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인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커다란 재앙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허약한가, 새삼 되묻게 된다.

오직 인간 본위의 사고방식과 문명이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제한해 온 것은 아닌지, 지금이야 말로 인류문명 전부를 고민하고 성찰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든다.

코비드-19로 우리 몸은 쇠약해지고 이화동산도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몸이건 공간이건, 너무 혹사해도 안 되지만 너무 안 써도 생기를 잃게 된다. 결국 몸의 문제이다. ‘몸’이란 지성, 감성, 감정, 영혼이 스며 있는 삶 그 자체이다. 세상은 큰 몸이고 우리 몸은 작은 우주다. 서구 지성사를 몇 세기 동안이나 지배하던 이원론을 깨고, 니체가 ‘몸이 바로 나다’라고 선언한 때가 벌써 19세기다. 동양에서는 BC 6세기에 이미 노자가 ‘몸’의 철학을 설파했다. ‘우리에게 몸이 없다면 그 무엇이 있겠는가? 고민, 고통, 걱정이 다 몸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코로나 시대에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메타버스,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그리고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에 대해 한마디씩 한다. 그러한 디지털 기술이 코로나 시대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일 수 있고 4차 산업 시대를 이끌어갈 방안일 수 있음도 분명하다. BTS도 on-line을 이용해서 차곡차곡 자신의 노래를 세계에 알려왔기에 지금의 세계적인 명성이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BTS의 진, 슈가, 제이홉, RM, 지민, 뷔, 정국이라는 7명의 실제 살아 꿈틀거리는 몸 없이 과연 가능했을까? 이들은, 기계처럼 찍어내는 기존의 아이돌 훈련 방식이 아니라, 스스로 몸의 주인이 되어서 주체적으로 예술작업에 참여했다. 맞다! 생명체인 몸은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서 움직일 때 성장할 수 있다. 이런 주체적인 몸의 활동을 보완해 주는 장치가 VR, AR 그리고 메타버스이다. 몸이 없거나 병들어 죽어 가면 그 어떤 혁신적인 기술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몸이 없으면 세상도 없는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인류가 새삼 깨우치는 것은 우리가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진리가 아닐까 한다. 몸은 생명이자 자연이자 성장이다. 그런데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적응 방식을 논하면서 또 다시 인류를 몸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식의 공론(公論)이 회자되는 것은 아니지 걱정스럽다. 한국은 이미 고령화 시대, 백세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굳이 오래 살아야만 잘 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건강한 몸으로 창조적으로 살다 한 순간에 깨끗하게 죽는 것이 멋진 삶일 수 있다. 젊은이들도 결국에는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죽는다. 잘 죽는 것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를 해야만 가능할 것이다. 웰빙(well-being)을 찾다가 결국에는 웰다잉(well-dying)이라는 깨달음으로 귀결되는 사람들을 본다. 웰빙이건 웰다잉이건 그 중심 화두는 늘 ‘사는 동안 건강하게 몸으로 사는 것’에 있다. 우리 이화의 아름다운 학생들이 몸이 허약하고, 그 허약함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젊은 생명체라면보다 건강하게 살아 꿈틀거리며 생기(生氣)를 창출해야만 한다. 즉 몸이 스스로 그러함(自然)을 찾게 하는 것이 생기 창출의 기본이다. 뻔한 말 같지만, 몸의 생기 창출은 남이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할 수밖에 없다.

모든 인간은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짧고허무한 지금 당장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영원은 바로 이 ‘순간’에 있는 것이고 내 몸이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지금 여기, 이 순간을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몸’ 이다. ‘이화’라는 공동체는 ‘내 몸이 확장된 실체’일 수 있다. 내 인생의 한 때를 ‘이화’라는 정신적, 물리적 울타리에서 보내고, ‘이화인’으로 평생을 사는데, 우리는 ‘이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화’가 아프면 ‘나’도 아프고, ‘나’가 건강하지 않으면 ‘이화 공동체’도 건강하지않다고 말할 수 있다. ‘나’가 건강해야 우리 ‘이화’도 건강하다. 자신과 자신이 몸담고 있는 생태계에 생기를 창출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예술은 실로 ‘이화’가 세계에 내 놓을 수 있는 특화된 분야이자, ‘이화’를 역사의 반열(班列)에 올려놓을 수 있는 영역이다. 인류 진화의 목표는 ‘생존과 번영’이기도 하지만, 나아가 ’아름다움’에 보다 우월한 가치가 있다. 예술이야말로 산소와도 같이 이화와 이 세상에 생기를 부여하는 바로 그것, 아름다운 가치이다. 이제 이화동산 곳곳에 생기를 창출하여 우리 모두 손에 손잡고 춤추고 노래하는 ‘이화’를 만들어 보자. ‘이화동산’ 곳곳에 봄기운이 움트고 있다. 이화,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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