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8일 진선미관 식당 점심이다. 비건 식단은 제공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예지 기자
8월28일 진선미관 식당 점심이다. 비건 식단은 제공하지 않는 모습이다. 한예지 기자

비건이 이용할 수 있는 우리대학 앞 식당은 40곳이다. 1년 전인 2023년에 비해 8곳이 늘었다. 여론조사기관 한국리서치는 2023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채식 인구를 2023년 4%, 2024년 5%로 추정했고, 향후 채식주의를 실천 혹은 지속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응답 비율은 여성이 42%로 남성보다 10% 높았다. 우리대학 앞 비건 식당의 증가는 채식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실천 비율이 늘어남에 따른 결과다. 그러나 정작 우리대학은 비건 학식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 교내 위치한 ▲공대 식당 ▲진선미관 ▲한우리집 식당 ▲E-House(이하우스) 식당(201동) ▲I-House(아이하우스) 학생식당 5개 교내식당 중 어느 곳에도 비건 학생들을 위한 메뉴는 없었다.

채식주의자는 어느 단계의 채식을 지향하냐에 따라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달라진다. 채식은 크게 육류 섭취 유무에 따라 베지테리언과 세미 베지테리언으로 나뉜다. 베지테리언의 단계는 다음과 같다. 비건(Vegan)은 과일, 채소, 콩 등 식물성 재료만 먹는 경우를 의미하며, 기사에서도 말하는 비건도 이에 해당한다. 식물성 재료, 유제품을 먹는 락토 베지테리언(Lacto Vegetarian), 식물성 재료와 달걀 등 새의 알을 먹는 오보 베지터리언(Ovo Vegetarian)도 있다. 락토-오보 베지테리언(Lacto-Ovo Vegetarian)은 식물성 재료와 유제품, 새의 알을 섭취한다.

 

수용도 이용도 부족하다더니 시도조차 없었다

비건 학식은 제56대 총학생회(총학)의 공약 중 하나다. 그러나 임기가 3개월 채 남지 않은 현재까지 비건 학식 도입은 무소식이다. 그동안 논의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다. 총학 권리팀은 5월23~24일 교내 각 부처 실무진과 학생들의 요구안에 대해 협의하는 1차 정기협의체에서 학교 측에 비건 학식 도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학교는 수요 부족을 이유로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대학이 비건 학식에 관해 학생 수요조사를 진행한 적은 없다. 비건 학식을 공약으로 내건 총학 또한 수요조사를 시행하지 않았다. 총학은 “비건 학식은 학내 소수자의 입장을 고려해서 보장돼야 하는 것"이라며 “수요와 공급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총학은 “2차 정기협의체 전까지 조사 진행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8월26일 이대학보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총무처 총무팀은 비건 학식 도입이 어려운 이유로 학생식당 운영의 어려움을 꼽았다. 총무처 총무팀은 “기존 학식도 이용하는 학생 수가 많지 않아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한 “학생식당 측에서도 식수를 확보하기 어려워 가격 인상을 요구하는 중”이라며 “(이 상황에서) 비건 학식까지 논의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비건 학식을 시범 운영했거나 현재 비건 메뉴를 제공하고 있는 타대와 달리 우리대학은 비건 학식 도입 전례조차 없다. 중앙대는 총학생회의 요구로 2021년 2월부터 4개월간 비건 학식을 운영했다. 성균관대 인문사회과학캠퍼스는 5월12일부터 한 달간 일반 식단과 함께 동물성 재료가 안 들어간 비건 학식을 시범 운영하며 메뉴별 성분도 함께 표기했다. 서울시립대는 2021년 10월부터 2022년 3월까지 매주 수요일은 고기를 먹지 않는 ‘채식 Day’를 운영했다. 증가하는 비건 학생들을 고려한 학교 측의 노력이었다. 

실제 변화까지 이어지진 못했지만 우리대학에서도 지속적으로 비건 학식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있었다. 비거니즘 지향 자치단위 ‘솔찬’이 2018년 진행한 학내 비건식 요구서명운동에 145명이 참가했다. 2019년 우리대학은 학생 의견을 반영한 ‘No Meat’ 학식을 제공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단됐다. 육류만 제외한 식단으로 완전한 비건식은 아니었지만 솔찬이 2023년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1명 중 40명이 ‘No Meat’ 학식이 다시 제공된다면 이용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4점(그렇다), 5점(매우 그렇다)로 답했다.

 

우리대학 내외 비건 인식은

비건에 대한 우리대학 학생들의 인식 수준은 어떨까. 각 학과 및 단과대 학생회의 2024학년도 1학기 간식 사업을 조사한 결과, SNS 계정 및 소통 창구로 확인 가능한 우리대학 14개의 단과대 중 12개의 단과대, 52개의 학과 중 32개의 학과가 비건 선택지를 제공했다. 1학기에 간식 사업을 진행하지 않은 3개의 학과를 제외하면 62%의 학생자치단체에서 비건 재학생을 고려한 것이다. 학생회 공식 SNS 계정에 올라온 게시물을 참고해 타대 간식 사업을 살펴본 결과, 연세대는 확인 불가한 15개 학과를 제외하고 66개 중 8개의 학과에서 비건 옵션을 제공했다. 

우리대학 앞 식당가에도 비건 선택지가 늘어났다. 솔찬이 8월22일 공개한 ‘2024 비건 지도'에 따르면, 우리대학 앞 식당가에는 40개의 비건이 이용할 수 있는 가게(폐업한 뉴욕비앤씨 제외)가 있다. 이는 2024년 2월 기준으로 작성됐다. ‘2023 비건 지도'에는 비건 식당이 32개 존재했다. 1년 사이 비건 학생이 갈 수 있는 식당이 8곳 늘어난 것이다. 지도 범위는 우리대학 정문과 후문 식당가에서 신촌까지로, 비건 메뉴가 있거나 요청 시 재료를 변경할 수 있는 식당을 포함했다. 분식집 아콘스톨은 2021년도부터 비건 메뉴인 비트김밥을 판매하고 있다. 아콘스톨 사장 조용운(60·남)씨는 “비트김밥 제공 전부터 재료를 빼달라는 식의 요청 사항이 있었다”며 “영양가도 있는 비건 메뉴를 고안했다"고 말했다. 떡볶이 전문점 산타비 사장 정영희(61·여)씨도 “비건을 찾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 손님들이 비건 조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모두의 선택권이 보장 받도록

솔찬은 “고기 위주의 식단이 제공되는 학식에서 비건이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적다”며 “같은 돈을 내고도 부실하게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가장 접근이 쉬운 편의점과 이화상점에는 유부 김밥과 같이 비건 메뉴가 적게나마 있지만, 그마저도 재고가 부족해 항상 먹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결국 비건이 편의점에서 언제든 먹을 수 있는 건 과일과 두유뿐이다. 솔찬의 안아현(화학나노·21)씨는 “학문관 이화상점에 참치 김밥은 남아있어도 유부 김밥은 자주 없었다"며 “이마트24에서 두유만 먹은 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공학관에서 주로 수업을 듣는 비건 학생들은 이화상점이나 정문 근처 식당과 거리가 멀어 선택지가 더 좁아진다. 솔찬은 “(공학관에서 수업을 듣는 비건 학생들은) 아예 식사를 거를 때도 있다”고 말했다. 

총학은 비건 학식 도입의 최우선 과제로 학교와의 협의안 도출을 꼽았다. 1차 정기협의체에서 비건 학식에 대해 학교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한 만큼, 10월에 있을 2차 정기협의체에서는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총학은 “비건 간편식 등 대안의 시행 가능성을 묻고, 학교의 확실한 답변을 받아 지속적으로 비건에 대한 협의가 이어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학식만이 아니라 간편식, 간식 등 폭 넓게 다루고자 한다”며 “학교 행사에서 간식류를 제공할 시 비건식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체적인 비건식 가이드라인은 아직 없는 상황이다.

솔찬은 비건 학식 도입을 위한 학내 구성원의 관심과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솔찬은 “학교 측이 수요가 적다며 비건 학식 도입을 미루고 있는 만큼, 비건 지향 여부에 상관없이 비건 학식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는 이화인의 의견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학교에서 비건 학생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재학생의 요구에 귀 기울여주길 바란다”며 모두에게 공평한 선택권을 위한 학교의 노력이 필요함을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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