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란 교수는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전쟁 체험과 기억을 투영한 '강도몽유록'과 '박씨전'을 다루며, 전쟁 기록 문학이 지니는 의미를 논했다. 임수현 기자
조혜란 교수는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전쟁 체험과 기억을 투영한 '강도몽유록'과 '박씨전'을 다루며, 전쟁 기록 문학이 지니는 의미를 논했다. 임수현 기자

“드라마 ‘연인’에서 여인들의 두건이 물에 떠다니는 장면, 보신 적 있나요? 이 장면은 강화도에서 순절한 여성들의 기록을 상세히 찾아보고 연출한 것입니다. 강도몽유록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 있죠.”

깜깜한 밤에도 마포구 주민들이 삼삼오오 마포중앙도서관 세미나실에 모였다.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BK21+ 교육연구단(교육연구단)과 마포중앙도서관이 협력한 ‘마중도 인문학 살롱(인문학 살롱)’을 듣기 위해서다.

19일 진행된 3회차 강의에서는 우리대학 조혜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우리 소설로 읽는 전쟁과 여성’을 주제로 강연했다. 주로 남성이 등장하는 조선시대 전쟁소설과 달리 여성을 중심으로 서술된 ‘강도몽유록’과 ‘박씨전’을 다루며, 전쟁 기록 문학이 지니는 의미를 논했다.

조 교수의 “강화도에 가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크게 “네”라고 대답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적극적으로 강의에 참여했다. 노트에 내용을 필기하며 강의에 몰입하는 청중도 있었다.

‘강도몽유록’과 ‘박씨전’은 병자호란을 겪은 조선시대 여성들의 전쟁 체험과 기억을 투영한 작품이다. 조 교수는 “전쟁은 특히 여성, 어린이, 노인에게 더 가혹하다”며 “오늘날 우리도 여전히 전쟁의 위기와 참상을 목도하고 있다”고 작품 분석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어“병자호란을 다룬 두 작품을 통해 조선시대 전쟁소설에 나타난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강의를 들은 홍성자(60·여)씨는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아 강의를 신청했다”며 “특히 여성이 전쟁에서 겪은 고통을 다룬 고전문학을 자세히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김승우 교수는 다양한 신분의 삶 속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향가를 해석하며 인간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제공=마포중앙도서관
김승우 교수는 다양한 신분의 삶 속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향가를 해석하며 인간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제공=마포중앙도서관

이번 인문학 살롱은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육연구단 교수들이 참여했다. BK21+ 사업은 대학 내 학문적 탐구를 넘어, 일상과 연계해 사회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마포중앙도서관과의 인문학 살롱은 교육연구단의 ‘학문의 대중화’와‘지역 특화’라는 지향점과 맥을 같이한다. 교육연구단은 마포구와 협력해 인문학에 관심 있는 시민들에게 자신들이 탐구하는 K-어문학을 친근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인문학 살롱은 6회차에 걸쳐 진행된다. 12일(화)부터 28일(목)까지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주민을 위한 강의를 펼친다. 1회차는 김승우 교수(국어국문학과)가 12일 ‘향가로 읽는 신라인의 삶과 꿈’을 주제로, 2회차는 황지선 교수(국어국문학과)가 14일 ‘인간으로 동물 되기: 한국소설의 의동물화와 포스트휴먼적 상상력’을 주제로 강의했다.

김승우 교수는 네 편의 향가 <혜성가>, <풍요>, <도천수대비가>, <안민가>를 해석했다. 유명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 강의 초반에는 <제망매가>처럼 잘 알려진 향가를 예로 들며 점차 낯선 내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갔다. 역사책이 지배층의 이야기를 주로 기록한 것과 달리, 향가는 다양한 신분의 삶 속 체험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승우 교수는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의 체험과 반응은 본질적으로 바뀌지는 않는다”며 “먼 시대의 향가를 선정해 인간 삶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현재 우리가 겪는 빈부격차, 국제 전쟁 등의 문제들이 향가의 시대에도 존재했음을 계속 상기시키며 강의를 진행했다. 1회차 강의도 수강한 홍씨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모습이 똑같다고 느껴서 좋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황지선 교수는 “타자를 구분짓는 경계가 넓어질수록 우리의 삶도 풍성해진다”며 “타자 문제 해결에 나설수록 우리의 문제도 해결될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제공=마포중앙도서관
황지선 교수는 “타자를 구분짓는 경계가 넓어질수록 우리의 삶도 풍성해진다”며 “타자 문제 해결에 나설수록 우리의 문제도 해결될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제공=마포중앙도서관

2회차 강의를 맡은 황 교수는 자신이 임시보호한 강아지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청중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강의에서는 동물을 사유하는 철학적 논의를 살핀 후, 동물 존재와 화자를 전면에 내세우는 한국소설을 분석했다. 서이제 작가의 ‘두개골 안과 밖’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 채 동물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얘기했다. 황 교수는 “타자를 구분 짓는 경계가 넓어질수록 우리의 삶도 풍성해진다”며 “타자 문제 해결에 나설수록 우리의 문제도 해결될 확률이 크다”고 강조했다.

3회차는 조 교수의 강의로, 공적 담론에 가려져 타자화된 조선시대 여성들의 목소리에 접근했다. 4회차 강의가 열린 21일에는 연남경 교수(국어국문학과)가 ‘현실을 바꾸는 SF의 상상들’을 주제로 AI와 함께하는 세상을 상상하고 생태계와 인간의 공생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했다. 연 교수는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이라며 “인간이 생태계와 공생 관계에 있음을 알고 서로 의지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열릴 5, 6회차 강의는 소신애 교수(국어국문학과), 김동준 교수(국어국문학과)가 진행한다. 소 교수는 지역어의 문화적 가치를 공유하고, 지역어 보존의 필요성을 이야기할 예정이다. 그는 “시민 대상 강좌이므로 콘텐츠 속 사투리를 활용하거나 사투리능력고사 시험 문제를 직접 푸는 등 친숙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준 교수는 ‘옛 그림과 시로 만나는 마포 한강’이 주제인6회차 강의를 마지막으로 인문학 살롱의 끝을 장식할 예정이다.

마포중앙도서관 교육정책과 운영지원팀 현정 담당자는 인문학 살롱을 “대학과 지역의 상호 발전적 프로그램“이라고 표현했다. 대학은 지역 공동체에 공헌하고 도서관은 양질의 콘텐츠를 제공하며, 지역사회의 연계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대학과 도서관의 협력을 문인과 지식인들이 담론하던 장소 ‘살롱'에 빗댄 이 사업은 마포구민에게 인문학 강연의 장을 마련한다. 이어 ”직장인들의 도서관 이용 활성화를 위해 야간에 진행한다“며 ”실제로 마포구민의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덧붙였다.

국어국문학과 학과장을 맡은 연 교수는 “(주민들이 강연을 통해) 풍요로운 삶은 자기계발서보다 문학에서 찾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인문학 살롱은 우리대학과 지역사회가 뜻을 모으고, 이에 호응하는 참여자들이 있어 가능한 시도”라며“대중에게 K-어문학의 성과를 공유하고 지식을 확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5, 6회차 강의는 마포중앙도서관 누리집(mplib.map.go.kr)에서 신청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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