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음악 조감독

  태어나서 처음 본 뮤지컬은 ‘사랑은 비를 타고(Singing in the rain)’였다.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여름, 6살부터 피아노를 가르쳐 주시던 선생님께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시게 됐고, 선생님은 마지막 수업이 끝나고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가자고 제안하셨다. 선생님과의 헤어짐을 믿을 수 없던 나는 뮤지컬을 보러 가는 것조차 불만에 가득 싸여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극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까지 내가 보러 간 작품의 제목조차 모르고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날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다. 뮤지컬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처음으로 꾸게 됐던 터닝 포인트. 피아노 선생님께서는 마지막까지 내게 큰 가르침을 주고 떠나셨다.

  이화여대 작곡과에 입학했다는 ‘이부심’에 어려서부터 꿈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는 ‘꿈부심’이 더해져 나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부심’덩어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런 이상한 자부심을 가졌는지 모르겠지만, 남들보다 뮤지컬에 대한 꿈을 일찍 가졌다는 것에 대한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대학교만 졸업하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작곡가)같은 작곡가가 될 수 있을 것 이라고 착각했다. 그것도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가능할 거라는 오만한 착각.

  대학을 졸업하고 꿈에 그리던 뮤지컬 일을 시작하게 되고 나서야 여러 현실을 마주했다. 노력 없이 꿈만 꾸면 영원히 그 꿈 속에서만 살게 될 뿐이라는 현실과도 마주했고,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난 천재가 아니라는, 아주 조금도 천재가 아니라는 슬픈 현실과도 마주 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과 자존감이 뚝 뚝 떨어졌다. 그럴 때 마다 나는 내 자신을 자책하고 미워했다. 게다가 팀 내에 있는 다른 조감독들과 나 스스로를 비교하기 시작하자 예전의 ‘부심’넘치던 나의 모습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동료들이 부지휘자가 될 때마다 진심으로 내 일처럼 기뻤지만 한편으론 부러운 마음과 나만 뒤쳐지는 것 같은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지휘를 안 시켜줄까’하는 마음도 들고, ‘나도 잘 할 수 있는데’하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었다.

  이런 일들이 자꾸만 반복되면서 내가 내 자신을 감정적으로 자해하기까지 이르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예전처럼 ‘나도 잘 할 수 있는데’하는 마음이 아니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로 변했고 그 다음엔 ‘나는 잘 하지 못 할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시점에 모교 학보에 글을 실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것 같고 한없이 작아져 있는 내게 이화가 어깨를 두들기며 넌 충분히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이제 ‘난 못 할거야’라며 스스로를 가둔 철창을 깨보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될 후배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난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만약 내가 내 자신을 탓하지 않았더라면,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그러니까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자신감을 잃지 말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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