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탐색 과정에서 겪은 여러 시행착오는 저학년 성적부에 고스란히 반영됐습니다. (중략) 과거의 기록이 여전히 저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6월16일 학점포기제를 요구하며 이화에 바란다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2024년 10월30일 기준 1년간 이화에 바란다 정책 제안에 올라온 학점포기제 부활을 건의하는 글은 6건이다. 개인 단위로, 그리고 교육공동행동(교공행)을 통한 단체 단위로 학점포기제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끊이질 않고 있다.
학점포기제 폐지, 특히 호크마대에게 영향 커
학점포기제는 재학 중 취득한 학점 일부를 학생이 선택해 포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특정 과목의 학점포기를 선택할 경우 해당 과목 학점은 전체 취득 학점에서 제외되며, 학점도 전체 평점에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대학에서는 학점포기제가 2005년부터 시행됐으나, 2015년 정부가 대학성적운영 개선을 이유로 각 대학에 학점포기제 폐지를 권고한 이후 사라졌다. 시행 당시 우리대학은 6학기 이수 후 재학 중 1회에 한해 최대 6학점을 포기할 수 있도록 했다.
학점포기제 부활은 정시통합선발제도로 입학해 전공이 정해지지 않은 호크마교양대학(호크마대)을 중심으로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9월8일~10월2일 진행한 하반기 교공행에서 호크마대의 위원회인 정시통합선발제도 특별위원회(특위)는 학점포기제 도입을 요구안 중 하나로 발표했다. 6월4일 총장간담회에 이어 다시 한번 학점포기제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 특위는 학점포기제 도입 이유로 2학기 동안 여러 전공을 경험한 뒤 적성에 맞는 전공을 선택하는 단대 특이성을 제시했다. 현재 학점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적 부담으로 학생들이 여러 전공 경험하기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호크마대에서 의류산업학과로 진입한 조수인(의류·19)씨는 “입학 당시 희망했던 전공과 진입한 전공이 달라 재수강도 어려운 상황인데, 당시 들은 수업의 학점이 낮아 전체 평점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학점포기제가 도입된다면 진로를 탐색 과정에서 불필요해질 수도 있는 과목 수강에 부담이 적어지고, 대신 다른 과목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교공행 이후 진행된 2차 정기협의체에서도 학점포기제를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교무처 학적팀은 “타대 사례를 검토 중이며, 호크마대의 특이 상황을 반영하겠다”고 답했다.
학점 포기제, 호크마만의 요구안 아니다
타 단대 학생들도 학점포기제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김우정(경제·19)씨는 복수전공을 진입한 후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 걸 깨달아 복수전공을 취소했다. 김씨는 복수전공을 하며 들었던 강의들에 대해 “(복수전공 과목) 학점이 낮은 편이라 취업에 큰 지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주전공이 아닌 다른 전공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받은 학점은 김씨의 꼬리표가 됐다. 이는 곧 대부분의 학생이 도움 되는 강의를 선택하기보다는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강의를 선택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김씨는 "현재와 같이 학점 및 스펙 인플레이션이 나타난 상황에서, 학점포기제가 없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의 질을 고려하여 학점을 잘 받을 수 있는 수업으로 몰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혔다.
전체 학점을 높이고 싶은 학생들도 학점포기제 부활을 원하고 있다. 낮은 학점은 로스쿨과 같은 특수대학원 진학과 취업 등에 감점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학점을 만족스럽게 받지 못한 경우 재수강을 할 수 있지만, 해당 과목이 폐지됐을 경우에는 재수강조차 불가능하다.
타대는 적극 운영, 우리대학은 여전히 논의 중
2015년 학점포기제를 폐지한 우리대학과 달리,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중 현재까지 학점포기제를 운영하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는 등록학기 7학기 이상, 102학점 이상 수강한 학생만 재학 중 1회 학점포기를 허용한다. 단 필수 과목과 F를 받은 과목은 포기를 제한하고 있다. 학점을 포기한 과목은 성적증명서에서 W(Withdraw)로 학점을 표기한다.
건국대는 동일하거나 유사 과목 또는 대체 과목 개설로 인한 중복수강 등 수강신청의 혼란을 방지하고자 기존의 ▲재수강제도 ▲F학점삭제제도 ▲폐과목삭제제도를 폐지하고 취득학점포기 제도를 학생당 최대 3회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수한 학기의 수에 따라 포기 시기와 포기 대상 학점을 달리 설정해 학점 관리의 유연성을 높였다.
경희대도 학점포기 대상 과목에 조건을 두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취득한 과목 중 ▲교육과정 개정으로 폐지된 과목 ▲국내외 대학교에서 학점교류 형태로 취득한 과목 ▲사회봉사와 졸업논문에서 N 또는 F를 취득한 과목 등에 대해 학점포기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포기한 과목은 성적증명서에 W로 표기된다.
학점포기제 운영 여부에 대해 교무처 학적팀은 “구체적 답변은 어려우며, 타대 동향과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면밀히 살펴 결정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