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적 콘텐츠로 주목과 비판을 동시에 받은 ‘오징어 게임’ 열풍이 분 지 반 년 가까이 지났다. 각종 패러디와 코스튬으로 일상 곳곳에서 일명 ‘오겜 열풍’을 볼 수 있었다. 서서히 흔적이 사라지던 중, 나는 뜻밖의 곳에서 ‘오징어 게임’의 흔적을 찾았다.

나는 매주 세 번 초등학생 방과 후 돌봄 기관인 키움센터에서 아동 돌봄 교육을 한다. 센터에는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은 자유시간이 되면 보드게임을 하거나 술래잡기 놀이, 혹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무궁화 게임) 놀이를 하곤 한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자유시간에 놀이하던 중, 무궁화 게임의 술래였던 아이가 친구들을 향해 총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이에 다른 아이들은 ‘오징어 게임’을 연달아 외치며 해맑게 ‘오징어 게임’ 속 무궁화 게임을 모방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요리 교실 시간에 달고나가 나왔을 때는 ‘오징어 게임’에서 본 대로 달고나를 핥으면 뽑기를 잘 할 수 있다고 알려주는 모습을 봤고, 딱지치기하다가 뺨 때리는 것을 흉내 내는 모습도 봤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당연하다는 듯 ‘오징어 게임’을 봤다고 답해줬다. 초등학교 아이들만 모여있는 곳에서 ‘오겜 열풍’의 흔적을, 그것도 반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발견해서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19세 관람가의 콘텐츠를 미취학 아동이 본 것부터 콘텐츠의 여파가 반년이 지난 시점까지 역력한 것까지.

어쩌면 당연키도 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콘텐츠 자체는 19세 관람가라는 영상물 나이 제한 등급이 있지만, 예능 프로그램부터 SNS까지 패러디 콘텐츠가 물밀듯 쏟아지며 사실상 그 접근성은 나이 제한 등급보다 대폭 넓어져 있었다. 1인 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콘텐츠 유통망의 확연한 증가는 특정 콘텐츠의 확대 및 재생산이 용이해짐을 뜻한다. 이로써 ‘오징어 게임’ 자체는 초등학생이 볼 수 없는 콘텐츠지만, 그 안의 내용을 재해석한 콘텐츠들은 결국 초등학생도 볼 수 있는 시스템이 정착된 것이다. 또한 이는 콘텐츠 유통망의 확연한 증가로 유통망 자체를 정책적으로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움을 뜻한다. ‘볼 게 많은 시대’는 더 이상 나만 ‘볼 게 많은 시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볼거리’는 미취학 아동이 일부 접하고 모방하게 만드는 ‘볼거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이 ‘볼거리’는 미취학 아동에게 반년이 지남에도 자연스레 연상이 될 만큼 강한 기억으로 자리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소비 이후의 문제점을 등한시할 수 없는 ‘볼거리’다. 

누군가의 오락은 더 이상 오락이 아니다. 아동에게는 놀이에 대한 매개 기억으로 역할 하며, ‘무궁화 게임’과 ‘달고나 게임’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그와 관련된 폭력적 장면이 연상되는 학습의 도구이기도 하다. 오락을 단순 오락으로서 취급하기 위해서 영상물 나이 제한 등급이 있었고, 이는 미취학 아동의 시청을 제한하며 아동을 보호해왔다. 그러나 이마저 이제는 더 이상 적확한 방패막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정책적으로 콘텐츠의 유통 자체를 통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지만, 콘텐츠 시장에서 자극적 콘텐츠의 범람을 규제코자 해야 함은 마땅한 사실이다. 그러나, 시장의 ‘수요-공급 모델’을 고려했을 때 나는 미디어 소비자로서 ‘가치 소비’를 하려는 개인적 노력에 방점을 두고 ‘미디어의 오락성’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

환경 문제부터, 자본주의 사회 속 권력 남용의 문제 등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가치 소비’에 대해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 여러 소비재에 얽힌 권리들에 ‘오점’은 없었는지를 눈여겨보는 가치 소비자들이 미디어 소비 환경에서도 늘어났으면 한다. 미디어 시장이 대형화되고 세분됨에 따라 미디어 콘텐츠 이용에 있어서 다양한 내용이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비슷한 내용을 여러 곳에서 많이 다룸으로써 특정 주제가 확대되고 재생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통제 불가능’을 탓하기보다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가치를 지닌 콘텐츠가 적합한 평가를 받을 수 있게, 연령가 설정을 통해서 제한해야만 유통될 수 있는 콘텐츠에만 집중하지 않는 미디어 ‘가치 소비’가 필요하다.

주류의 흐름에만 휩쓸리며 책임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에 있어서, 미래의 콘텐츠 생산 흐름에 있어서 도움이 될 법한 콘텐츠가 주류가 되고, 그것이 확대 및 재생산될 수 있는 사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보았으면 한다. 당신의 오락은 더 이상 당신만의 오락이 아니다. 그리고 당신의 소비는 당신만의 소비가 아니다. 나의 소비는 더 이상 오락만이 아니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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