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쿨함이 아닌 감성, 이제는 자신 속에 가둬둔 감성을 꺼내주어야할 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하략)’

  김춘수 시인이 현재 10대, 20대가 되어 자신의 SNS에 이 구절을 적었다고 상상해보자. 이 글에 누군가는 “헐, 오글거려”라고 댓글을 달 것이다.

  이른바 ‘쿨병’의 시대다. 대중의 쿨함이 정도를 넘어서 병적인 수준에 달했다. 타인의 감성을 ‘오글거린다’는 말로 쉽게 짓밟을 수 있는 시대다. 타인의 감성을 ‘중2병’, ‘오글거림’ 등의 단어로 쉽게 재단하고 사람들이 자신의 감성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금기시하는 분위기다. 진지하게 또는 감성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되었다.

  쿨함이란 감정에 얽메이지 않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태도를 의미한다. 하나의 상황에 대해 계속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쿨’하게 털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쿨함은 생활에서 분명 필요하다. 때로는 한 가지를 붙잡고 고민하기보다는 잊고 다시 일어나는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쿨함은 정도를 넘어선 순간 타인의 태도를 무시할 수 있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글거린다’는 표현의 남용이다. 그 내용에 관계없이 감성을 드러내는 이들이 ‘쿨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들의 감성은 이 같은 단어로 가볍게 치부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  

  ‘오글거린다’는 표현은 어느 순간 사람들 사이에서 만연하기 시작했다. 최근 인터넷에서 이 표현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2000년대 말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이 표현은 ‘어떠한 표현이나 행동을 보았을 때 낯간지럽거나 민망할 경우’를 의미하지만 최근에는 조금이라도 감성적인 것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오글거림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지나친 진지함을 참을 수 없다고 말한다.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상황이 민망하다는 것이다.

  매사에 진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진지해도 될’ 상황에서 조차 오글거림의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 자신의 개인적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 사회현안에 대한 개인의 의견 등 표현해야할 상황에도 오글거림을 들이민다. 보는 내가 ‘오글거린다’는 이유로 타인의 표현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그리고 이를 표현할 기회를 박탈한다.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하지 못한다. 쿨함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타인이 ‘오글거린다’며 손가락질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오글거림의 늪에 빠져 감성을 자신의 속에 가둔다.

  그러나 오글거린다는 손가락질이 두려워 ‘쿨함’의 늪에 빠지면 안 된다.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감성’이다. 우리 마음속에 울림을 주는 것 역시 ‘감성’이다. 우리는 자신의 감성을 충분히 표현해야 한다. 이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한 가지 권하고 싶다. 어느 날부터 당신 속에 가둬진 감성을 밖으로 꺼내볼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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