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여자고등학교

  ‘선생님 하복 언제부터 입어요?’ 이맘때쯤 꼭 듣는 질문이다. 교사가 돼도 정해준 날짜에 맞춰 스타킹 색을 바꾸거나 반팔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이상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해가 없는 등하교 길도 더 이상 서늘하지 않은 5월. 교실 달력에는 스승의 날, 체육대회, 수학여행 등의 각종 학교행사와 수많은 수행평가 마감일이 빼곡하게 표시돼있다. 학생들은 매일 일곱 과목의 수업을 듣고, 방과 후 보충과 야간자율학습까지 마치는 중에 점심시간 30분을 내어 체육대회 응원을 연습하고, 청소시간에 짬을 내 기악 합주를 맞춰보며 내일 아침 친구의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낸다.

  ‘너네 참 대견하고 부럽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지켜보며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나도 겪었던 일상인데도 안쓰럽고 대단하게 느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꿈만큼 스트레스도 많고, 순수함만큼 고민도 깊은 날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교육 제도와 규칙에 가치관과 정체성을 맞추어가야 하는 시간들. 그런데 한창 예민하고 고된 학창시절은 사실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웃음이 많은 때이기도 하다. 친구가 줄넘기 하는 모습이 특이해서, 야자시간 몰래 양치하다 선생님께 걸린 게 웃겨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 같이 박수를 치며 깔깔 웃는다. 그 예쁜 웃음이 학창시절을 그립게도 하고, 학생들의 존재를 빛나게도 하며 교직에 감사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뭐가 그렇게 재밌니?’ ‘그냥 다요!’ 정말 뭐가 그렇게 재밌는 걸까 하고 들여다보면 인생에 다시 없을 함께함 때문인 것 같다. 일 년 동안 약 30명의 친구들과 나누는 감정들은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다. 아무렇지 않은 칠판의 낙서가 누구의 필체인지 단번에 알아본다는 것은 반 친구 한 명 한 명의 사소한 특징까지도 모두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었다. 남들보다 공부에 욕심이 많거나,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잠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아는 것을 넘어서 배려하고 감싸준다는 것은 어른들도 잘 못하는 대단한 일인걸 저 때는 잘 몰랐던 것 같다. 분명 입시 경쟁에 시달리면서도 서로의 시험공부를 돕고 성적 때문에 우는 친구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순수함과 따뜻함은 학교 졸업이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너네 분명 지금이 그리워질 거야.’ 뜬금없이 학생들에게 몇 번 했던 말이다. 모든 일상을 하루 종일 함께했던 친구들과 일 년에 몇 번 만나기가 어려워진 지금, 교실에서 나의 여고 시절을 자주 추억하게 된다. 시험을 제일 잘 봤던 날 보다 피구대회에서 옆 반을 이겼던 순간이, 졸업식 날 상장을 받은 것 보다 졸업 사진 찍기 전 다이어트에 다같이 실패했던 순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지금은 행복한 줄 모를 이 순간들을 그리워 할 날들이 분명히 오겠지. 교사로서 언젠가 뒤돌아보고 행복하게 추억할 그 순간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하다. 그 추억들을 모두가 따뜻하게 갖게 하는 것이 내 역할이자 목표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반복되는 학생들의 하루를 더없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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