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정치2부 인턴

  “선배” 

  ‘대리님’, ‘과장님’이 아니었다. ‘선배’였다. 언론사는 여타 회사들과 다른 독특한 몇 가지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호칭문화다. 그들은 직급에 상관없이 서로를 ‘선배’, ‘후배’라 부른다. 나는 이 말이 설?다. 동경하던 이들을 선배라 부르는 것만으로 이미 그 세계의 일원이 된 느낌이었다.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탓에, 사회생활은 나에게 어려움의 대상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인턴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선배’라는 말이 주는 묘한 친밀함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출근한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그것은 오만이었다. “회사는 놀러 오는 곳이 아니야. 일하러 오는 곳이지” 장난 섞인 선배의 말. 그래, 잘해야지. 수 백 번 되뇌어도 따라가지 못하는 야속한 몸뚱어리.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졌다. ‘선배’라는 단어는 더 이상 나에게 설렘을 주지 않았다. 신입사원의 설움이란 게 이런 거구나,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할까, 자책도 많이 했다. 

  매일 생방송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하루는 전쟁터였다. ‘온에어’에 불이 꺼질 때까지, 단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인턴에 불과한 나도 그랬다. 오죽하면 손에 다한증이 생겼을까. 글자 하나, 숫자 하나, 방송사고를 낼 수 있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특히 예민한 정치이슈를 다루기에, 그 책임은 더욱 무거웠다. 하루는 선배가 이런 말을 하더라.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잘해야 해”. 다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 선배가 야속했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그러는 사이 나에게도 변화가 나타났다. 아침수업을 밥 먹듯이 지각하던 내가 7시만 되면 저절로 눈을 떴고, 숙취에 절어 출근한 날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아침인사를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조금씩 익숙해졌다. 이제는 퇴근길마다 실수를 곱씹지도, 스스로를 탓하지도 않았다. 들을 때마다 쿡쿡 찌르는 것 같던 선배의 말도 웃어 넘길 수 있었다. 그 세계에 녹아 들어가고 있었다.  

  약속한 3개월이 다 되어갈 무렵, 그제서야 더 이상 손에 땀이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를 괴롭히던 건 무엇이었을까? 능력의 부족함도, 일의 어려움도, 선배의 말도 아닌, 그것은 나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렸던 자리인 만큼 욕심이 났다. 잘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른 이 어디 있으랴. 인턴이야말로 직장생활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들어서는 첫술일 뿐인데 말이다. 상사와의 관계도, 일도, 천천히,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세 달 전 나는 그걸 몰랐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인턴생활이 막을 내리던 날, 수 십 번도 더 불렀을 그 말이 새삼스러웠다. ‘선배’. 그 날 그 말 속에, 야속함은 사라지고 애틋한 정만 남아, 우리는 서로의 미래를 축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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