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회정책부 기자

  “기자는 서 있으면 취재하고, 앉으면 기사 쓰고, 누우면 기획한다.” 입사 초기 어느 선배가 한 말을 직접 깨닫기 전까진 그저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수습 교육 시기를 마치고 한 명의 기자로 일하게 되니 그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마감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서면 다시 내일은 뭘 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일이 끝나도 끝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선배의 말은 기자의 숙명이 담긴 뼈있는 농담이었다.

일간지 기자들은 ‘하루살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신문지면 기사의 생존 기간은 딱 하루다. 그마저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는 일이 대세가 되면서 기사의 유통 시간은 더욱 짧아지는 추세다. 기사를 털어 내고 노트북을 닫으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는 점이 늘 괴롭다. 그래도 막연하게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점들을 취재해 신문 지면위에 인쇄되는 기사로 만드는 일은 매번 새롭고 신기하다. 지루할 틈 없이 하루하루 새로운 사안을 배우고 쓸 수 있다는 게 아직까진 이 직업의 큰 매력이라고 느껴진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분야를 매번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다.

주변 사람들한테 어떤 게 기사가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입사한 지 만 2년이 안 된 나는 어떤 엄밀한 기준보다 ‘내가   궁금한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세월호 사고 생존자인 김동수씨가 자해를 한 사건이 주목을 받았다. 의인이라고 칭송받은 김씨가 왜 그랬는지 중심으로 기사가 쏟아졌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고 다른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존자는 없는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했고 그 부분을 기사화했다. 특정한 사건·사고를 일차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물론 언론의 일차적인 보도 역할이지만 점점 더 사안의 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를 신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추세는 수년 간 신문을 둘러싸고 안팎으로 존재하는 위기감과 관련이 없지 않다. 신문은 낡은 매체다.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 집에서 직접 신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계에서 나오는 종이신문의 종말 시점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신문 기사가 방송보다 생생할 수는 없고, 인터넷보다 전달되는 속도는 늦다. 요즘 신문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좀더 심층적인 보도가 가능하다는 특징을 살려서 사안의 맥락을 보다 잘 파악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슬프지만 기자와 기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기레기’라는 말이 쉽게 쓰이는 것도 비윤리적인 기자들의 취재 태도나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한 실망 등과 무관하지 않다. 신뢰를 먹고 사는 업종의 특성이 강한데 기자와 기사는 국회의원이나 정부처럼 혹은 그보다 더 믿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자극적인 기사에 대한 유혹 때문에 거짓말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특종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사실이 아닌 것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자고 되새긴다. 언론학 전공 4년간 배운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도 ‘기사엔 사실만을 쓴다’는 부분인 것 같다.

  공공연하게 ‘사양 산업’이라고 지목받는 신문 산업이지만 그래도 기자를 꿈꾸는 분들이 많은 줄 안다. 당연하게도 기자가 된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평소에 많이 생각하신 분들과 신문을 읽을 때 지면에 나온 기사를 100% 받아들이는 대신 부족한 점을 찾고 어떤 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분들한테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더 많은 이화인들과 현장에서 만난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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