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추홀 외국어고등학교

  대학교 졸업반 시절, 교수님께서 ­내게 교사는 안 어울린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교사는 자신이 가르칠 내용을 선택할 수 없다.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내쳐진다.’였다. 실제로 ‘학교’, ‘교사’에서 연상되는 단어들 역시 답보(踏步), 적폐(積弊), 개인성에 대한 무관용 등 부정적인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적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3년 정도만 교사를 하고, 이후에 가고 싶은 길을 찾아보겠다고 했다. 2003년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덧 14년이 흘렀다. 여전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진짜로 가고 싶은 길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현실에 안주해버린 것인지 잘 모르겠다. 지극히 자연스럽고 당연한 하루하루 속에는 늘 학생들이 존재한다.

  ­아래는 고3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 졸업 후에 보낸 이메일의 한 구절이다.

  「고3 때 선생님을 보고 생각했던 게 있었는데, 한 번도 말씀 안 드렸다가 지금 문득 생각나서 적습니다. 재미있게 읽은 웹소설에 이런 말이 나와요.

 “전란의 시대에서 그럭저럭 믿음직한 상관의 부류라 하면 다양하게 나눌 수 있지만, 목숨에 관해 단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이 사람이라면 죽어도 좋아’였고, 다른 하나는 ‘이 사람 밑이라면 난 죽지 않아’였다.”

  전자가 인간적 매력으로 가슴에 설득당한 것이라면 후자는 능력으로 인해 이성에 납득당한 것이겠지요. 고3 시절과 춘추전국 시대를 비교하는 건 대단히 부적절하겠지만, 어쨌든 그때 제가 선생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했다면, 전 내내 ‘신뢰’라고 답했을 겁니다. 그 신뢰의 원천을 굳이 되짚어 보자면, 고3 담임이었던 선생님은 제게 후자로 시작해서 전자로 끝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 5분만 더 누워있고 싶다’란 생각을 하면서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중에 제자로부터 온 이메일을 읽고, 곧바로 일어나 학교로 출근했던 날이 있었다.

  교직 생활을 되돌아보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다. 설명을 들으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는 학생들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나던 때. 약 50명의 교사들이 참관하는 공개 수업을 하는데 긴장한 나머지 수업 활동의 진척도가 너무 느렸는데, 한 학생이 “선생님, 20분밖에 안 남았어요. 빨리 활동 마무리 짓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돼요.”라고 속삭이던 때, 중요한 점은 그 학생이 바로 가장 악명 높은 일진 대장이었다는 것. 수시로 지원한 마지막 대학에서도 불합격했다는 전화를 받고 쇼핑을 하다가 주저앉아 울었던 때. 거창하고 화려하지 않아도, 나름대로 극적이고 역동적으로, 학생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매일을 보내고 있다.

  교육에 대한 기사가 없는 날이 없다. 기사와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진작 망한 게 분명하다. 학생들의 창의성과 인성을 말살하고 있고 21세기에 필요한 지식조차도 못 가르치는 것 같다. 공교육의 교사들은 학원 강사보다 전문성이 떨어지고 이기적인 집단인 것만 같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자기만 알고, 욱하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어른의 말은 무조건 무시하고 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생각보다 학교 안의 우리는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를 아끼며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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