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을 깨고 세상을 보라

  몇 주 전, 강의 시간에 <주간조선>에 실린 기사를 봤다. ‘2014 취업 전쟁 보고서’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였다. 스펙 좋은 서울대 문과생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 연세대도 고려대도 그렇다. 늘 보던 내용의 기사였지만 볼 때마다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후배는 우울해진다 말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사에 등장한 학생들의 스펙과 겹치는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다.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운동가 박권일이 쓴 <88만원세대> 출간 이후,  언론은 청년세대를 부정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청년실신. 취업이 안돼 졸업을 계속 미룬다고 NG(No Graduation)족. 알바로 학자금을 충당한다고 알부자족. 장기간 미취업자라고 장미족.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길이 막힌다고 삼일절. 이젠 이웃나라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빌려와 달관세대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작명소 수준이다. 그뿐인가. 용어에 맞는 케이스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케이스가 없으면 아는 대학생을 앉혀놓고 준비해둔 대본을 읽게 한다. 흥신소와 연기까지도 손을 댄다.

  미디어 이론에는 ‘프레이밍 이론’이라는 게 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중들은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즉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은 대중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등을 형성할 수 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 또한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이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조차 그 프레임으로 자신을 본다. 고3때와 같다. 수험생 생활은 당연히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들이 주는 시선은 더 힘들다. ‘힘들지?’라는 물음은 ‘힘들어야지’라는 강요다. 365일 24시간 내내 힘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괴했다. 지금도다. 취업만 준비한다 치면 ‘요즘 바쁘지?’, ‘놀 시간도 없지?’ 같은 말들을 한다. 바쁨과 피곤과 힘듦을 강요한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야 한다. 더 괴로워야한다. 청년세대조차 잠시라도 즐거운 자신을 마주할까 두렵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불길처럼 번진다. 프레임에서 나갈 길을 잃는다. 
 
  청년세대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거짓은 아니다. 기업들은 돈이 없다며 임금을 동결하고 채용 인원을 줄인다. 취업 때문에 졸업을 유예한 사람도 많다. 취업을 못한 사람이 대졸자의 절반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그러나 언론은 취업한 절반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우울한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혹은 거기에 맞게끔 들이맞춰 보도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청년세대가 포기한다는 연애는 나만 빼고 다 한다. 난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산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서울대 문과생들은 웬만한 대기업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포기와 달관을, 우울과 불안을 강요받고 있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비판적 사고를 동원해 프레임 브레이크를 해야만 한다. 달관이라는 말로 청년세대를 미화시키는 그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스펙 좋은 서울대생이 떨어졌다는 말은 누군가 붙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설혹 저 모든 프레임에 부합한다 해도 자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뮤지션 선우정아의 2집 <It’s Okay, Dear>의 수록곡인 <주인공의 노래>를 빌려 말한다.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함정에 겁먹지 마라. 그대가 가장 믿어야 할 것은 그들의 눈이 아닌 그대의 눈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건 그들의 생각이 아닌 그대의 생각이다. 위로가 아니다. 프레임 밖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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