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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설계 엔지니어

나는 입사 9개월 차 회사원이다. 회사원이라고 하면 ‘칸막이로 분리된 사무실 자리에서’ ‘각자의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엑셀 작업을 하거나,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드는 모습을 상상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나 자신을 회로설계 R&D 엔지니어라고 다시 소개해야겠다.

나는 TV를 만든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TV 화면을 구성하는 패널을 구동하기 위한 회로를 설계하고, 제작하고, 검토하는 일을 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말한다. “너무 어려운데,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공대생’은 알아도 ‘엔지니어’는 잘 모른다. 누군가에게 나를 소개할 때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말하면, 무엇이든 뚝딱뚝딱 만들어내는 이미지, 혹은 그들만의 전공 지식을 가지고 그들만의 유머코드를 가지고 있는 ‘덕후’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엔지니어들은 회사에 맞게 진화한 공대생이다.

제조업에서의 R&D는 장기적으로 쓰일 기술에 대해 연구하는 ‘기술연구’와 당장 내년에 판매될 제품을 개발하는 ‘제품개발’ 두 가지로 나뉜다. 나는 제품개발 쪽에서 일한다. 아직 시장에 나와 있지 않은 제품을 개발하기 때문에 설계한 부분에 대한 수많은 검토가 필요하며 검토를 위해서는 우리가 설계한 회로가 적용된 제품을 제작해야 한다. 입사하면 처음으로 주어지는 업무가 바로 ‘제작’이다. 필요한 부품을 발주 내면서 입고 일정을 확인하고, 입고된 부품을 공장에 송부하고, 송부한 부품들을 받아 하위 자재를 만들고, 이를 공장 생산 라인으로 투입하는 등의 일이다. 출장도 자주 나간다. 공장이 중국, 베트남 등지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기업에서 생산하는데도 ‘Made in China’가 적혀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에도 나는 중국에 있다. 이와 같은 출장은 제조업 R&D 종사자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제조업에 종사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사전적 의미로 엔지니어란 과학과 기술 사이에서 현실적 제약을 고려하며 최적의 효율을 만들어 내는 사람을 뜻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현실적 제약이란 주로 시간과 돈이다. 때로는 적은 시간 안에 비용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에 성공하면 정말 짜릿한 희열을 느끼지만, 대부분의 업무에는 부족한 시간에 쫓기면서 비용을 최소화해야한다는 압박이 따라다닌다. 모든 일은 빠르고, 정확하게 해내야 한다. 빠르게 해내더라도 서로 다른 버전의 부품을 사용해 회로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다면, 회로 제작 비용이 소모됐기 때문에 큰 손해로 이어지고, 정확하게 해내더라도 시간 안에 해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아마 공대 출신 사람들은 감정에 공감하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말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익숙한 직업 특성 때문에 나온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그 와중에 인간적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후배가 힘들어할 때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는 좋은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회사를 다닐 수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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