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회부 기자

  수습을 떼고 정식 기자가 된지 5일 째입니다. 이젠 선배에게 동선을 알리지 않아도 되고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 제가 정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냥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자유엔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조직에서 한 사람의 몫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느낍니다. 그렇게 저는 동아일보의 기자가 됐습니다. 

  6개월간의 수습기간,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첫 보고(동아일보 수습기자는 오전 7시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까지 2시간 단위로 선배에게 발생사건, 각종 경찰서 정보들을 보고해야 합니다.)를 놓쳐 경위서를 썼습니다.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 수면부족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었습니다. 허다하게 ‘물을 먹었고’ (자사 기자가 취재하지 못한 내용을 타사가 취재해 보도하는 경우), 현장에서 ‘팩트(fact)’를 꼼꼼하게 챙기지 못해 선배에게 깨진 적도 많았습니다. 

  두 시간 단위로 흘러가는 수습의 하루는 숨이 막힙니다. 한 경찰서에 적응할만하면 라인이 바뀝니다. 저는 6개월간 혜화북부라인(혜화, 동대문, 노원, 강북, 도봉, 중랑경찰서)에서 마포라인(마포, 서부, 서대문, 은평경찰서)으로, 마포라인에서 강남라인(강남, 수서, 서초, 송파경찰서)으로 옮겨 다녔습니다. 만나는 경찰도, 잠드는 경찰서 기자실도, 보고 드리는 선배도 매번 바뀝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지만, 거칠고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습기자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자로 다듬어져 갑니다. 

  사흘 전 저는 첫 기사를 썼습니다. 다단계 사기행각을 벌인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고 제1금융권 은행들이 줄줄이 사기대출에 걸려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원고지 4매 분량의 짧은 기사였고 지면도 아닌 온라인 출고용이었습니다. 음절 하나하나 공들여 쓴 기사는 ‘데스킹’(데스크가 기사를 손봐주는 일)을 거쳐 동아일보 홈페이지에 실렸습니다. 그날 오후 모 은행 홍보팀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기자님, 저희 은행 이름을 지우고 시중은행이라고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저는 제1금융권 은행들이 사기범에게 돈을 받고 페이퍼컴퍼니에 수십억 원을 대출을 해준 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해 은행 이름을 노출한 겁니다. 만에 하나 취재가 잘못돼 다른 은행을 적었으면 어땠을까.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기사 한 건이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면피가 통하지 않는 게 프로의 세계입니다. 이를 위해 저는 6개월을 수습으로 살았습니다. 제 이름 뒤에 붙는 ‘기자’라는 직함이 부끄럽지 않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후배님들께 이지훈 기자가 성장하는 모습, 동아일보 지면에서 보여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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