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신여자교등학교

올해 초 교직에 몸 담은 지 30년을 넘겼습니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출근을 하고, 가끔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마치고 밤 늦게 귀가합니다. 이런 생활의 끝이 언제 올까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교직 생활이 조만간 끝이 날 거라는 실감이 느껴지면서 시간의 속도를 절감합니다.

교사로서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신하며 채워나갔던 교직 생활. 그런데 왜 이리 후회되는 일이 많을 걸까요. 그 동안 수많은 제자들과 부대끼면서 결정했던 많은 선택들이 나만의 고집은 아니었는지, 급한 성격 탓에 학생들과의 상담 시 내 뜻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적은 없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아이의 성격과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지도 방법이 달랐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후회스러운 점은 저의 몇 마디 지도에 아이들이 한 번에 완전하게 변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입니다. 아이들에게 쏟아 부은 열정이 크면 클수록 변화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그만큼 실망도 컸고 낙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을 붙들고 이야기하고 다그치고 읍소하며 에너지를 낭비했습니다. 요즘 아이들과 사제관계로 만나 마음을 터놓고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소통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에게 친절하다기 보다는 엄한 교사였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한 순간도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자신했는데 그랬던 저의 생각이 이제는 저의 오만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마치 드라마처럼 과거로 돌아가서 혹시라도 상처를 받았을 수 있는 제자들을 보듬어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전 생각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제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꿔보자고 말입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가졌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제 자신도 여유를 가지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모두들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아이들을 바라보기로 했습니다.

한 번의 교화와 가르침으로 큰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밤새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빈 컵을 채우는 더치커피처럼 끈기 있고 향기 있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하여 봅니다. 혹시 반항심을 가진 아이가 내 말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지금은 전혀 행동의 변화가 없더라도 언젠가는 어느 순간에 아이 스스로 변화될 것이라는 믿음. 이것이 교사 생활 30년을 통해 깨닫게 된 제일 큰 덕목이자 가르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언젠가 학교 교무실에서 연차 순으로 중간 고개를 넘나 싶었는데 이제 어느덧 왕 고참 교사 그룹에 속하게 됐습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후배 교사들에게 눈길이 더 가게 됩니다. 교직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후배들도 많이 있겠지요. 학생들이 스스로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일방적 가르침의 ‘teacher' 보다는 목표를 향해 제자들과 함께 해주는 ’coach’가 되어주는 마음가짐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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