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망매거진 에디터

  미팅이라는 단어가 더 이상 ‘설렘’을 뜻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드디어 사회 어딘가에서 자신의 둥지를 틀었다는 말일 것이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미팅에 나가서 나는 이제 20살의 엉성한 화장을 하고는 수줍게 내 나이와 이름을 말하는 대신 당당하게 웃으며 내 이름이 은박으로 새겨진 파란 명함을 내민다. 

  “안녕하세요 셰프님, 라망매거진의 김나영 에디터입니다.”

  내가 10개월간 몸담아온 라망매거진은 셰프와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한 요리잡지로 글만큼이나 아름다운 요리 화보가 인상적인 잡지다. 흔히 화보라고 하면 모델이나 연예인을 촬영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화보란 셰프들이 정성들여 만들어준 음식을 가장 돋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촬영하는 일이다. 

  라망매거진은 요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이화인이 되기 이전에 특성화고등학교에서 요리를 전공했었다. 2012년 내가 이화인이 된 봄, 세상에 첫 선을 보인 라망매거진은 나에게도 특별했다. 신선한 기획, 아름다운 화보를 보면서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하는 일도 잦았다. 그 이후 학보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면서 인터뷰하고 글을 쓰는데도 재미를 붙였고 과제를 빙자해 편집장님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의 그 바람대로 나는 지난 겨울 라망매거진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실제로 내가 하게 된 일은 내 상상과는 조금 달랐다. 실망했느냐고? 아니 상상 그 이상으로 멋졌다. 라망매거진은 잡지사인 동시에 다양한 미식 컨텐츠를 기획하는데 국내외 셰프들간의 컬래버레이션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지난 6월에는 <The World’s 50 Best Restaurants>라는 세계적인 미식 행사에 초대받아 다섯 셰프와 함께 뉴욕으로 떠났는데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가 사무실에서 지새웠던 밤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셰프들과 함께 그 행사장에 앉아 화면에 떠오른 우리의 로고를 보았을 때의 감동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감이 있는 출판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비교해보자면 나쁜 점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취재와 촬영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이 1시간도 채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야근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아침에 와서 할일 리스트를 적었는데 하루를 마칠 때 즈음이 되면 업무 리스트가 두 배가 되어있는 일도 허다하고 마감 때가 되면 집에 들어가는 일이 요원한 순간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셰프의 요리 한 그릇을 만나는 일이 좋기 좋기 때문이다. 셰프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요리는 단순한 디시가 아니다. 그 속에 녹아든 수많은 고민의 증거인 동시에 셰프의 삶 전체를 응축시켜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요리안에 결결이 배어든 셰프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셰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 의도가 잘 전해지는 순간이면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졸린 눈을 비비며 서울 곳곳으로 촬영 소품을 사러 발품을 팔아야 하고, 전화로 한 번만 도와달라 사정해야 할 순간도 오겠지만 여전히 이 일을 사랑할 것이다. 언제나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이름을 소개할 수 있는 멋진 에디터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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