 편리한환경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습니다. 이런 시도가 큰 흐름이 되어 어딜 가나 점자 메뉴판 등의 편의시설이 당연한 환경이 되면 좋겠습니다.”
기술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당연하게 누리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높은 장벽일 수 있다. 이제는 익숙하게 누리고 있는 편리함이 특권이 아닌지 다시금 돌아보고, 소외된 이들이 없는지 살펴볼 때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지에 대해 다시 한번 물어봐야 할 때다. 그것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의 첫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