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18건)

하루 24시간 중 ON-AIR에 빨간불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은 단 4시간 남짓. 거의 모든 방송을 생방송으로 진행하기에 매 순간이 전쟁터인 공간. 1분 1초에 울고 웃는 사람들. 이것은 모두 홈쇼핑 방송을 만드는 홈쇼핑 PD들이 일하는 현장의 이야기이다. 홈쇼핑 방송에도 PD가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학생 시절의 나 역시 채널을 돌리다가 스치듯 홈쇼핑 방송을 접했던 적은 많았지만, 홈쇼핑 방송을 만드는 PD의 존재를 인지해본 적은 없었다. 일반 방송사의 PD와 달리 홈쇼핑 PD는 프로그램 상에서 그 존재가 크게 부각되진 않는다. 홈쇼핑 방송은 어떤 방송사든 어떤 상품을 팔든 다 똑같아 보였고, 그래서 흔히들 생각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고통으로 고민을 하고, 끝내 매우 크리에이티브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PD라는 사람들이 홈쇼핑 방송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홈쇼핑 방송의 주인공은 상품이고, 방송의 모든 것이 상품에 집중되도록 만들어야 하기에 PD가 고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홈쇼핑 PD는 방송 기획자 및 연출가이자 상품 전문가이고, 동시에 마케터이며, 홈쇼핑이라는 유통 채널의 최전방에서 고객과 소통하는 커뮤니케이터이다. 즉, 상품의 셀링 포인트를 정확하게 잡고, 그것을 방송을 통해 고객과 소통하며 마케팅하는 것이 홈쇼핑 PD의 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홈쇼핑 PD는 방송계에서 가장 ‘LIVE’한 사람들이다. 일방향적인 소통이 아닌, 방송을 통해 고객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고객의 반응에 따라 방송의 방향을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들어오는 고객의 피드백을 다시 방송에 반영해가는 과정에서 홈쇼핑 PD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그 누구보다 강하게 받을 수 있다. 홈쇼핑 PD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방송 스텝과의 소통, 협력사와의 소통, MD와의 소통, 그리고 고객과의 소통 등 성공적인 방송을 만들기 위해서는 수많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필요하다. 특히 고객과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그 방송의 매출을 결정짓기에, 상대방의 의도를 빠르게 파악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1시간의 방송이 끝나고 나면 그 방송이 성공적이었는지 아닌지는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그 성적표 앞에서는 방송 전까지 얼마나 치열하게 준비했고 생방송 중에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럼에도 홈쇼핑 PD의 일이 마냥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빠른 피드백을 통해 그만큼 빠르게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늘 고객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객의 니즈와 흥미를 자극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 수 있도록 매일 한 뼘씩 성장하고 싶다.

교환학생칼럼 | 이도은(언론·15년 졸) | 2015-05-04 13:26

“불문학을 공부하면서 왜 미국으로 교환학생 왔어?” 학기 초에 자기소개를 할 때 학우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글쎄. 프랑스에서 살다 와서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었기도 했고, 가장 큰 이유는 많이 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원어민들이 가득한 교실에서 알아듣지도 못하며 끙끙대기 보다는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학생들과 함께 나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여유롭게 듣고, 나만을 위한 시간을 충분히 갖고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 열심히 놀다 오겠다는 꿈을 안고 교환학생을 떠났고, 지금 나의 대학생활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물론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는 이곳에서 잘 생활 할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다. 텅 빈 기숙사를 보며 어떻게 하면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지 막막했고, 밥을 잘 해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사실 또한 두려웠다.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도 고민이었다. 프랑스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는 쉽지만, 이곳의 모든 프랑스어 수업들은 원어로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보다 몇 배가 되는 양의 과제를 해야 했다. 매주 프랑스어로 작문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허했던 아파트는 나의 따뜻한 집이 되었고, 룸메이트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밥다운 밥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특별한 요리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수업에도 적응하게 되면서 친구들을 사귀었으며,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과제들을 차근차근 처리하는 법도 알았다. 여유가 생기면서 취미 생활에도 투자하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한국에서 보다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문화 공간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학생 할인과 학교가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많기 때문에 미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나는 전시회와 오페라를 원 없이 보러 다닌다. 여행도 많이 다닌다. 지난달에는 봄 방학을 이용해 미국 동부를 크게 돌았고, 학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뉴욕은 주말마다 가서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이처럼 나는 미국에서 내 바람대로 매일을 신나게 보내고 있다. 친구들과 공연을 보러 다니고, 파티도 가고, 서로의 아파트에 놀러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행복한 일상이라 꿈만 같고, 현실과 단절 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기분이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 있는 지금 이 순간을 나의 대학생활의 최고의 순간이라 믿으며, 다른 학생들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교환학생칼럼 | 정다인(불문·13) | 2015-04-06 19:33

“기자는 서 있으면 취재하고, 앉으면 기사 쓰고, 누우면 기획한다.” 입사 초기 어느 선배가 한 말을 직접 깨닫기 전까진 그저 농담인 줄로만 알았다. 수습 교육 시기를 마치고 한 명의 기자로 일하게 되니 그날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를 마감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뒤돌아서면 다시 내일은 뭘 쓸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일이 끝나도 끝난 기분이 들지 않는다. 그 선배의 말은 기자의 숙명이 담긴 뼈있는 농담이었다.일간지 기자들은 ‘하루살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신문지면 기사의 생존 기간은 딱 하루다. 그마저 인터넷에서 기사를 읽는 일이 대세가 되면서 기사의 유통 시간은 더욱 짧아지는 추세다. 기사를 털어 내고 노트북을 닫으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된다는 점이 늘 괴롭다. 그래도 막연하게 문제라고 생각했던 지점들을 취재해 신문 지면위에 인쇄되는 기사로 만드는 일은 매번 새롭고 신기하다. 지루할 틈 없이 하루하루 새로운 사안을 배우고 쓸 수 있다는 게 아직까진 이 직업의 큰 매력이라고 느껴진다. 호기심 많고 새로운 분야를 매번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다.주변 사람들한테 어떤 게 기사가 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입사한 지 만 2년이 안 된 나는 어떤 엄밀한 기준보다 ‘내가 궁금한 것’에서 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 전 세월호 사고 생존자인 김동수씨가 자해를 한 사건이 주목을 받았다. 의인이라고 칭송받은 김씨가 왜 그랬는지 중심으로 기사가 쏟아졌다. 나는 이 사건을 접하고 다른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생존자는 없는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관리되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했고 그 부분을 기사화했다. 특정한 사건·사고를 일차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물론 언론의 일차적인 보도 역할이지만 점점 더 사안의 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를 신문에서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추세는 수년 간 신문을 둘러싸고 안팎으로 존재하는 위기감과 관련이 없지 않다. 신문은 낡은 매체다. 요즘 젊은 사람들 가운데 집에서 직접 신문을 받아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학계에서 나오는 종이신문의 종말 시점은 점점 앞당겨지고 있다. 신문 기사가 방송보다 생생할 수는 없고, 인터넷보다 전달되는 속도는 늦다. 요즘 신문은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좀더 심층적인 보도가 가능하다는 특징을 살려서 사안의 맥락을 보다 잘 파악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슬프지만 기자와 기사에 대한 독자의 신뢰는 점점 떨어지고 있다. ‘기레기’라는 말이 쉽게 쓰이는 것도 비윤리적인 기자들의 취재 태도나 사실과 다른 보도에 대한 실망 등과 무관하지 않다. 신뢰를 먹고 사는 업종의 특성이 강한데 기자와 기사는 국회의원이나 정부처럼 혹은 그보다 더 믿지 못하는 존재가 됐다. 자극적인 기사에 대한 유혹 때문에 거짓말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특종은 못하더라도 적어도 ‘사실이 아닌 것은 쓰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자고 되새긴다. 언론학 전공 4년간 배운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도 ‘기사엔 사실만을 쓴다’는 부분인 것 같다. 공공연하게 ‘사양 산업’이라고 지목받는 신문 산업이지만 그래도 기자를 꿈꾸는 분들이 많은 줄 안다. 당연하게도 기자가 된다면 어떤 기사를 쓰고 싶은지 평소에 많이 생각하신 분들과 신문을 읽을 때 지면에 나온 기사를 100% 받아들이는 대신 부족한 점을 찾고 어떤 식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분들한테 더 많은 기회가 열려있을 것 같다는 조언을 드리고 싶다. 더 많은 이화인들과 현장에서 만난다면 좋겠다.

교환학생칼럼 | 박수지(언론·13년졸) | 2015-03-30 19:01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성교육 중에 기억나는 거 있어?” 순간 일동 침묵. 나는 깊숙이 묻혀있던 학창시절의 기억을 애써 끄집어냈다. 전교생이 체육관에 모여 지루한 강의를 들었던 장면 한 컷, 그리고 언제 찍었는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오래된 비디오가 틀어져 있던 교실 장면 한 컷. 그게 전부였다. 다른 조원들의 기억도 오십보백보였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성교육 내용 중에 기억나는 게 있는지 말이다. 우리의 해외탐사는 이런 질문에서 시작됐다. 학생처에서 운영하는 ‘해외탐사Ⅱ·자기설계’는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 있는 내용을 선정해 탐사하는 프로그램이다. 평소 성범죄에 관심 있었던 우리 조원들은 자료 조사를 하던 중 충격적인 기사 하나를 접했다. 2009년 세상을 경악시킨 끔찍한 아동성범죄자 조두순의 인터뷰였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어차피 여자들이 나중에 다 겪는 일인데 미리 겪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 거 없지 않냐”고 말했다. 우리는 이 정도로 왜곡된 성의식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자문하게 됐다. 그리고 건전한 성의식을 확립하는 데 무엇보다 성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탐사를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했다.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가 얻은 결론은 이러했다. ‘성교육 지침은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실천이 안 된다.’ 실제로 국내 성교육 지침은 매우 체계적이다. 우리가 만났던 한 성교육 강사는 “내용은 선진국 수준”이라는 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현장에서 실천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국영수’를 우선시 하는 교육 분위기를 지적했다. 인력과 교구 부족도 심각했다. 성교육을 담당하는 보건 교사가 한 학교에 한두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법적인 강제력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교육부의 성교육 지침은 ‘권고사항’일 뿐, 의무는 아니다. 우리는 탐사 대상으로 독일과 스웨덴을 선정했다. 독일은 전 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10대 임신율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나라다. 연방 정부에 의해 성교육이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덕분이다. 독일의 ‘BZgA(연방건강계몽센터)’는 매년 성교육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각종 기관에 배포한다. 교구에 대한 접근도 용이하다. 스웨덴은 무엇보다 오랜 성교육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다. 1955년부터 성교육을 의무화했다.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성 평등 국가이기도 하다. 스웨덴에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UMO'라는 인터넷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UMO는 성에 대한 정보가 공유되고 성상담이 이루어지는 사이트이다. 탐사를 할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한계와 마주해야 했는데, 그것은 바로 ‘문화’였다. 독일과 스웨덴은 성교육을 중요하게 다룬다. 청소년의 건전한 성관계를 용인하는 만큼 그들이 스스로 몸을 지킬 수 있는 실질적인 교육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 성교육은 단순히 성병과 순결, 피임 교육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교육은 건전한 성의식을 확립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등한 인간관계, 존중과 배려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열린 자세를 기르는 교육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희망을 보았다. 우리가 만났던 독일의 한 성 전문가는 독일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사회적 분위기는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그러던 독일에서 보수적인 성 고정관념을 거부하는 학생운동이 1960년대에 베를린을 중심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성교육의 중요성을 공론화시키는 데 학생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성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는 젊은 세대로부터 논의가 시작되면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있다. 공론화의 시작은 국내 최고 여자 대학으로 꼽히는 이화여대가 됐으면 한다.

교환학생칼럼 | 우한솔(언론·11) | 2015-03-23 19:23

‘MD’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것은? 대부분 홈쇼핑 MD나 유통업 MD, 패션업계의 VMD와 기획MD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영업MD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거나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캐주얼 브랜드의 영업MD 2년차인 나도, 처음 지망했던 기획MD TO가 없어지면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영업MD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만큼 낯설게 느껴지겠지만 매장을 방문하는 일반 고객들이 체감할 수 있는 요소들을 조절하는 것이 영업MD다. 기획MD가 상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관리한다면, 영업MD는 상품을 판매하는 과정을 관리한다. 영업MD의 주요 업무는 생산된 물량을 적재적소에 쓸 수 있도록 배분하는 것이다. 신상품이 입고되면 영업MD팀은 분주해진다. 상품기획팀과 회의를 통해 다음 주 출고 상품을 정하고 매장 등급별로 상품 구색을 계획한다. 지역과 유통망, 매장 위치, 매니저 특성 등에 따라 판매율이 높은 스타일과 컬러, 사이즈가 다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상품을 출고해야 한다. 동일 점 내에서 매장 위치만 달라져도 주력 판매 스타일이 바뀌기 때문에, 영업MD는 매장 별 특성을 연구하고 그에 맞는 상품 구색을 결정한다. 또한, 신상품 출고 이후에도 매장에 재고가 떨어져서 판매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판매분을 출고한다. 물류재고가 없는 스타일은 매장별 판매율을 분석해서 전 매장에 물량순환 지시를 내린다. 특정 상품이 어느 매장에는 팔리지 않고 쌓여있는 반면 다른 매장에서는 상품이 없어서 판매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물량을 돌리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매장과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도 있다. 평소에 매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본사 의도대로 물량을 이동시키는 것도 영업MD의 역량이다. 이 밖에도 부진 상품의 가격을 인하하거나 한 시즌의 할인 프로모션을 기획하는 것도 영업MD의 일이다. 주 단위로 주력 판매 상품을 정하여 VMD팀과 매장 디스플레이 회의를 진행하고, 신상품에 대한 매장의견을 상품기획팀에 전달하여 다음 시즌의 계획에 관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매장과 물류, 타 부서 사람들과 전방위로 소통해야 하는 일이어서 피곤할 때도 있지만 좋은 일도 많다. 매니저님을 통해 상품과 업계 동태에 대한 생생한 의견을 들을 수 있고, 특별한 날에는 작은 선물이나 먹을 것들을 받기도 해서 간식거리가 끊이질 않는다. 덕분에 이번 달 매출 신장했다,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그만큼 애쓴 보람이 있다고 느낀다. 회사 일들이 대부분 개인적인 성취감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직접적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또한 타 부서와 협업하는 일이 많은 만큼 부서 바깥의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다. 처음에는 원하던 직무가 아니어서 실망했던 것도 사실이다. 영업MD 직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 취준 기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매일 할 때,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는 문구를 되뇌며, 하루하루의 작은 일들도 언젠가는 내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버티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지금은 그 선택에 만족한다. 여러분도 지금 당장 원하는 길로 갈 수 없다고 해서 조급해하지 말고, 눈앞에 주어지는 일에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그러면 ‘우주는 우리를 돕는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교환학생칼럼 | 김보람(의류·13년졸) | 2015-03-16 12:02

2012년 다크 나이트 라이즈 이후로 오랜만에 터진 대박이라고 들었다. 인터스텔라의 흥행 말이다. 미국에선 뜨뜻미지근한데 우리나라에선 개봉한 지 20일도 안 돼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봤고, IMAX 암표가 팔릴 정도로 대란이라니 입사 후 처음 맞는 대박 영화에 어리둥절하다. 이렇게 대승을 거두고 있는 인터스텔라는 이제 극장 상영 끝물에 들어섰다. 하지만 아쉬워하긴 이르다. 이 영화의 인생은 여기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한 편의 영화는 극장 상영, 디지털/DVD 판매, TV 방영으로 이어지는 생각보다 긴 인생을 산다. 극장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홀드백(한 편의 영화가 다른 수익과정으로 중심을 이동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 기간을 거쳐 부가판권 시장으로 넘어오는데 이때 배급사가 하는 일은 영화를 IPTV와 모바일 등 디지털 플랫폼에 서비스하는 것이다. TV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빅뱅 이론, 멘탈리스트 등의 TV 시리즈는 미국과 국내 케이블 TV 방영을 거친 후 디지털 윈도우에 들어온다. 이것이 흔히 알고 있는 VOD 서비스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디지털 사업부에서 영화와 TV 시리즈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고로 몇 달 후, 인터스텔라의 디지털 서비스를 준비할 예정이다. 의외로 평범한 회사라서 놀란 이화인들도 있을 것 같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직원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영화제에도 자주 가고 할리우드 배우가 내한 오면 가까이서 얘기도 나누지 않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하는 말이다. 혹시 이런 화려함을 꿈꾸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출하려는 이화인이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영화제에 가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소수고 배우의 내한 역시 우리 회사에선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 이다.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입사 2년 차인 필자에겐 아직 그 비슷한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판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인생은 환갑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영화의 인생 2막은 부가판권 시장에서 꽃을 피우는 게 아닐까 싶다. 극장에서 한 달 반짝 흥행하고 관객에게 잊히기보다 그때 봤던 그 영화가 갑자기 보고 싶을 때, 영원히 소장하고 싶을 때 영화가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이 부족하지만, 필자는 관객들의 그러한 욕망을 읽어내고 지나간 영화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내는 이 일이 재밌다. 이 글을 읽고 영화 부가 판권 시장에 흥미가 생겼다면 혹은 영화가 좋아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 진출하고 싶은 이화인이 있다면 이것만은 꼭 기억하길 바란다. 업계는 좁고 이 분야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치고 영화를 안 좋아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자신의 장점이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 대해 많이 안다는 것이라면 미안하지만 이제 비로소 최소한을 갖춘 셈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다. 플러스알파를 원한다면 영화를 예술은 물론 산업의 틀에서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에 필자는 관심이 가는 영화를 하나 정해 그 생애 주기를 따라가 볼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이 영화를 판다면 어떤 플랫폼에서 누구를 대상으로 어떤 요소를 강조할지 나름의 전략을 세워보길 바란다. 한 영화 마케팅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나온다. 스테이크를 판매하려면 지글거리는 소리와 냄새를 팔아라. 이 말 뜻을 이해한다면 이제 영화를 어떻게 봐야할지 조금은 감이 오지 않을까 싶다.

교환학생칼럼 | 이소현(사교·13년졸) | 2014-12-01 20:21

“근로복지공단은 사전과 같다.” 많은 근로복지공단 신입직원 동기들이 이 말에 공감했다. 평소엔 잊고 살다 필요할 때만 찾는 사전처럼 근로복지공단 또한 근로자들이 필요할 때만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특성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잘 알지 못한다. 필자 또한 그랬던 것처럼 이곳을 잘 모르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근로복지공단을 알려드리려 한다. 여러분이 이곳을 모르는 건 어쩌면 다행인 일이다. 근로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찾는 많은 경우가 일하다 다쳤을 때기 때문이다. 근로복지공단의 주요 사업은 산재보험이다. 업무로 인해 재해를 당한 근로자에게 각종 보험급여를 지급하며, 재활 전문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밖에도 근로자 생활안정자금 대부, 체불임금지급과 퇴직연금서비스 등 근로자 복지사업을 수행한다. 근로자를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곳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처럼 근로복지공단은 힘든 근로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다. 필자의 업무인 퇴직연금 또한 근로자의 퇴직금뿐 아니라 노후까지 보장해 도움을 주는 제도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회의 안전망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매일 보람을 느낀다. 지금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이화인이 있다면 이곳을 제일 먼저 추천한다. 예전부터 필자도 사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수학을 제일 좋아했던 필자는 수학과보다 공학계열에 진학하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공과대학에 진학했다. 막상 대학에 와보니 연구하는 것보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학보사 기자, 지역아동센터 강사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주는 활동을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근로복지공단 모집 공고를 봤다. 일하는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지원했고 입사했다. 운이 정말 좋았던 것 같다. 필자의 접점 없는 이력을 설명한 이유는 바로 이 운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필자는 공기업 입사 준비를 해본 적도, 공기업에 지원해본 적도 없었다. 공기업 입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전공 공부가 전혀 돼있지 않았고 자격증도 부족했다. 유일하게 공들여 준비한 부분은 위와 같은 지원 동기를 자기소개서와 면접에 녹여내는 일이었다. 각 전형에서 근로복지공단에 지원한 이유를 강하게 어필했고, 운좋게 이 이유가 받아들여졌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전공, 스펙 등을 이유로 원하는 곳에 지원을 망설이는 이화인이 있다면 필자의 사례를 근거로 진심어린 지원 동기를 어필해보면 좋을 것 같다.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지원동기였지만, 현실적으로는 여성친화적 근무환경 또한 강한 매력포인트였다. 근로복지공단 직원은 법적으로 보장된 육아휴직 기간인 1년을 넘어 3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다. 덕분에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출산, 육아로 인해 일을 포기하는 여성 직원을 찾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곳에는 일장일단이 있는 법. 업무가 까다롭고 고도의 전문성을 요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느낄 때도 있다. 대부분의 업무가 법적 절차와 관련됐기 때문에 직원들은 산재보험법, 고용보험법 등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계속 개정되는 법도 숙지해야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근로복지공단은 직원들이 계속해서 전문성을 기를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필자는 입사한 지 3개월도 채 안 됐지만 펀드투자상담사 과정, 공인노무사 과정 등 업무 관련 강의를 5과목 정도 수강했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하는 데 흥미가 있다면 근로복지공단이 적성에 잘 맞을 것 같다. 우리가 잊고 사는 사전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지만, 그래도 아직 대부분의 이화인에게 근로복지공단은 펼쳐보지 않은 사전일지 모른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에게는 삶의 희망을 찾을 유일한 사전이다. 그 사전을 펼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함께 기쁨을 느끼고 싶은 여러분을 기다린다.

교환학생칼럼 | 황미리(식품공학·09) | 2014-11-10 13:39

“어이구 오랜만이다. 취직은 했니?” “엑스포마이스라는 회사 다니고 있어요.” “으응, 그렇구나! 축하한다!” 졸업하고 겪는 대화는 역시 취업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니는 회사를 말하면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아서인지 ‘축하한다’에서 끝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전 다른 어떤 직장인들보다 제 일에 만족하기에, 자랑스럽게 저의 직업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저는 작년 겨울, 우연히 인턴으로 회사와 인연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당시 제가 맡은 역할은 기획된 전시를 위해 마케팅, 홍보 등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인턴 기간 3개월턴이 끝난 후 취준생이 돼 남들처럼 이력서도 쓰고 탈락도 해보면서 취업 스트레스가 무엇인지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즈음 엑스포마이스에서 저를 다시 불러줬고 저는, 엑스포마이스의 사원이 됐습니다. 어쩌면 도피하듯이 취직을 결정했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비서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국제사무학과를 졸업하고 비서 취업 준비도 해봤지만 제가 크게 경쟁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 생각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제가 걸어온 모든 길이 준비 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돌아보니 제가 대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국제회의를 접하게 된 뒤로 계속해서 국제회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도, MICE 전공수업에서 모두 A+를 받은 것도, 인턴 후 저에게 다시 연락이 온 것도 모두 제게 맞춰진 각본 같았습니다. 작은 생각의 전환이 회사 생활을 더욱 즐겁게 만든거지요. 저희 회사는 국내 최초의 베뉴 마케팅 회사로, MICE 종합 기업입니다. 회사 구성조직은 MICE에 필요한 시설을 마케팅하고 운영하는 VM(Venue Management), MICE 지역 연계사업인 DM(Destination Management), 새로운 콘텐츠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CM(Content Management), 이벤트, 행사를 대행하거나 장치사업을 담당하는 PM(Project Management) 네 가지로 이뤄지며 그 중 저는 VM팀에 속해 있습니다. 제 업무는 파주에 있는 경기영어마을과 더장미라는 카페 등의 마케팅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부합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 가는 것이 항상 즐겁습니다. 저는 매일 아침 출퇴근 전쟁 없이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킨텍스로 출근합니다. 쉬는 시간에는 킨텍스에서 하는 다양한 전시를 보러가기도 합니다. 업무 성취감도 높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제 프로젝트는 오롯이 제 의견이 반영되는 것이니까요. 근무 환경이 자유로워 취업했다고 옷장을 갈아치울 필요 없이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우리 이화 벗들이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고, 본인이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먼저, 자신이 원하는 회사의 가치가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고 회사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큰지 스트레스가 더 큰지 비교해 보세요. 그래서 여러분도 행복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파이팅!

교환학생칼럼 | 표예나(국제사무·14년졸) | 2014-09-29 09:22

풋풋했던 스무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습니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활에 잔뜩 부푼 마음을 주체 하지 못해 안절부절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드디어! 대학생이! 그것도 무려 서울에서 이화여대생이 되다니! 내 인생 제2막은 어떻게 펼쳐질까 상상하며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모든 것이 담겨있던 스터디플래너 마지막 페이지를 펴 저만의 ‘Bucket List’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학교생활도, 사회생활도, 그리고 나의 꿈을 향한 무한질주도 모든 것이 버킷리스트에 적힌 대로 될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설렘을 안고 큰 꿈에 부풀었던 희망찬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은 훌쩍 흘러버렸고 공부도 과제도 자기관리도 미모도, 뭐든지 1등으로 잘하는 이화인들 사이에서 매일 매일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며 지냈던 저는 자연스레 뒤쳐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점점 무기력해졌습니다. 이화에서의 생활은 행복하고 따뜻했으나 나 스스로의 무기력함으로 어느덧 공허함이 더 많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삿짐을 옮기며 뽀얗게 먼지가 쌓이고 어느덧 색이 조금씩 바래버린 저의 스터디플래너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학창시절 순수했던 모습에 배를 잡고 웃기도 하고 엄마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고 감동의 눈물도 살짝 흘리고서는 맨 뒷 페이지의 버킷리스트를 발견하였습니다. 머리를 큰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 되기, 자랑스러운 이화인 되기, 정의로운 사람 되기, 영화 한편 만들어 보기, 눈물 나게 웃어보기, 가족과 친구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기, 백두산에서 태극기 들고 사진 찍기, 천만원 모으기, 첫 교직생활에 손 편지 100통 쓰기, 엄마랑 둘이서 여행가기, 기차타고 전국 여행 떠나기, … 등 소박하고도 나름 원대했던 저의 꿈들이 고스란히 적혀있었습니다. 그 때 느꼈습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내 인생 내가 멋지게 살아보자! 그리고 하나씩 버킷리스트를 실행해나갔고 리스트에 빨간 줄이 쫙쫙 그어질 때마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습니다. 어느덧 졸업을 하게 되었고,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학기 초 의욕이 100% 충만하여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하지만, 흩날리는 벚꽃에 콧구멍이 살살 간지러워질 무렵이면 목도 아프고 수업 준비도 소홀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를 잡아준 것은 바로 ‘초심’이었습니다. 버킷리스트 1번, ‘좋은 선생님 되기’는 제 인생의 가장 큰 꿈이자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초심이 흔들리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그 때 저를 지켜준 또 다른 버팀목은 바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었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요즘 청소년들이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수업 열심히 듣는 학생들 모습을 보면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저는 이 학생들을 위해 저를 더욱 채찍질하게 되었고 학생들에게 행복한 바이러스를 전파하고자 제 스스로가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제 이름처럼, 학생들에게 수학의 ‘정의(定義)’를 잘 가르쳐서 21세기 ‘정의(正義)’ 사회를 이끌어 나가는 인재가 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정의로운 교사 ‘조정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어 정신없는 찰나, 방학 동안 쉬며 나태해진 저는 이 글을 쓰며 다시금 저의 ‘초심’을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이화인 여러분! 초심을 잃지 않고 꿈을 향해 전진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결말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이화에서도 그리고 졸업 후 사회에서도 항상 우리 이화인을 응원하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음을 잊지 마시고 힘내시길 바랍니다. 파이팅!

교환학생칼럼 | 조정의(수교·12년졸) | 2014-09-01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