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 수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이화상점 카페 학문관점의 새로운 사원들

289번 손님, 주문하신 아이스티노 나왔습니다.

활기찬 목소리가 학생문화관(학문관) 지하1층에 위치한 이화상점 카페(이화카페)에 울려 퍼졌다. 한쪽 벽에 걸린 시계는 오후12시를 가리키고, 20명이 넘는 손님들이 음료를 기다린다. 음료를 애타게 기다리는 손님의 마음을 눈치챈 듯 사원들의 손은 바쁘다. 빵모자를 쓰고 이화그린 유니폼을 입은 사원들이 평정심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음료를 만들어 내는 모습에 기다리는 학생 중 그 누구도 주문을 재촉하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음료를 받아 든 학생들의 얼굴엔 작은 미소가 핀다. 그 순간 학생들이 받은 건 음료 한 잔과 사원들의 열정이었다.

 

이화카페의 새로운 사원을 소개합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임정현씨의 모습. 그는 “커피 만드는 일이 즐거워서 이화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남현지 사진기자
활짝 웃는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 임정현씨의 모습. 그는 “커피 만드는 일이 즐거워서 이화카페에서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남현지 사진기자

이화인에게 음료와 열정을 건넨 이들은 8 월1일부터 학문관 이화카페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이수매니지먼트 소속 발달장애인 사원이다. 이수매니지먼트 카페팀 소속으로 김옥길기념관 이화카페에서 4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 이수매니지먼트는 “처음에는 사원들이 일하는 속도가 빠르지 않아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이 불편해 할까 걱정했다”며 “(그러나) 손님들이 사원들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줬고 단골손님도 생겨났다”고 말했다. 이후 이수매니지먼트는 교내에도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근무하는 카페를 만들어보고자 결심했고, 8월1일부터 학문관 이화카페에서 사원들이 근무를 시작했다.

이화카페에서 음료를 만드는 건 사원들이, 번호를 부르는 건 함께 일하는 비장애인 사원이 담당한다. 학문관 이화카페에 발달장애인 사원들이 근무하기 시작한 때부터 함께한 박혜윤 매니저는 “음료가 나오면 매니저나 비장애인 사원들은 ‘음료 나왔습니다’라 외치고 빠르게 할 일을 하는 반면,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기침하고 쭈뼛대며 부끄러워하는 경우가 많아 오래 걸릴 때가 있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손님을 직접 응대하진 않지만, 음료가 그들의 손을 떠나 손님의 손에 가기까지 한 순간도 눈을 떼지 않는다. 손님이 음료를 마시기 시작하면 그제야 옅은 미소를 띠며 다음 음료를 만든다.

이화상점·카페 학생문화관점 카운터 옆에 놓여 있는 사원 소개글. ‘<카페팀 오후사원>’이라는 제목 아래 오후 시간대에 근무하는 발달장애 사원들의 개성 있는 자기소개가 적혀 있다. 남현지 사진기자
이화상점·카페 학생문화관점 카운터 옆에 놓여 있는 사원 소개글. ‘<카페팀 오후사원>’이라는 제목 아래 오후 시간대에 근무하는 발달장애 사원들의 개성 있는 자기소개가 적혀 있다. 남현지 사진기자

발달장애인 사원들은 계산대 옆 소개글을 통해서도 손님들과 소통하고 있다. 소개글에는 사원들이 직접 본인을 소개한 말들이 담겨 있다. 발달장애인 사원 허댕(가명)씨는 손님들에게 자신을 “웃음이 많은 허댕”이라고 소개하며 “수줍음이 많아서 얼굴이 잘 빨개져요”라고 적었다. 이외에도 ‘슈퍼스타 임날두’, ‘요믹’등 각자의 개성이 담긴 별명도 적혀있다. 이수매니지먼트는 “사원들이 일하는 속도가 학생들이 원하는 속도에 맞지 않을 경우 불편해할 수 있어 미리 안내하고, 양해를 구하고자 소개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조금 느릴 때도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후  카페로 돌아가 주문 받은 음료를 제조 중인 임정현씨. 그는 “손님들이 자신이 만든 음료를 마실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현지 사진기자
인터뷰를 마친 후 카페로 돌아가 주문 받은 음료를 제조 중인 임정현씨. 그는 “손님들이 자신이 만든 음료를 마실 때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현지 사진기자

학문관 이화카페에서 일한 지 어느덧 3개 월이 된 임정현 사원(27·남)이 가장 잘 만드는 메뉴는 라떼 음료다. 임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바리스타 체험을 하고 커피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꼈다. 임씨는 바로 그 해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이후 이수매니지먼트에 지원해 이화카페에서 일하게 됐다. 그는 “즐거워서 앞으로도 (이화카페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며 “(이화카페에서는 청각장애와 발달장애를 이해해주고 대화하기에) 다른 카페에서 일하면 대화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임씨는 발달장애와 청각장애를 같이 가지고 있어 ◆인공와우를 착용하고 근무한다. 말하는 사람의 입 모양을 봐야 대화가 수월해 사람들의 입 모양을 열심히 살핀다. 덕분에 임씨는 사람들의 비언어적 표현을 살피는 능력이 생겼다. 그는 이화카페에서 손님이 말할 때면 손님의 입 모양을 빤히 쳐다봐 메뉴 를 파악한다. 그는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수다쟁이기도 하다. 이대학보와의 인터뷰 중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과 가본 여행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속도는 느리지만, 전하고 싶은 말은 반복해서 정확하게 이야기하는 그였다. 이화 구성원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임씨는 “말할 때 천천히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함께 일해서 즐거워요”

임씨는 음료 만들기뿐 아니라 설거지, 마감 청소 업무도 한다. 그는 이화카페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거듭 즐겁다고 말했다. “사원들이랑 매니저님이랑 즐겁게 같이 일했어요.” 임씨는 특히 박 매니저 이야기를 하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매니저님과) 대화할 때 잘 통해서 좋아요, 같이 일해서 즐거워요.”

발달장애인 사원들을 위해 비커에는 메뉴마다 들어가야할 음료 양이 표시돼 있다. 강예본 기자
발달장애인 사원들을 위해 비커에는 메뉴마다 들어가야할 음료 양이 표시돼 있다. 강예본 기자

박 매니저를 비롯한 이화카페 매니저들은 이수매니지먼트에 소속돼 활동 중이다. 이수매니지먼트는 장애인만 모여 단순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장애인표준사업장과는 달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 공동체에서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회사다. 카페팀 매니저는 장애사원에게 음료 레시피와 이론적 부분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사원 역량에 맞춰 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하고 원활한 진행을 돕는 것도 매니저의 일이다. 발달장애인 사원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박 매니저는 이화카페에 서 사원들이 업무적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처음에는 사원들이 음료 제작과 청소 정도의 업무만 할 수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며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아지고 자신에 맞는 업무를 찾아 나가는 것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매니저들은 발달장애인 사원들의 업무를 분담해 표에 작성해주고 있다. 강예본 기자
매니저들은 발달장애인 사원들의 업무를 분담해 표에 작성해주고 있다. 강예본 기자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살 수 있는 경험을 하기 위해”

이수매니지먼트는 장애인이 사회 안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를 위해 학교법인 이화학당이 설립한 자회사형 장애인표준사업장이다. 이수매니지먼트의 이번 이화카페 내 발달장애인 고용도 장애사원과 이화 구성원의 접점을 늘리기 위함이다.

이수매니지먼트는 서류전형과 ▲의사소통 가능 정도 ▲소근육 활용 정도 ▲소비기한 이해 및 24시간 개념 확인을 비롯한 면접 과정을 거쳐 발달장애인 사원을 선발한다. 현재 학문관 이화카페에는 오전 근무 발달장애인 사원 3명, 오후 근무 발달장애인 사원 3명이 근무하고 있다.

이화 구성원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는 임 씨는 손님들이 자신이 만든 음료를 마실 때 뿌듯함을 느낀다. 음료를 마시며 손님들이 건네는 작은 칭찬이 좋아 카페 업무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임씨에게도 퇴근길은 고되다. 그는 “카페 일은 힘들지 않지만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계속 서서 가는 게 힘들다”고 말하며 퇴근길을 힘들어하는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보였다. 임씨의 목표는 “멋진 사원”, “슈퍼스타 사원”이 되는 것이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바리스타로 일하며 2025년 스페셜 올림픽 국가대표 출전도 앞두고 있는 그는 이미 ‘멋진 사원’이자 이화의 구성원이었다.

◆인공와우: 청신경에 전기적 자극을 직접 제공해 줌으로써 손상되거나 상실된 청신경세포의 기능을 대행하는 전기적 장치. 말소리를 전기적 신호로 바꾸어 달팽이관에 있는 청신경세포를 자극하여 대뇌에 소리를 전달하여 듣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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