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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포세대에게 외로움이 가지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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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부르는 말 중에 삼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말이다. 연애와 결혼을 포기했다고 하는데, 어찌 된 것이 내 주변에는 온통 커플뿐인 것만 같다. SNS를 켜 봐도, 뉴스 기사를 봐도 친구들도, 연예인들도 연애를 포기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 전화번호부에는 몇 백 명의 사람들이 저장되어 있지만, 그 중 연락하는 사람의 수는 매우 한정적이다.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지만 훨씬 더 외로워졌다. 눈앞의 친구보다는 핸드폰 안의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점점 상대에게 ‘충실해지는’ 방법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핸드폰 안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록 우리는 더욱 더 외로워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연애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끊임없이 연애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일지 모른다. 다른 관계에서는 충족될 수 없었던 외로움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연애는 결코 좋은 결말을 가져올 수 없다. 요즘 청년 세대의 연애가 과소비적 경향을 띠고, SNS에 보여주기식 연애가 만연하는 이유이다. 상대에 대한 충실함 없이 외로워서 시작된 관계는 상대보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며, 서로에게 생채기를 남기기 마련이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결코 한 사람과의 사랑이나 연애로서 충족될 수 없다. 봄이 온다, 벚꽃이 핀다.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스마트폰을 보며 외로움을 일시적으로 달래기보다는 홀로 이화동산을 걸으며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본인에게 충실하고 자신의 마음을 아는 사람만이 상대에게 충실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론광장
유가환(사회·13)
2015.03.2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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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브레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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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강의 시간에 에 실린 기사를 봤다. ‘2014 취업 전쟁 보고서’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였다. 스펙 좋은 서울대 문과생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 연세대도 고려대도 그렇다. 늘 보던 내용의 기사였지만 볼 때마다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후배는 우울해진다 말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사에 등장한 학생들의 스펙과 겹치는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다.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운동가 박권일이 쓴 출간 이후, 언론은 청년세대를 부정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청년실신. 취업이 안돼 졸업을 계속 미룬다고 NG(No Graduation)족. 알바로 학자금을 충당한다고 알부자족. 장기간 미취업자라고 장미족.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길이 막힌다고 삼일절. 이젠 이웃나라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빌려와 달관세대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작명소 수준이다. 그뿐인가. 용어에 맞는 케이스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케이스가 없으면 아는 대학생을 앉혀놓고 준비해둔 대본을 읽게 한다. 흥신소와 연기까지도 손을 댄다. 미디어 이론에는 ‘프레이밍 이론’이라는 게 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중들은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즉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은 대중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등을 형성할 수 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 또한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이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조차 그 프레임으로 자신을 본다. 고3때와 같다. 수험생 생활은 당연히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들이 주는 시선은 더 힘들다. ‘힘들지?’라는 물음은 ‘힘들어야지’라는 강요다. 365일 24시간 내내 힘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괴했다. 지금도다. 취업만 준비한다 치면 ‘요즘 바쁘지?’, ‘놀 시간도 없지?’ 같은 말들을 한다. 바쁨과 피곤과 힘듦을 강요한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야 한다. 더 괴로워야한다. 청년세대조차 잠시라도 즐거운 자신을 마주할까 두렵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불길처럼 번진다. 프레임에서 나갈 길을 잃는다. 청년세대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거짓은 아니다. 기업들은 돈이 없다며 임금을 동결하고 채용 인원을 줄인다. 취업 때문에 졸업을 유예한 사람도 많다. 취업을 못한 사람이 대졸자의 절반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그러나 언론은 취업한 절반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우울한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혹은 거기에 맞게끔 들이맞춰 보도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청년세대가 포기한다는 연애는 나만 빼고 다 한다. 난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산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서울대 문과생들은 웬만한 대기업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포기와 달관을, 우울과 불안을 강요받고 있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비판적 사고를 동원해 프레임 브레이크를 해야만 한다. 달관이라는 말로 청년세대를 미화시키는 그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스펙 좋은 서울대생이 떨어졌다는 말은 누군가 붙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설혹 저 모든 프레임에 부합한다 해도 자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뮤지션 선우정아의 2집 의 수록곡인 를 빌려 말한다.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함정에 겁먹지 마라. 그대가 가장 믿어야 할 것은 그들의 눈이 아닌 그대의 눈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건 그들의 생각이 아닌 그대의 생각이다. 위로가 아니다. 프레임 밖 진실이다.
여론광장
조은혜(광고홍보·11)
2015.03.29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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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3호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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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툰
윤다솜 만평기자
2015.03.2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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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놓친 선거, 노력으로 회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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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제47대 총학생회(총학) 보궐선거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다. 개표 가능 투표율인 50%를 겨우 넘긴 50.8%의 투표율을 기록하며 길었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총학이 뽑힌 것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다.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이 본교 학생 자치의 씁쓸한 현주소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계속된 '한집 선거', 낮은 투표율, 중앙보궐선거관리위원회의 허술한 선거 관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제47대 총학 보궐선거에는 작년 11월 진행된 제47대 총학 선거에서 당선됐다가 정후보가 학사경고 누적으로 제적되면서 해산한 '함께이화' 선거운동본부(선본)의 손솔 부후보가 단일 선본인 '이화답게'의 정후보로 출마했다. 손솔 부후보가 함께이화 선본의 해산에 큰 잘못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사태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던 부후보가 다시 정후보로 출마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작년에도 지적됐던 '한집 선거' 논란은 이번 보궐선거에서도 계속됐다. 손 정후보가 다시 나온 것과, 함께 나온 부후보 역시 이전 총학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는 점, 그리고 '함께이화' 선본을 비롯해 이전 선본과의 공약의 유사성 등이 그 예다. 학생대표로 구성된 중앙보궐선거관리위원회의 허술한 선거 관리도 문제로 지적됐다. 이는 구체적이지 않은 선거시행세칙과도 연관이 있었다. 총학생회선거시행세칙에 나와있는 검표 규정은 9개에 불과하다. 무수히 많은 예외 규정에서 중앙보궐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나치게 융통적인 기준을 보여줬다. 작년 703표에서 621표 줄어든 것이자,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치를 보여준 82표의 무효표가 이를 반증한다. 투표율 산정 과정에서도 관리의 허점이 드러났다. 투표율 산정 기준이 선거시행세칙에 정해져 있지 않아 내부적으로 혼란이 있었던 것이다. 중앙보궐선거관리위원회는 본지 기자의 지적이 있은 후에야 투표율 산정 기준을 정정하고 작년과 똑같은 기준으로 바로잡았다. 이같이 철저하지 못한 선거 과정은 학생들의 신뢰를 낮춰 학생 자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는 중앙운영위원회로 활동하게 될 총학 당선자를 비롯한 학생대표들은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앞으로 좀 더 투명하고 철저한 자치 활동을 통해 학생들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다.
사설(종료)
이대학보
2015.03.29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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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프로젝트 갖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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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는 손수건도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을 들어 올리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라는 시로 유명한 프랑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창의성을 발휘하여 기존과 다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일에 무수히 직면한다. 창의성의 문을 열기 위해 온갖 애를 써보지만 쉽지는 않다. 창의성 자체가 기존의 정형화된 매뉴얼이나 방법론이 통용되지 않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궁금해진다. 순식간에 손수건을 지렛대로 바꾸게 만드는 창조자들의 비법은 과연 무엇일까? 상상력과 창의성 분야를 연구해오면서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느냐고 물으면 분야를 막론하고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동일했다. 평소의 메모나 스케치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약간 맥이 풀렸다. 누구나 메모지를 가지고 다니면 획기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인가?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쉬운 것이 답일 리 없다. 섣불리 결론을 내지 말자. 메모가 창의성의 비법이 되는 것은 ‘메모를 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메모를 어떻게 했는가’라는 방법 때문이다. 축적된 아이디어가 있어야 창의적인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음은 자명하다. 상상력의 대가이자 융합형 인물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를 보자. 예술가, 발명가, 건축가, 과학자였던 다빈치는 37세부터 30여 년 동안 7천 페이지에 달하는 노트를 남겼는데, 창작과 관련된 큰 그림에서부터 아주 세밀한 스킬에 이르기까지 아주 세세히 메모해두었다. 예를 들어 ‘발과 얼굴의 상대적 비례’라는 메모에는 “발이 다리에 접합되어 있는 부분에서부터 엄지발가락 끝까지는 턱의 위쪽 부분과 머리카락이 나기 시작하는 부분 사이의 공간만큼 길다. 그리고 이는 얼굴의 6분의 5와 동일하다”고 적혀 있다. 한 몸 안에서 각기 다른 기관들 간의 크기와 비례를 어떠한 추상적인 묘사 없이 스케치와 함께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의 메모와 스케치는 우리에게 유용한 상상력이란 머릿속에서 자기 멋대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측량하고 연구하고 통찰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런가 하면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 백과사전』의 서문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열네 살에 백과사전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거대한 잡동사니 창고 같은 것이었고, 나는 그 안에 내 맘에 드는 것을 모조리 던져 넣었다.”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베르베르 소설의 탄생 비밀은 바로 이 같은 채집에 있다. 자신이 진정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것에서 자연스럽게 창의성이 발휘될 수 있다. 나만의 호기심으로 항상 관찰하고, 생각하고, 수집하고 분류하다 보면 예상치 못하는 일이 생겨나고 무엇인가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순간이 발생한다. 다빈치나 베르베르만이 아니다. 아스팔트 도로에 난 균열을 트레이싱 페이퍼를 대고 베끼는 작업을 하는 미술가, 자신의 문체를 얻기 위해 여러 작가들의 문체를 필사한 노트를 수십 권 갖고 있는 시인,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거리의 풍경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사진가... 이들은 모두 개인적인 채집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에게 고유한 창작의 방법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새로움을 꿈꾸는 이화인들이여, 이런 창의성의 대가들의 노하우에 힌트를 얻어 오늘부터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해보자. 누가 시켜서 하는 과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호기심과 흥미로 꾸준히 진행해가는 프로젝트 말이다.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수학적, 과학적, 건축학적, 문학적, 역사적 방법 등 자신에게 맞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탐구하고, 그 결과 얻은 깨달음을 스케치로, 글로 기록해보자. 예컨대 나무에 관심을 가졌다면 여러 나무들을 스케치하고, 만져보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과 알게 된 것을 쓰고, 나무에 대한 책을 찾아보고, 삼림 전문가와 만나보고, 기록하는 노트를 꾸준히 만들어가는 것이다. 다빈치의 노트북처럼 열정을 가진 분야의 ‘자기만의 매뉴얼’을 상세하게 기록하다보면 책으로 출판할 기회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개인의 열정과 개성이 담긴 노트에 창의성의 문을 여는 열쇠가 있다.
교수칼럼
조윤경 교수(불어불문학과)
2015.03.29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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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으나 서나 누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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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서 있으면 취재하고, 앉으면 기사 쓰고, 누우면 기획한다.” 입사 초기 어느 선배가 한 말을 직접 깨닫기 전까진 그저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수습 교육 시기를 마치고 한 명의 기자로 일하게 되니 그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마감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서면 다시 내일은 뭘 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일이 끝나도 끝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선배의 말은 기자의 숙명이 담긴 뼈있는 농담이었다.일간지 기자들은 ‘하루살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신문지면 기사의 생존 기간은 딱 하루다. 그마저
이화:연(緣)
박수지(언론·13년졸)
2015.03.29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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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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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필자는 지금까지 두 가지 큰 선택을 했다. 고등학교 입학할 때만 해도 문과로 가겠다고 호언장담했다가 수학 선생님이 좋아 무턱대고 이과로 온 지 벌써 6년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지금 필자는 졸업을 두 학기 앞둔 수학과 4학년생이다. 6년 전, 문과가 아닌 이과를 택했던 것이 첫 번째 선택이었다. 2013년 5월, 필자는 이대학보 수습기자가 되었다. 언론이 뭔지, 신문이 뭔지도 몰랐다. 한 교양수업에서 이대학보 선배가 들려줬던 학보사의 이야기가 흥미로워 그 날 밤 인터넷에 이대학보를 검색해보았을 뿐이다. 취재라는 것이 재밌어 보였고 학교생활이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고민은 없었다. 이대학보에 지원했던 것이 두 번째 선택이었다. 우리는 하루 동안에도 수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오늘 밥 뭐 먹지?’, ‘집에서 과제 할까? 열람실에서 하고 갈까?’, ‘오늘 아침 운동을 가지 말까, 그냥 갈까?’, ‘지금 잘까? 조금 있다 잘까?’ 우리는 순간의 선택에 후회하기도 하고, 순간의 선택이 가져다준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기도 한다. 여러 개의 선택지 중 어느 하나를 택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은 저녁 메뉴를 고르지 못해 친구에게 대신 정해달라고 말하기도 한다. 필자도 그런 부류의 사람 중 하나다. 늘 밥을 먹을지, 면을 먹을지 고민하고, 한식이냐 양식이냐 갈등한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메뉴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세 번째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2015년이 되면서 무서워졌다. 눈 깜짝할 새에 4학년이 되었기 때문이다. 4학년이 되면서 전엔 없던 취업이라는 고민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두 가지 선택과는 달랐다. 이번 선택에는 많은 준비가 필요했고, ‘남들보다 뛰어난 나’를 요구했다. 필자는 아직 준비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선택을 요구했다. 결정해야 하는데, 선택해야 하는데 ‘대학원 진학’, ‘기자’, ‘은행원’ 등 각종 직업 정보가 적혀 있는 취업 메뉴판을 손에 들고 있던 필자는 올해 초 어떤 것도 택하지 못하고 놓아 버렸다. 그런 와중에 서점에서 추리소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이야기」를 발견했다. 책에 필자의 마음을 빼앗은 구절이 있었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구절이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한 우리에게 하는 조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도 선택을 하지 못했고, 아직 백지라는 것이 막막하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백지라서 막막한 것이 아니라 백지이기 때문에 종이 안에 어떤 것을 채워 넣어도 괜찮다는 뜻이 된다. 백지 속에 어떤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그림이 그려지는 방향으로 선택을 하면 될 것이다. 백지여도 괜찮다는 용기 그리고 나를 믿는 고집이 있으면 된다. 시작은 지금부터니까. 이제 필자에게 세 번째 선택을 할 용기가 생겼다.
상록탑
박진아(사회·문화부 부장)
2015.03.22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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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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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 시절, 대학은 로망 그 자체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을 것이라 기대하며 견뎌냈다. 하지만 이화에 온지 3년이 된 지금, 나는 고등학교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바로 ‘친구’ 때문이다. 20살이 된 후 고등학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어디에든 새로운 사람들로 넘쳐났다.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누군가와 진정한 ‘친구’가 된다는 것이 처음으로 어렵게 느껴졌다. 왜 일까. 더 자유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났음에도 3년이 지난 지금, 어째서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일까. ‘요령’이 생겼기 때문이다.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 ‘요령’.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와 나 사이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쉽게 그 인연을 끊어 버린다. “나랑 안 맞아”라는 말을 덧붙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며 친구가 돼 가는 과정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주변에는 대부분 형식적인 관계만 남았다. 새 학기마다 가장 많이 하고, 듣는 말이 “예뻐졌다”, “살 빠졌어?”,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라는 의미 없는 말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 때는 지긋지긋했던 친구와의 말다툼이 이제는 그립다. 울고불고 싸워도 며칠 후면 언제 그랬냐는 듯 꼭 붙어 다니던 친구들이 그립다. 내가 조금 피해보더라도 친구가 가장 소중했던, 항상 진심으로 서로를 대했던 그 때가 그립다. 최근 새로운 동아리에 들어갔다. 1, 2학년 시절 저질렀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혹 나와 같은 실수를 한 사람이 있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새로운 만남과 인연을 쌓아가는 학기가 되길 기대하자.
여론광장
김은총(기독·13)
2015.03.2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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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별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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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나는 이쯤 되면 항상 심한 감기를 앓는다. 딱히 어디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항상 3월이 되면 감기를 종류별로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작과 하늘을 수놓는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 만물이 성장하고 봄바람을 맞으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시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품은 잔인한 계절일 뿐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내게 만남과 헤어짐은 그냥 일상 같은 개념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니며 배운 점은,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것. 덕분에 나는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만남에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그런 삶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더 곁에 있는 것을 향한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일본으로 전속을 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따뜻한 봄바람이 도쿄 시내를 감싸는, 여느 봄날과도 같은 평화로운 하루였다. 비극은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되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진동에 모두 여느 때와 같이 가볍게 지나가는 여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땅은 지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흔들렸고 어느새 우리들은 공포를 직감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었다. 그 5분 동안 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가까스로 진동이 멎고, 서로 안전모를 쓰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공포는 계속되었다.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연 우리 가족은 안전할지. 전화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당연시하게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우리 부모님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구나.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이토록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었구나. 나는 철저히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겠구나. 다행이도 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나를 찾으러 버선발로 학교로 달려오셨다.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아기처럼 학교가 떠나가도록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은 내 곁에 다시 돌아와서 고맙다는 하나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만했던 것이다. 내가 헤어짐에 익숙할 리가 없는데. 그 후로 내겐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이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사람과의 이별을 물 흘러 보내듯이 미련 없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헤어지더라도 너는 행복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것저것 재는 걸 떠나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생각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걸아니까. 나는 결코 만남과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익숙했을 뿐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새로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가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 인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오늘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여론광장
정윤조(국제·13)
2015.03.22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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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2호 만평
854
화연툰
윤다솜 만평기자
2015.03.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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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앞 상권에 이화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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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정문을 나서면 ‘대학’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이대역에서 정문,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까지 이어지는 골목 곳곳은 이미 중화권 관광객을 위한 상점과 시설들로 가득 차있다. 화장품 가게 직원은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중국어로 가게를 홍보하고, 홍보 포스터 또한 중국어로 가득하다. 관광버스에서 무리 지어 내린 중화권 관광객들은 쇼핑을 즐기기 바쁘다. 실제 본지 조사 결과도 이를 입증한다. 17일~18일 본교 앞 화장품 가게, 레지던스 오피스텔 등을 조사한 결과, 본교 정문에서 신촌 기차역 사이에 있는 1층 상점 109곳 중 33곳(약 33.3%)이 중국어 포스터를 내걸고 있었으며 이 중 31곳은 화장품 가게였다. 약 93.9%에 달하는 수치다. 정문 앞 화장품 가게에 따르면 중화권 관광객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곳도 있다. 주거 공간도 마찬가지다. 중화권 관광객의 폭발적인 숙박 수요에 맞춰 본교 앞에는 단기 숙박이 가능한 레지던스 오피스텔 등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루 평균 200명의 관광객이 머물 정도로 인기가 좋다. 이는 최근 몇 달 간의 문제가 아니다. 본지가 이번 호에서 이 문제를 주목한 이유기도 하다. 2008년부터 중국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되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관광객 수도 큰 폭으로 증가했다. 중화권 관광객 600만 명 시대로 진입한 것이다. 이 중 본교 앞은 그들의 필수코스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본교 앞 거리에 더 이상 이화인은 없다. 본지가 이번 기획 기사를 준비하며 만난 이화인들은 “학교 앞 가게에 물건을 사러 갔으나 관광객들에 밀려 문전박대 당했다”, “늦은 밤, 오피스텔에 투숙하는 관광객들의 소음으로 불편을 겪었다” 등의 강한 불만을 내비쳤다. 급속한 변화로 대학 생활의 로망을 잃었다는 학생도 있었다. 본교 앞 거리는 더 이상 대학가로 기능하지 못한다. 대학가의 특수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과거 만남과 소통의 장으로 기능했던 본교 대학가는 중화권 관광객의 쇼핑과 투숙에 그 자리를 내어준 지 오래다. 실과 득의 논리에서 우리는 뭐라 할 말이 없다. 학생은 ‘돈 안되는’ 손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가는 대학이 있기에 더욱 의미 있는 법이다.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대학, 지역 사회, 시민이 함께 고민해 이화인도 있고, 관광객도 있는 대학가가 조성됐으면 한다.
사설(종료)
이대학보
2015.03.22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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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라, 미생(未生)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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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방학 며칠간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야기 하나 할까요? , 작년 가을에 했던 드라마, 소문 들었나요? 나는 ‘본방’은 보지 못하고, 방학동안 20회를 주야장천 보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아깝진 않았어요. 바둑에 인생을 걸었던 청년 장그래가 프로기사로 입단하지 못하고, 고졸 검정고시라는 자격만 갖고 대기업에 인턴, 그리고 계약직으로 2년을 보내는 과정을 담은 내용이죠. 토플, 토익, 제2외국어, 어학연수 등의 스펙 하나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기'였지요. 수많은 실수로 좌절하고, 주변의 무시하는 시선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죠. 그가 아는 것이라곤 바둑판에서 배운 것 뿐 이거든요. 장그래는 자문하죠. '실패했던 바둑에서 배웠던 원리를, 지금 성공하려고 하는 상사맨의 삶에 적용해도 되는가' 하고. 그런데 성공했건 실패했건, 그리고 프로기사건 상사맨이건, 농부건 교수건, 깊이 들어가면 누구나, 저변을 흐르는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된다고 생각해요. '미생'이란 두 집을 짓지 못해 아직 완전히 살지 못한 상태, 즉 상대로부터 언제든지 공격받을 여지가 있는 상태를 뜻하는 바둑용어라죠. 누군가의 공격이 아니라도, 생로병사 등 끊임없는 공격과 마주해야 하는 우리 모두가 미생인 셈이죠. 드라마 제작의 형식적 원칙은 리얼리티죠. 철저하고도 섬세한 장면 재현은 감동적이었어요. 연출자와 시나리오 작가, 배우들과 스텝들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구나 싶으니 말이에요. 그래요,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이정도만 해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내용의 측면에선 보는 사람마다 각기 느낌도 해석도 다르겠지요? 이 시대의 직장인들, 특히나 ?상사맨?들은 그들이 매일 살아가는 ?포성 없는 전쟁터?에서 벌인 무훈담과 실패담으로 목청을 높일 거고, 회사 내의 남녀, 상하 사이의 복잡한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할 테고, 또 젊은이들은 취업난에 계약직의 문제 등 각자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예요. 요즘 젊은 사람들 말로 '꽂힌다'하듯이, 내게 꽂힌 이야기를 해보죠. 13편 마지막 부분이었어요. 장그래의 독백으로 보들레르의 산문시 가 나오는 거예요. 보들레르라 하면 프랑스 현대시의 시조죠. 우리학교의 교양과목 교재에도 실려 있어요.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 그러나 어쨌든 취하라. (...)" 19세기 중반 산업화 시대, 정신적 방황 속에서 이상향을 꿈꾸었던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의 구원 방책이었죠. 보들레르는 술에만 취하는 게 아니라 시에도, 미덕에도 취하라고 해요. 내적 균형을 맞추자는 거죠. 그런데 ‘취하라’고 독백했던 장그래에게 ‘취하지 않기’라는 전혀 다른 균형추가 제시돼요. 장그래는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판을 뒤흔드는' 발상의 전환으로 회사의 보수적 관행을 무시하고 일을 벌려 쾌거를 거두죠. 장그래는 ‘이렇게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나?’ 은근히 꿈도 꾸죠. 하지만 장그래가 취해서 허공으로 둥실 떠올라 환상 속에서 헤매지 않게,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중력의 역할을 하는 인물이 그의 상사 ?오과장?이예요. 장그래가 허망한 꿈에 빠져들까 걱정했거든요. 꿈꾸고도 꿈꾸지 않는 것, 취하고도 취하지 않는 것, 장그래도 알고 있는 삶의 지혜였어요. 조치훈 9단이 했던 말, ‘그래봤자 바둑, 그래도 바둑’을 돼내었던 그였으니까요. 그대는 자기가 하는 일과 노력이 '그래봤자 바둑'이라고 좌절하고 포기할건가요? '그래도 바둑, 내 바둑이니까'라며 꿈꿔보지 않겠어요? 각자 자신의 미덕에 취해보지 않겠느냐 말이에요! 사족 하나. '그래봤자 바둑'이라는 것도 잊지는 말아요. 이 둘의 끊임없는 반복이 우리의 삶일 테니까요.
교수칼럼
권은미 교수(불어불문학과)
2015.03.2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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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육의 공론화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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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성교육 중에 기억나는 거 있어?” 순간 일동 침묵. 나는 깊숙이 묻혀있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애써 끄집어냈다. 전교생이 체육관에 모여 지루한 강의를 들었던 장면 한 컷,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오래된 비디오가 틀어져 있던 교실 장면 한 컷. 그게 전부였다. 다른 조원들의 기억도 오십보백보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성교육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있는지 말이다. 우리의 해외탐사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학생처에서 운영하는 ‘해외탐사Ⅱ·자기설계’는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 있는 내용을 선정해 탐사하는 프로그램이다. 평소 성범죄에 관심 있었던 우리 조원들은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접했다. 2009년 세상을 경악시킨 끔찍한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인터뷰였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어차피 여자들이 나중에 다 겪는 일인데 미리 겪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거 없지 않냐”고 말했다. 우리는 이 정도로 왜곡된 성의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자문하게 됐다. 그리고 건전한 성의식을 확립하는 데 무엇보다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탐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결론은 이러했다. ‘성교육 지침은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천이 안 된다.’ 실제로 국내 성교육 지침은 매우 체계적이다. 우리가 만났던 한 성교육 강사는 “내용은 선진국 수준”이라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국영수’를 우선시 하는 교육 분위기를 지적했다. 인력과 교구 부족도 심각했다.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 교사가 한 학교에 한두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법적인 강제력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은 ‘권고사항’일 뿐, 의무는 아니다. 우리는 탐사 대상으로 독일과 스웨덴을 선정했다. 독일은 전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10대 임신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나라다. 연방 정부에 의해 성교육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덕분이다. 독일의 ‘BZgA(연방건강계몽센터)’는 매년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각종 기관에 배포한다. 교구에 대한 접근도 용이하다. 스웨덴은 무엇보다 오랜 성교육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다. 1955년부터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 평등 국가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UMO'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UMO는 성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성상담이 이루어지는 사이트이다. 탐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한계와 마주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문화’였다. 독일과 스웨덴은 성교육을 중요하게 다룬다. 청소년의 건전한 성관계를 용인하는 만큼 그들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 성교육은 단순히 성병과 순결, 피임 교육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교육은 건전한 성의식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등한 인간관계, 존중과 배려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열린 자세를 기르는 교육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가 만났던 독일의 한 성 전문가는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그러던 독일에서 보수적인 성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학생운동이 1960년대에 베를린을 중심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성교육의 중요성을 공론화시키는 데 학생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성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젊은 세대로부터 논의가 시작되면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공론화의 시작은 국내 최고 여자 대학으로 꼽히는 이화여대가 됐으면 한다.
글로벌 이화
우한솔(언론·11)
2015.03.22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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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하지 못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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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략)’ 김춘수 시인이 현재 10대, 20대가 되어 자신의 SNS에 이 구절을 적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글에 누군가는 “헐, 오글거려”라고 댓글을 달 것이다. 이른바 ‘쿨병’의 시대다. 대중의 쿨함이 정도를 넘어서 병적인 수준에 달했다. 타인의 감성을 ‘오글거린다’는 말로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시대다. 타인의 감성을 ‘중2병’, ‘오글거림’ 등의 단어로 쉽게 재단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감성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진지하게 또는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되었다. 쿨함이란 감정에 얽메이지 않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하나의 상황에 대해 계속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쿨’하게 털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쿨함은 생활에서 분명 필요하다. 때로는 한 가지를 붙잡고 고민하기보다는 잊고 다시 일어나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쿨함은 정도를 넘어선 순간 타인의 태도를 무시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글거린다’는 표현의 남용이다. 그 내용에 관계없이 감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쿨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감성은 이 같은 단어로 가볍게 치부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만연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이 표현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2000년대 말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표현은 ‘어떠한 표현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낯간지럽거나 민망할 경우’를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감성적인 것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오글거림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진지함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상황이 민망하다는 것이다. 매사에 진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진지해도 될’ 상황에서 조차 오글거림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 자신의 개인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사회현안에 대한 개인의 의견 등 표현해야할 상황에도 오글거림을 들이민다. 보는 내가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타인의 표현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그리고 이를 표현할 기회를 박탈한다.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한다. 쿨함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타인이 ‘오글거린다’며 손가락질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글거림의 늪에 빠져 감성을 자신의 속에 가둔다. 그러나 오글거린다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쿨함’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감성’이다. 우리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것 역시 ‘감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성을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다. 어느 날부터 당신 속에 가둬진 감성을 밖으로 꺼내볼 것을.
상록탑
민소영(대학취재부 부장)
2015.03.14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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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샘 추위와 함께 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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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둘째 주, 이화여자대학교 교정에 꽃샘추위가 찾아왔다. 평년보다 매서운 날씨에 뼛속까지 덜덜 떨며 예쁜 코트를 접어두고 오리털 겉옷과 함께 길을 나섰다. 이제 봄이라더니 겨울보다 견디기 힘든 추위에 괜히 심통이 난다. 대학교 3학년을 맞은 나에게 이번에 맞이하게 될 봄에는 걱정과 혼란이 앞선다. 숨가쁘게 달려온 공연 동아리와 학과 활동이 끝나고 새로운 분기점이 되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꽃샘 추위가 끝나면 꽃이 피어나듯이 나의 방황도 분명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시기라고 믿기에 두려워하기 보다는 나아갈 용기를 가져 보려고 한다. 차디찬 겨울을 지나 이제 좀 따뜻해 지나 할 때 불어오는 더욱 찬 바람에 견딜 수가 없어지는, 꽃을 시샘하는 바람인 꽃샘 추위. 서로 사랑만 하기도 아쉬운 이 계절에 아름다움을 시샘하는 이 추위를 이해할 수 없다가도 이 바람이 지나면 정말 새로운 봄이 올 것임을 믿기에 한껏 설레는 하루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맞이할 때, 우리들에게는 방황의 바람이 찾아온다. 가수 페퍼톤스의 Sing! 이라는 노래 중에 '어제 꿈꾸던 내일은 지금 이순간이니까 자 노래하라'라는 구절이 있다. 모든 순간은 다 의미있는 소중한 시간들이니, 매서운 바람이 불때에도 두려워하기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리자.
여론광장
윤소정(불문·13)
2015.03.1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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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제 개편 논란, 과정이 있는 소통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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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 혹은 세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받고, 해석하는 과정(process)이다.” 미국 출신의 석학,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소통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스스로 내린 커뮤니케이션의 정의에서 과정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의 과정에서 학생을 빠트린 채 학내 주요사안을 결정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어쩌면 당연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학과 개편으로 학교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둘러싸였다. 국제사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필자의 친구는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소속 단과대학이 바뀌었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슬슬 졸업을 생각할 때가 됐는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교육과정에 변화가 생기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학생 개인에 그치지 않고 있다. 신산업융합대학에 소속될 각 학과생회 대표 역시 “각 학과 대표마저 평의원회 회의 직전에 알았다”며 사전 논의가 있어야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높은 단계의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제를 개편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학과 명칭 변경, 신설 같은 변동은 1년에 한두 번 꼴로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새로운 단대가 마련된 것은 2007년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 이후 8년만이다. 문제는 이렇듯 큰 사안을 학생들과의 소통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학교 측은 적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좋은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융합교육의 필요성’,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고민한 결과’ 답변 등은 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그러나 수요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학과별로 신청을 받았다’는 답변의 중심에는 학생이 없었다. 정말 아쉬운 대목은 갑작스런 통보 외에도 다른 대안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특히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이 시행됐던 2007년과 비교했을 때 드러난다. 그 당시, 학교는 본격적인 시행 약 2년 전인 2005년에 학부대학 운영을 골자로 하는 가안을 발표했다. 또한 가안이 발표된 당해 연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단대, 학과별로 학생과 교직원 간담회와 학생대상 기획처 설명회 등을 여러 차례 열었다. 물론 당시에도 여러 학생들의 반발이 일었지만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 길었고 기획처와 학생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장도 마련됐다. 취임 직후 총장과의 열린 토론, 전체 교수회의 등으로 자칭·타칭 ‘파격’을 보였던 최경희 총장의 행보와 지금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임기 초기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구성원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의도와 진정성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줬던 노력을 다시 믿고 싶다. 이번 일을 통해 학교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재고해 봤으면 한다. 파격도 좋다. 그러나 기본부터 지켜 달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지켜달라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반쪽짜리만도 못하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학생의 역할도 중요함을 절대 잊지 말자. 의견교류의 장을 만들고 이를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은 소통의 주체인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온다. 변화는 항상 쟁론을 수반한다. 기존의 것을 지키고자하는 의견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뉘게 돼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는 서로 다른 의견간의 소통 과정에 달려있다. 학교와 학생 간의 원만한 소통을 통해 ‘변화가 시작되는 곳’ 이화여대에서 또 다른 좋은 변화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여론광장
김지현(언론·11)
2015.03.14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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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1호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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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연툰
윤다솜 만평기자
2015.03.14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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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안전 협력이 필요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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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약 1년이 지났다. 길거리를 가득 메웠던 노란 리본 물결과 추모 행렬은 줄어들었지만, 그 날의 참사는 우리에게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켰다. 본지 또한 단순히 안전 의식을 제고해야한다는 의식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실천하는 안전이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4주에 걸친 ‘세월호 1년, 이제는 안전이화’ 연재를 기획했다. 이번 주 본지가 주목한 안전이화 그 첫 번째 주제는 본교의 안전 교육 현황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무척 실망스러웠다. 본교 총무처 총무팀은 매 학기 신입연구활동종사자와 정규연구활동종사자(실험·실습과목을 수강하는 학부생, 연구활동종사자)를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있었지만, 해당 수업 교수에게 자율적으로 교육 불참에 관한 제재를 맡기는 등 안전 교육에 대한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작년 2학기에는 교육 대상자의 반발이 심하다는 이유로 기존 불참자에게 주어지던 도서관 출입 및 대출 금지 제재를 없애기도 했다. 구성원의 안전보다 불편이 우선인 참 ‘이상한’ 제재 완화 조치다. 소방 교육훈련 또한 마찬가지다. 총무처 총무팀은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연 2회 진행되던 소방 교육훈련 횟수를 연 4회로 늘렸지만, 여전히 한계는 있다. 교내 구성원 모두가 필수적으로 참여해야한다는 조항이 마련돼 있지 않고, 가상 대피 훈련도 학과 수업이 진행되지 않거나 거의 없는 본관, 종합과학관 C동 등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만약 유동인구가 많은 이화·포스코관, 학생문화관 등에서 화재가 발생한다면 학내 구성원들은 소화기가 어느 곳에 있는지, 비상구는 어디인지 알 도리가 없다. 느슨한 본교의 안전 교육 행태는 수치상으로도 나타났다. 총무처 총무팀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1학기(2월~4월) 진행된 실험실 안전교육 수료율은 81.0%였지만 작년 2학기(8월~11월) 실시한 교육에선 64.7%로 16.3%포인트 하락했다. 특히 안전에 취약한 실험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특별안전교육은 재작년 8월 66.0%에서 작년 10월 47.1%로 18.9%포인트 떨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후 오히려 수료율이 떨어진 것이다. 이는 비단 미흡한 학교 제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안전 교육을 선택의 대상으로 삼는 본교 구성원의 인식부터 개선해야 한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고, 안전이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학교와 학생의 긴밀한 안전 협력이 필요하다.
사설(종료)
이대학보
2015.03.1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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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wha Womans 와 'Meta Wo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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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 영어 교명은 Ewha Womans University이다. 누가 보더라도 잘못 된 영어 교명 같다. 특히 외국인들은 이화 대학인들의 영어 실력을 의심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어 교명 자체가 미국인 메리 스크랜튼 (Mary F. Scranton) 여사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좀 이상하지 않는가? 그러나 100 여 년 전에 이 영어 교명을 지은 데는 깊은 뜻이 있었다고 한다. 나는 1968년에 초등교육과에 입학하여 이제 이번 학기면 은퇴를 한다. 무려 반세기 가까이 이화 교정에서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방학이면 외국을 나가 지내면서 우리학교 영어 교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우리 학교 설립자들의 혜안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Womans’란 단수에 복수를 합친 말이다. 이것의 의미는 이화인은 개인이면서 전체이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나무를 보면서 동시에 숲을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해 본다. ‘우리’라는 말 그대로 우리는 개인과 가정, 가정과 사회, 개인과 국가를 구별하지 않았었다. ‘우리 어머니’와 심지어는 ‘우리 안해’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어쩌다 지금 우리는 너무도 개인주의에 함몰 되고 말았다. 그래서 사물을 볼 때에도 개인과 부분은 볼 줄 알아도 집단과 전체를 볼 줄 모르게 되었다. 인간과 모든 생명 있는 것의 생존 전략은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새들을 보라. 높이 떠 보는 것을 조감도鳥瞰圖라고 한다. 새는 먹이감을 높이 하늘 위로 떠 볼 줄도 알아야 하고, 먹이감이 있는 부분을 동시에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부분이라는 ‘대상’에 대하여 그것을 초월하여 조감도 차원에서 보는 것을 ‘메타 meta’라 한다. ‘물리학physics’이 부분으로 보는 것이라면 그것의 전체 모습을 보는 것을 ‘형이상학metaphysics’라 한다. 심지어는 최근에 ‘meta-meta physics’라는 책마저 나왔다. 지금까지의 형이상학을 더 한층 높은 차원에서 본다는 말이다. 심지어는 기독교가 말하는 ‘회개’라는 말의 그리스어는 ‘metanoia’이다. 생각컨대 기독교가 당시의 전통적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혁신 시키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은 세계적인 종교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전에서 한 번 meta가 접두어로 들어가는 말을 찾아보면 혁신과 변화 같은 것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Meta Womans가 된다는 것을 실로 혁신과 변화를 일으키는 이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이런 차제에 Ewha Womans를 ‘Meta Womans’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높이 떠 세계를 조감할 줄도 알고 국지적으로 집착할 줄도 아는 인간 말이다. 부분과 전체를 동시에 보아야하는 가치관적 이유는 더욱 심각하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선이지만, 사회나 국가 차원에서 보면 악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둘을 동시에 보지 못하도록 엄격히 막아 놓고 있다. 부분과 전체 어느 하나도 선이고 악이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한 쪽 만 보는 것이 악이고 불행인 것은 확실하다. global과 local의 합성어 ‘glocalism’을 이화 정신과 조화 시키는 metawomans의 탄생이 바로 2015년 새 봄의 화두이었으면 한다.
교수칼럼
이성은 교수(초등교육과)
2015.03.14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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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영업 MD
12303
‘MD’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은? 대부분 홈쇼핑 MD나 유통업 MD, 패션업계의 VMD와 기획MD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영업MD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거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캐주얼 브랜드의 영업MD 2년차인 나도, 처음 지망했던 기획MD TO가 없어지면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영업MD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만큼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매장을 방문하는 일반 고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조절하는 것이 영업MD다. 기획MD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관리한다면, 영업
이화:연(緣)
김보람(의류·13년졸)
2015.03.14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