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에서 관용어로 완전히 자리 잡은 말이다. 동시에 나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이기도 했다. 인간은 고쳐 못 쓴다니. 내겐 고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어떡하면 좋지? 믿기지 않겠지만,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그런 걱정부터 했다.

나는 계획적이지 못하고 충동성이 짙다. 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지만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지적하는 정도는 된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은 당장 해야 했으며, 갖고 싶은 게 떠오르면 어떻게든 손에 넣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을 살았다. 계획 없이 나돌아다니고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사는 게 일상이었다.

그래서일까. 부모님은 언젠가부터 내게 계획표를 쓰게 했다. 방학 첫날 아침이면 나는 책상에 앉아 출력된 빈칸을 채웠다. 적어도 그 종이를 붙들고 있는 동안에는 내 머릿속에서도 나름의 계획이 그려졌다. 완성하고 나면 뿌듯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나의 습성은 그렇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일만 찾고 해야 하는
일은 미루는 습관은 계속됐다. 방학 계획표는 일주일도 버티지 못하고 책상 위를 나뒹굴었다. 매일 쓰던 용돈 기입장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충동 소비를 변명하기 위해 용돈 기입장의 ‘지출’란을 거짓으로 꾸며 내기 시작했다.

시간은 내가 변하기를 기다려주지 않고 야속하게 흘렀다. 나는 어느덧 펜을 쥘 나이가 됐고, 해를 거듭하면서 점차 벼락치기가 익숙해졌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변한 건 없었다. ‘코로나 학번’이라 더했다. 나를 관리하고 감독해줄 사람이 없으니 수업마저 듣지 않았다. 결국 시험 당일까지 밀린 강의를 들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봉착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이 짜증나고 어처구니없음과 동시에, 늘 그랬듯 대충 임해서 거둔 성과에 대충 만족하기도 했다. 대충대충 쉽게 쉽게. 어느덧 그게 내 인생의 모토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작년 8월, 나는 이대학보에 들어왔다. 그날은 내가 지망했던 활동에 신청서를
제출한다는 걸 깜빡해 결국 기회를 놓친 날이었다. 얄팍한 자기반성에 잠겨 있는데, 때마침 이대학보가 취재기자 추가모집 마감을 앞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마감까지 두 시간 남겨놓고 지원서 작성을 시작했다. 되짚어보면 이 또한 충동이 저지른 일이다.

그런데 발을 들여놓고 보니 벅찼다. 되는대로 설렁설렁 살아온 나에게 이대학보 취재기자로서의 일과는 자못 빡빡했다. 금세 포기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별수 있나. 조직 생활의 장점이자 단점은 내가 내 멋대로 행동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학보의 일원으로 남기 위해 나는 어쩔 수 없이 규칙과 체계를 체화해야 했다.

매주 제출하는 기획안의 작성을 까먹어서는 안 되고, 취재 보고는 하루 두 번씩 꼬박
꼬박. 나는 지금껏 살아왔던 대로 그저 나태해지고 싶었지만 남들에게 민폐를 끼치기는 싫었다. 그래서 일과를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 일을 떠오르는 순서대로 캘린더에 적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 안에 끝내지 못 하는 일이 생겼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는 시간 단위로 하루를 쪼개 할 일을 분배하기에 이르렀다. 매일 할 일을 시간순으로 배치한 체크리스트를 만들고 하루 3번 알림이 오도록 설정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계획적으로 살아 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번거롭고 짜증났으며 이따금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지레 겁을 먹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제는 내 모든 결점이 고쳐졌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다. 여전히 나는 계획적이지 못하며 충동성이 짙다. 어쩌면 이것들은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제 막 발을 내디딘 참이다. 조금씩이지만 나는 변하고 있다. 자기 전 오늘 한 일을 되돌아보고, 내일 할 일을 정리하면서.

완전한 탈바꿈을 지향하지 않아도 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첫걸음을 뗐다면 벌써 반은 온 것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게 두려운, 그리고 내가 변화하지 못할까 두려운 독자들이 있다면 이 글을 읽고 용기를 가지면 좋겠다. 나 또한 한 걸음 나아가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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