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첫 발행에서 맡은 기사의 주제는 ‘졸업생이 건네는 조언’이었다. 2020학년도 후기 졸업을 맞이하는 학생들에게 소감과 조언을 들어보는 기사로,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로부터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본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취재를 거듭하며 흥미로웠던 점이 있다면, 꽤 여러 번 공통으로 언급된 내용이 있었다는 것이다. 식상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바로 “다양한 것을 해보기”였다.

사실 뚝 떼어놓고 이 말만 듣는다면 꽤 추상적으로 느껴진다. 다양한 것? 뭘 하라는 건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다양하다고 말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하면 어떤 이득이 주어지는데?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명확하고 신속한 답변을 선호하는 요즘 사회에서, 이런 두루뭉술한 말은 혼란을 일으킨다. 번지르르한 말들은 으레 그럴듯한 의미 사이로 군데군데 의문점을 심어 놓은 채 무책임하게 흐려져 버리니까. 다양한 것을 해보라는 말은 마치 다양한 것을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로 다가와 더욱 부담이 된다. 하지만 나름대로 입학보다는 졸업에 가까운 나이가 돼 보니 이 말을 한층 더 유연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즈음, 나는 어떤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무언가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이골이 났고, 사소한 속박감에도 큰 거부감을 느꼈다. 제 깜냥보다 고등학교 때까지 너무 성실히 살아왔던지, 성인이 되니 원인 모를 반항심이 치솟았다. 이는 크고 작은 일탈로 이어졌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는데, 이를테면 수업 빠지기, 시험지 백지로 제출하기, 밤새 술 마시기 같은 것들이었다. 학업에 열중하지 않은 것은 성적에서 바로 표가 났다. 학사 경고를 간신히 면한 채 1학년 1학기가 끝이 났다.

원 없이 놀았다. 1년 반 정도를 원하는 만큼 실컷 허비해봤다. 그러다 문득 생산적인 것에 집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은 학점 관리. 친구들이 전공 책을 끼고 도서관에 가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져서였을까.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고, 중앙도서관에 밤샘 공부를 하러 가기 시작했다. 성과가 바로 나진 않았지만, 열중하고 있는 느낌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주변에선 ‘어차피 일정 수준 이상으로 학점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면 큰 의미가 없다’며 말하곤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저 그 순간 최선을 다하는 내 모습이 좋았기 때문이다.

시도는 또 다른 시도의 원동력이 된다. 성적을 올려보니 공모전에 나가게 됐고, 상을 타보니 이대학보 취재기자에 지원하게 됐고, 학보사 기자가 되니 국어국문학 부전공을 결정하게 됐다. 나와 어떤 접점도 없어 보이던 것들이 우연한 계기로 돌연 삶의 일부가 된 거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를 하지 않아보니 공부하게 됐고, 다른 기회들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무엇이든 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니 용기가 생겼다. 설사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더라도, 가시적인 이득을 취하지 못하더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활동 반경이 넓어졌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최근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자원 활동을 하며 만난 한 활동가 분이 떠오른다. 갑작스레 나눌 수 있었던 여성 영화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도.

물론 시간은 소중하고, 조바심이 나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 자꾸만 급한 마음, 예컨대 빨리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 한 푼이라도 더 청약 통장에 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죽기 전까지 우리는 모두 과정 중에 있다는 거다. 러닝타임 내내 하이라이트가 지속되는 영화는 없다. 또 각자의 하이라이트는 언제, 어떤 계기로 정의될지 속단할 수 없는 법이다.

“그건 왜 하는 거야?”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다. 그 말을 들으면 “그냥”이라는 말 외에는 별달리 대꾸할 방도가 없다. 진로, 미래, 취업 따위가 아닌 단지 ‘하고 싶어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5년 후의 나는, 10년 후의 나는 지금의 선택을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평생 안아주고 보듬어줘야 할 나 자신, 더 재밌고 행복한, 다양한 순간들로 채워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나는 꽤 알차게 인생을 낭비하는 중이다. 낭비라는 부정적인 어조와는 상반되게도, 내 기분은 퍽 나쁘지 않다. 기왕 낭비해볼 인생, 어떻게 더 재밌게 낭비해볼지 오늘도 난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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