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동안 강연자 9명의 강연을 듣고 4차례의 청년 토의에 참관했다. 화려한 스펙은 고사하고, 벌써 대학생 3년 차임에도 학보 기자 외에는 이렇다 할 활동을 한 기억이 없는 게으른 내겐 엄청난 시도였다. 올여름 가장 무더웠던 오후에 축 늘어진 나와는 달리 열의 넘치게 얘기하는 사람들을 노트북 화면 너머로 바라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청년을 대상으로 8월2일부터 5일간 진행된 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주제는 ‘지속 가능한 지구촌을 위한 청년들의 역할’. 지속가능 발전 목표(SDGs)를 중심으로 다양한 세부 주제의 강연이 진행된 후 토의가 이어졌다. 명문대 교수는 물론이고 의료 봉사 단체 대표, 제로웨이스트 상점 대표, 시각장애인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소셜벤처의 팀장 등 다양한 인물이 강연했다.

잊지 말아야 하는 가치에 대해 되짚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다만 황금 같은 방학에, 매일 3시간씩이나 투자해야 하는 이 프로그램에 내가 참여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봤다. 지속가능 발전 목표에 관해 관심이 많아서였나? 방학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서였나?

결론은 ‘둘 다 아니다’였다. 물론 해당 주제에 관심 있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 방학 중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줄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참여를 결정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대외 활동을 소개해주는 앱을 통해 이 프로그램의 공고를 처음 봤을 때, 유익할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선뜻 신청할 생각은 못 했다. 그러나 며칠 후 한 친구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통해 그 친구가 이 프로그램을 신청한 것을 알게 됐을 때, 무언가에 홀린 듯 다시 프로그램 공고를 찾아 정독했고 단숨에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상하게도 갑자기 프로그램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강연과 토의가 기다려졌다.

이런 내 사고 회로의 기저에는,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습성이 깔려있다. ‘쟤는 이런 것도 하네, 난 이런 거 참여해본 적 없는데.’ 남과 나를 비교하는 생각이 한때는 스트레스의 근원인 적도 있었다. 미래를 위해 해 놓은 것이 없다는 불안은 커져만 갔다. 불안해할 시간에 책 한 권이라도 더 읽는다거나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면 좋겠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마침내 나오는 결론은 어리석게도 ‘무기력해지기’. 비효율의 극치다.

생각의 굴레로부터 나를 구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건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난 이런 거 참여해본 적 없는데’의 다음 단계가 중요하다. ‘난 뭐 하고 살았지, 한심해’가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관심을 가져 볼까?’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타인과 나에 대한 비교를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대신, 막연히 살다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깨닫게 해주는 지표로 보기 시작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다. 비교를 멈추지 않는 내 습성은 달리 생각하면 내게 주어진 선물이다. 어찌 보면 지독한 자기합리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게라도 해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성취고 위안이다.

사람들은 종종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한다. 그렇다면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지만 난 나야’로 일관해야 하는 걸까? 그러다 잘 풀리면 심지 굳은 사람, 안 풀리면 황소고집 되는 건 아닐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도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찌 보면 자아 성찰의 가장 쉽고 빠른 길이다.

다시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가서, 친구와 나를 비교함으로써 얻어낸 프로그램은 또다시 비교의 기회를 줬다. 강연자들과 토의 발언자들은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제로웨이스트 상점들의 위치를 모아 놓은 지도를 만든 이도 있었고, 공정무역 활성화 방안을 연구하는 동아리를 만든 이도 있었다.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던 것들이다.

‘저들은 이 문제에 참 관심도 많고 실천도 열심히 하네’의 다음 단계가 ‘난 여태 잘못 살았어’가 되면 안 된다. ‘나도 작은 것부터 노력해 볼까?’로 관점을 바꾸니 자연스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실천으로 이어졌다. 주변 어른들께 제로웨이스트 상점을 소개해 드리기도 하고, 즐겨 마시던 커피 대신 공정무역 커피를 구매하기도 했다. 비록 이 프로그램의 토의에서는 한마디도 못 했지만, ‘비교 후 실천’을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관련 대화에서 당당히 몇 마디 얹을 수 있는 정도는 될 것이다.

무더위의 끝이 보이는 요즘, 여전히 꽤 무미건조하고 불완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내게 새로이 추진력을 줄, 실낱같은 무언가를 붙잡아 보려 한다. 잘난 이와 나를 비교하다가 한 번 스트레스 받고, 그와 나를 비교하는 내 모습이 싫어서 두 번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가 너무 손해다. ‘비교하는 나’를 부정하는 대신, 비교를 원동력 삼기로 했다. 이제, 매일 아침 홈트레이닝 하는 엄마를 보고 등록한 필라테스 학원으로 발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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