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관 앞 라틴아메리카 유학생회 부스에서 멕시코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시식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학문관 앞 라틴아메리카 유학생회 부스에서 멕시코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시식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안정연 사진기자

“제 노비를 찾아주시면 김치국수 한 그릇을 무료로 드려요!”

생활관 앞, 새하얀 한복을 입고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른 학생이 질주한다. 중앙풍물패 액맥이가 운영하는 ‘액맥주막’의 노비 역을 맡은 학생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 속 캐릭터 ‘하울’부터 머리에 흰 두건을 두른 도망 노비까지, 각기 다른 컨셉으로 이뤄진 독특한 부스를 방문한 이화인들은 잠시 학업 걱정을 내려놓고 웃으며 축제를 즐겼다. 8일(수)~10일(금) 진행된 해방이화 138주년 대동제 ‘리베르이화(Liber Ewha)’는 그동안 숨겨왔던 각자의 끼를 마음껏 펼치는 무대가 됐다.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이화인들이 모여 만든 대동제를 샅샅이 살펴봤다.

 

'해방이화'의 전통과 추가된 행사까지, 리베르 이화 2024

대동제의 시작은 ‘이화인 한솥밥’이 장식했다. 8일 오전11시30분, ‘한솥밥 비비미’에 지원한 이화인들은 학생문화관(학문관) 지하에 모여 함께 초대형 비빔밥을 비볐다. 색색의 재료로 ‘리베르 이화’가 쓰인 비빔밥을 다회용기에 덜어 나누며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9일 오후12시30분 학문관 광장에서 열린 ‘네가 그린 이화그린’ 행사에서는 각자의 개성으로 무장한 이화인들의 무대가 펼쳐졌다. 얼굴에 초록 페인트를 칠한 참가자부터 SNS의 인플루언서를 모방한 팀까지, 3팀이 참가해 자신만의 유쾌한 방식으로 이화그린을 재해석했다.

얼굴을 이화그린 색으로 칠하고 옷을 모두 초록색으로 맞춰 입은 ‘새마을운동 팀’의 원세윤(커미∙23)씨는 “왕십리역에서 이대역까지 초록색 얼굴로 통학했다”는 뒷이야기를 밝혀 학생들의 웃음과 탄식을 동시에 자아냈다. 초록색 버스 모양 박스를 몸에 끼우고 나타난 ‘벗스’팀도 있었다. 박스에 이화학당을 창립한 스크랜튼 여사와 우리대학 출신 유명인들의 사진을 붙여 등장한 벗스팀의 송혜준(식영∙23)씨는 “모든 벗들이 어디로든 원하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기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플루언서에 의해 화제가 된 유행어 ‘구다사이’를 패러디한 ‘이화감성모르면나가라’ 팀은 관중 투표를 통해 최고상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이화감성모르면나가라' 팀이 장기자랑하는 모습. 변하영 사진기자
이화감성모르면나가라' 팀이 장기자랑하는 모습. 변하영 사진기자

축제의 열기는 밤까지 계속됐다. 9일 저녁에는 6년만에 다시 열린 야시장에 축제를 즐기러 온 이화인이 가득했다. 오후5시30분~9시에 진행된 야시장은 푸드트럭과 플리마켓으로 이뤄졌다. 푸드트럭에 방문한 이화인들은 대강당 계단에서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눠먹었다. 푸드트럭에서 친구들과 음식을 구매한 김채은(사복∙21)씨는 “밤까지 축제를 한 게 처음이라 설레고, 다들 즐거워 보였다”고 말했다. 오후7시30분이 되자 이화인들은 야간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야시장에서 먹거리를 사들고 잔디광장으로 모였다. 영화 ‘비긴어게인(Begin Again·2014)’ 을 본 이화인들은 영화 장면이 바뀔 때마다 함께 슬퍼하고 기뻐했다. 영화제의 끝까지 자리를 지킨 정은아(사학∙22)씨는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영화 시작 전까지 악착같이 과제를 해치웠다”며 “오늘은 낭만있던 여름밤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화인 손으로 '해방'한 우리의 대동제

2024년 대동제에 참여한 222개의 부스가 보여준 독특함이 모여 다채로운 대동제를 만들어냈다. 학문관 부스 앞, 두 남녀가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다. 지나가던 학생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며 작은 무대를 즐겼다. 부스 앞에서 춤을 추던 라틴아메리카 유학생회는 한국 학생들에게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학문관 앞에 부스를 열었다. 부스에서는 브라질의 브링기로스와 멕시코의 부뉴엘로, 그리고 페루의 딸기 플란까지 모두 각국에서 기념일과 축제 먹는 디저트를 판매했다. 부스를 운영한 스테파니 안토넬리 (Stefany Antonelly∙심리∙22)씨는 “한국에서 재료를 구하기 힘들어 조리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학생뿐만 아니라 한국 학생들도 많이 방문해주고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라틴아메리카 부스 앞에서 춤을 추는 두 남녀. 허유진 기자
라틴아메리카 부스 앞에서 춤을 추는 두 남녀. 허유진 기자

일본 유학생회도 대강당 뒷편에 문화 공유를 위한 부스를 운영했다. 일본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메론소다와 일본식 화채인 프루트 펀치를 메뉴로 내놨다. 일본 유학생회 소속 난바 나츠미(Namba Natsumi∙커미∙21)씨는 “코로나 이후 한국 학생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며 “일본 유학생회를 홍보하고 일본 문화를 소개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2024년 대동제는 ‘리베르 이화’라는 키워드답게 축제 곳곳에서 ‘해방’의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장애와 비장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드는 부스들이 눈에 띄었고, 일회용품에서 벗어나 축제에서도 다회용기를 사용하려는 노력도 돋보였다.

대동제를 기획, 진행한 축제준비위원회(축준위)는 장애학생 지원 부스와 초대가수 공연 무대의 배리어프리존을 운영했다. 시각장애인용 점자 메뉴판을 제작하는 봉사 소모임 E-bridge(이브릿지)는 점자 스티커 및 점자명함 인쇄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체험은 수동 점자 인쇄기로 직접 종이를 눌러 점자를 새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점자 명함 제작에 참여한 김영우(물리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생각보다 점자가 어렵지 않아 지도교수님 명함까지 2개를 만들었다”며 “교내 곳곳에서 점자를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아임에코 반납처 안내판의 모습. 허유진 기자
아임에코 반납처 안내판의 모습. 허유진 기자

부스에서 산 음식을 나눠먹는 학생들 사이에서 ‘I’m eco’가 적힌 다회용기가 눈에 띄었다. 중앙환경동아리 이큐브와 친환경 업체 아임에코가 협업한 ‘GREEN EWHA’(그린이화)가 진행하는 다회용기 대여 프로젝트에서 제공한 용기다. 다회용 접시와 컵을 각 부스에 제공한 후 아임에코 부스에 반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다회용기 대여가 일회용기를 사는 것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9곳의 부스에서 서비스를 이용했다. 다회용기 대여를 신청한 사회대 홍차 동아리 홍작 대표 홍승혜(커미∙22)씨는 “일반 일회용품보다 가격은 비싸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에서 신청했다”며 “세척할 필요도 없고 용기를 수령하러 갈 필요도 없어 편의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협업을 기획한 이큐브 공동대표 정은주(경제∙22)씨는 “이화인들의 작은 실천이 모여 지속가능한 대동제를 만들기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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