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ain't over till it's over.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아는, 팬이 아니더라도 한번 쯤 들어봤을 법한 문구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라는 이 말은 뉴욕양키스의 유명 선수 요기베라가 남긴 말로, 끝까지 알 수 없는 승부를 펼치는 야구와 같은 스포츠에서 자주 쓰인다. 그런데 최근, 이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곤 했다.

중학교 3학년까지만 해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줄 알았다. 고등학교 입시도 성공했겠다, 주변 관계들도 나름 원만하고, 자신감에 차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그런 나날들이 지속되었으면 좋았겠지만, 희망했던 고등학교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성적도 학교생활도 노력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결과가 그렇다 보니 남과의 비교가 늘어 위축된 채로 지낸 적이 더 많았다.

첫 입시에서도 원하는 만큼의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친구들이 시간표를 짜서 SNS에 올릴 때 나는 학원의 주어진 시간표를 받았고, 친구들이 예쁜 옷을 입고 놀러 갈 때 나는 츄리닝 차림으로 하루하루를 다시 반복할 뿐이었다. 학번이 밀리는 것에 대한 보상을 바라는 마음으로 1년을 버텼다. 대학에 가면 무엇을 할지, 여행은 어디로 갈지. 그리고 정말 1년을 버틴 후에 대학에 왔다. 그런데 웬걸, 이번엔 전염병이 내 앞길을 망치다니.

눈부실 것만 같은 20대도 10%는 입시로 날려버리고, 새내기의 삶은 온통 비대면. 덕분에 남들 다 해본 대학생활에서 추억으로 건질 것들이 없다시피 하다. 코로나19 생활에 막 익숙해졌을 때쯤, 어쩌다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또 말썽이었다. "서울 중앙지검인데요..."

선량한 시민으로서 수사에 협조하고자 했던 내 호의는 결국 한 학기 등록금을 날리고, 누명을 써서 경찰과 매일 전화에, 남들은 태어나 한번 갈까 말까 한 경찰서도 들락거리게 한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우리 집 막내였던 코코도 내 곁을 떠났고, 또 그 학기 성적은 유난히 맘에 안들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이래?" 몇 번이고 묻고 싶었던 말이다. 자기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듯한 느낌이 계속됐다. 자책도 많이 했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내가 좀 더 기도를 열심히 할걸,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지 등 당시 내 머리는 부정적 상념들만 부유하고 있었다. 모든걸 다 포기하고 싶고,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좀 힘든 상황이고, 이런 일들을 겪었으니까. 난 뭘 해도 잘 안될 거 같으니까.

정말 그렇게 될 것 같았지만, 당시 친구가 해준 말을 듣고 부정적 태도에 제동을 걸었다. 학보를 같이 만들던 최은의 한마디. "아직은 2회초니까 괜찮아" 듣는 순간 탁 와닿았다. 스포츠를 보다 보면 정말 예기치 못한 승부들을 많이 관전하는데, 특히 야구는 시간제한이 없는 흐름의 스포츠라 더더욱 그러하다. 확률은 적더라도 끝까지 노력해 대역전극을 이뤄낸 경기들을 여럿 본 적이 있다. 2:10의 스코어에서 꾸준히 점수를 내서 16:15로 이긴 경기라던지, 7:1에서 9회에만 7점을 내 역전한 경기라던지.

끝까지 가보지 않는 이상,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게 경기고 또 그건 우리네의 인생과도 닮아 있다. 생의 전성기를 조금 일찍 맞아 호시절을 누리다 말년에 좋지 않게 삶을 마감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지속된 실패가 이어지다가 노후에 전성기를 맞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이를테면 KFC 창업자 할랜드 샌더스처럼.

지속적으로 경쟁을 부추긴 사회 때문인지, 초조함에 삶을 너무 근시안적으로 바라봤던 듯하다. 지금이 다일 것 같고, 지금의 상황이 끝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비관 혹은 낙관으로.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견디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푸슈킨의 말처럼, 지금 필요한 건 멀리 보면서 좋은 날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것. 야구에서 약속의 8회를 기다리는 팬들처럼.

내 유년기와 10대에 얼마나 많은 점수를 얻고, 또 얼마나 많은 점수를 내주었든 지금 건강한 상태로 삶을 이어가는 걸 보면 1회는 나름 선방했다. 아직 20대 초반인 나는 긴인생에서 2회초를 진행하고 있는 거니까. 내 홈에서 인생이란 게임을 이어간다 생각하면, 지금의 실수와 잘못들을 만회할 2회말이 있을 거고, 더 길게보면 내 인생이 끝나는 9회말까지도 승부는 알 수 없을 테니! 그러니 모두들 각자의 9회말까지 온전히 다 삶을 누렸으면 한다. 살아있는 동안 기회는 계속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것이기에.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