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적 콘텐츠로 주목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분 지 반 년 가까이 지났다. 각종 패러디와 코스튬으로 일상 곳곳에서 일명 ‘오겜 열풍’을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던 중, 나는 뜻밖의 곳에서 ‘오징어 게임’의 흔적을 찾았다.나는 매주 세 번 초등학생 방과 후 돌봄 기관인 키움센터에서 아동 돌봄 교육을 한다. 센터에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은 자유시간이 되면 보드게임을 하거나 술래잡기 놀이, 혹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무궁화 게임) 놀이를 하곤 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유시
나는 도덕성의 기준이 불쾌감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잘’ 나온 사진은 사람에게 불쾌감이 아닌 쾌감을 선사하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 사진에 찍힌 사람,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때 그 사진이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사진을 찍다 보면 이 명쾌한 기준에 의문이 생긴다.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사실을 왜곡 없이 전달할 의무를 갖는다. 사진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누가 봐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가끔 이 당연한 원칙이 딜레마를 안겨주는 상황이 있다. 인물사진을
“30초 만에 불행해지는 방법 알려줄까?” 3년 전,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가 했던 말이 아직까지도 내 뇌리에 박혀 있다. 쉬는 시간에 공부하는 아이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친구와 반 뒤쪽에서 조용히 얘기하던 중 난데없이 고개를 든 불행이었다. “내가 저 애보다 못난 점 하나씩만 빠르게 생각하면 30초 안에 30개의 단점이 생겨. 30번 불행해지지.”불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이 방법이 번아웃에 빠진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썩은 동아줄을 잡았다. 남과 나를 비교해 30개의 단점을 얻으면 내 삶에 경각심을 느
올해 초 스웨덴에 다녀왔다. 코로나19가 악명 높던 시기였지만 운 좋게 해외취재 프로그램에 선발됐고, 그렇게 취재차 스웨덴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가 방문한 곳은 유명 대학도시, 웁살라(Uppsala). 낮고 오래된 건물이 아름답던 도시에서 우리는 총 학생 부회장부터 교환학생 코디네이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학생자치 조직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던 터라 한국과 스웨덴 학생문화의 전반적 차이, 그리고 이에 얽힌 그들의 에피소드들을 잔뜩 들을 수 있었는데, 우습게도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느낀 가장 큰 차이는 ‘
누군가 우연히 마주한 부모님의 젊은 시절 연애 편지. 그런 걸 찍어 올리면 SNS 상에서 늘 화젯거리가 된다. 소소하지만 아름다운 문장과 사랑 가득 담긴 단어들은 지난 시대의 표상처럼 남아 가슴을 울리기 때문이다.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나의 경우는 엄마가 대학생이던 때 썼던 일기장이었다. 소박한 생김의 그 노트에는 짧게 적은 시구, 친구들과 나눈 필담이 빼곡했다. 스물 몇 살 일상의 기록인데도 마치 문학책을 보는 듯 어휘가 풍부했고 뾰족한 구석이 없어 기분 좋게 술술 읽혔다. 엄마의 일기를 보던 나는 인터넷에서 누군가의 부모님이
지금의 내 삶은 몇 챕터 정도에 와있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모두가 신년 목표를 외치던 연초가 얼마 안 지난 것 같지만, 벌써 올해의 3분의 1이 지났다. 나는 뭐든 쉽게 싫증나고 재밌어 보여 시작한 것도 익숙해지면 지루해한다. 매일같이 ‘지겨워’를 연발하기에 ‘분기’, ‘새해’, ‘학기’와 같은 경계선들은 반가운 상징이다. 이 경계선을 만나면 지금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새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경계선들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었고,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을 이끌어나갈 원동력이 됐다. 이 원동력에 대한 갈망이 심화된 것
거울 속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은 꽤 다르다. 거울은 좌우가 바뀌고 사진은 렌즈에 의한 왜곡이 생긴다. 결국 두 얼굴은 눈으로 보이는 ‘진짜 얼굴’과도 다르며 우리는 자기 얼굴도 모르고 살아간다. 얼굴처럼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과 특혜가 그렇다. 특권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대학에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생기고 다양한 꿈과 목표들을 만났다. 누구는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고
기자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 와 기사로 쓴다. 인터뷰이가 고뇌와 노력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경험을 기사에 싣겠다는 이유로 기자가 갖은 정보를 쏙쏙 뽑아간다. 나도 나 자신이 순간 파렴치한으로 느껴질 만큼 집요하게 그들의 시간을 베껴온다. 인터뷰를 하는 일은 나의 생에 24시간, 365일의 시간을 연장하는 것과 같다. 누군가의 실패와 성공, 좌절과 환희의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다.사실 이 작업은 기자보다 독자에게 훨씬 쉽고 효율적이다. 그러나 기사를 찾는 사람은 점차 줄어든다. 책보다 짧고 영화, 드라마보다 사실적인 기
상당히 불온적인 말이다. 권리에도 우선순위가 있다니. 철학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을 넘어서고 있는 현대 사조를 거스르는 말일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비롯해 소수자성에 집중하는 세계 전반의 트렌드와도 맞지 않는다. 어쩌면, 흐름에 뒤떨어지는 수준을 넘어 파시스트적인 말이 될지도 모른다.다름에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왜 시대에 역행하는 듯한 말을 던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으레 롯데리아 '어썸버거'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2020년, 롯데리아가 내놓은 신메뉴 스위트 어스 어썸 버거(Sweet Earth
“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어로 완전히 자리 잡은 말이다. 동시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인간은 고쳐 못 쓴다니. 내겐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떡하면 좋지? 믿기지 않겠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런 걱정부터 했다.나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충동성이 짙다.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정도는 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해야 했으며, 갖고 싶은 게 떠오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만 직
비건이 유행이란다. 과거 ‘채식주의’는 이효리나 이하늬 등 유명인의 ‘유별난 행보’로 언급될 뿐이었다. 채식주의 일종인 비건이 비로소 진지한 생활 형태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동물을 소비하지 마세요,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꾸준히 공장식 축산업과 환경파괴 문제를 지적하고 그 존재감 을 알리더니 근 3년간은 ‘열풍’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채식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가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약 10배 뛰었다고 하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그래서 비건은 이제 유별난
말하고 싶은데 말할 자리가 없는 것만큼 슬픈 일도 없을 것이다. 공간을 허락받지 못한 시위대가 마이크를 놓고, 갈 곳 잃은 전단지가 비 맞고 울듯이 말이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이번 학기 학보 일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말할 공간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학보에는 정기적으로 부장이 글을 쓰는 ‘상록탑’이 있어, 이번 학기에는 2번 글 쓸 기회가 있었다. 본교 재학생들뿐만 아니라 교직원들까지 읽는 대학신문에 대표로 글을 낸다는 것은 뿌듯한 일이다. 특히 사진기자로서 학보에 내 ‘글’을 싣는 일은 드물고, 취재 내용이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라는 SNS 계정이 있다. 말 그대로 그날 일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 소식을 싣는 계정이다. 2021년 0월 0일 노동자 n명 사망, 그리고 사망 경위에 대한 짧은 한마디를 전하는 방식으로 매일 글이 업로드 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단순한 숫자들의 통계 나열에 불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시작했다는 계정주는 2021년 1월부터 어느덧 439명의 죽음을 전달했다. 대학에 들어와 노동자의 입장에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나 또한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SNS로 관련 글들을 찾던 와
"나는 선배들의 비아냥을 매일같이 들으면서도 공강이면 중도에 가서 그날 들은 수업 내용을 바로바로 정리했고, 학점을 관리하느라 재수강과 계절학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동아리마저 이력서에 쓰기 좋은 것들로 매년 바꿔가며 가입했고, 방학이면 괜찮은 아르바이트와 잘나가는 기업의 업무와 관련 있는 대외 활동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 와서 끼와 개성, 창의성을 펼치라니.”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에서 주인공은 대기업 합숙 면접 마지막 관문으로 팀원들과 공연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갖은 노력으로 온갖 스펙을
‘00구에서 실종된 000씨(여, 79세)를 찾습니다.’, ‘00구에서 배회 중인 000씨(남, 72세)를 찾습니다.’요즘 재난 문자로 자주 받는 알림 내용이다. 10월 한 달 동안만 서울에서 이러한 알림이 27회나 발송됐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실종자의 대다수는 노인이었다.알림을 보고 있자니 중고등학생 때 노인 요양센터에서 봉사활동 한 경험이 떠올랐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센터에 발을 들이면 바삐 움직이는 도심과는 완전히 상반된,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압도되곤 했다. 그 안에서도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분들은 치열한 하루를 살
달력에는 여름이 끝났다고 하지만, 한동안은 덥기 마련이다. 비로소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건 무심코 문을 열었다가 얼굴에 훅 끼치는 공기. 세상의 것들이 차가워져서 풍기는 냄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어떤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작년 가을에 놀이치료를 했었다. 내가 내담자였다. 누군가가 ‘다 커서 무슨 놀이치료를 받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 없다. 왜냐면 나는 진짜 ‘아동’ 놀이상담의 일환으로 받은 거니까. 하지만 나름대로 그럴듯한 사정이 있다.5월에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겼었다. 우울한 여름을 보내고 문득 맞은 찬 바람에
‘내가 뭐라고’ 병에 걸린 적 있나. ‘내가 뭐라고’ 병은 ‘내가 뭐라고’ 이런 도전을 하나, ‘내가 뭐라고’ 이 호사를 누리나, ‘내가 뭐라고’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거라고 믿나 등등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있는 아주 악독한 병이다. 이 병에 익숙하고 환절기 감기처럼 자주 겪는 사람으로서 이 병으로 끙끙 앓고 있는 이들에게 가벼운 비타민 같은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티켓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대개 티켓팅 실력은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 인내심으로 구성된다. 나는 앞의 둘 다 그다지 좋지 않은데 공연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긴장되고,
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팬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문구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이 말은 뉴욕양키스의 유명 선수 요기베라가 남긴 말로, 끝까지 알 수 없는 승부를 펼치는 야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이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곤 했다.중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다. 고등학교 입시도 성공했겠다, 주변 관계들도 나름 원만하고, 자신감에 차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좋았겠지만, 희
2학기 첫 발행에서 맡은 기사의 주제는 ‘졸업생이 건네는 조언’이었다. 2020학년도 후기 졸업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 소감과 조언을 들어보는 기사로,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로부터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본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취재를 거듭하며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면, 꽤 여러 번 공통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다양한 것을 해보기”였다.사실 뚝 떼어놓고 이 말만 듣는다면 꽤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다양한 것? 뭘 하라는 건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하면 어
5일 동안 강연자 9명의 강연을 듣고 4차례의 청년 토의에 참관했다. 화려한 스펙은 고사하고, 벌써 대학생 3년 차임에도 학보 기자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한 기억이 없는 게으른 내겐 엄청난 시도였다. 올여름 가장 무더웠던 오후에 축 늘어진 나와는 달리 열의 넘치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노트북 화면 너머로 바라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청년을 대상으로 8월2일부터 5일간 진행된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주제는 ‘지속 가능한 지구촌을 위한 청년들의 역할’.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부 주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