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 없길

  봄이다. 나는 이쯤 되면 항상 심한 감기를 앓는다. 딱히 어디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항상 3월이 되면 감기를 종류별로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작과 하늘을 수놓는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 만물이 성장하고 봄바람을 맞으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시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품은 잔인한 계절일 뿐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내게 만남과 헤어짐은 그냥 일상 같은 개념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니며 배운 점은,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것. 덕분에 나는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만남에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그런 삶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더 곁에 있는 것을 향한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일본으로 전속을 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따뜻한 봄바람이 도쿄 시내를 감싸는, 여느 봄날과도 같은 평화로운 하루였다. 비극은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되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진동에 모두 여느 때와 같이 가볍게 지나가는 여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땅은 지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흔들렸고 어느새 우리들은 공포를 직감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었다. 그 5분 동안 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가까스로 진동이 멎고, 서로 안전모를 쓰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공포는 계속되었다.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연 우리 가족은 안전할지. 전화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당연시하게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우리 부모님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구나.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이토록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었구나. 나는 철저히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겠구나. 다행이도 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나를 찾으러 버선발로 학교로 달려오셨다.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아기처럼 학교가 떠나가도록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은 내 곁에 다시 돌아와서 고맙다는 하나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만했던 것이다. 내가 헤어짐에 익숙할 리가 없는데.

  그 후로 내겐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이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사람과의 이별을 물 흘러 보내듯이 미련 없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헤어지더라도 너는 행복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것저것 재는 걸 떠나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생각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걸아니까. 나는 결코 만남과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익숙했을 뿐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새로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가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 인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오늘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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