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구에서 실종된 000씨(여, 79세)를 찾습니다.’, ‘00구에서 배회 중인 000씨(남, 72세)를 찾습니다.’

요즘 재난 문자로 자주 받는 알림 내용이다. 10월 한 달 동안만 서울에서 이러한 알림이 27회나 발송됐다. 모두가 예상할 수 있듯, 실종자의 대다수는 노인이었다.

알림을 보고 있자니 중고등학생 때 노인 요양센터에서 봉사활동 한 경험이 떠올랐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센터에 발을 들이면 바삐 움직이는 도심과는 완전히 상반된, 착 가라앉은 분위기에 압도되곤 했다. 그 안에서도 어르신들과 요양보호사분들은 치열한 하루를 살고 있었다. 어르신의 식사를 돕고 시설을 청소한 후 지친 몸으로 밖을 나서면, 왠지 건물 밖 세상이 건물 안 세계엔 너무도 무관심하게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허전했다.

한 사회의 전체 인구에서 만 65세 이상의 고령 인구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은 고령화사회가 된 지 17년 만인 2017년 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수준이다. 고령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를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통계청은 2019년 장래인구추계에서 2025년에 한국이 초고령사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이처럼 급격한 고령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은 이가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0월은 경로의 달이었고 10월2일은 노인의 날이었다. 관련 기사를 보던 중 ‘노인학대 예방의 날(6월15일)’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런 날이 필요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지 궁금해져 찾아본 결과, 국내 노인학대 신고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었다. 2020년 총 신고 건수는 16,973건이나 된다. 사람들은 이를 노인의 가족이나 노인 복지 기관 등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긴다. 그렇다면 학대 피해 노인은 ‘알아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혜택을 잘 받고 있을까.

그동안 학대 피해 노인에게 제공된 서비스의 대다수는 단순한 정보제공 서비스나 상담 서비스였다. 더 심층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재가 서비스 연결과 같은 복지 서비스나 의료 서비스의 혜택을 받은 피해 노인 사례는 매년 전체 사례의 10%가 채 되지 않는다. 과연 심층적이고 직접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피해 비율이 10% 미만일지 의문이 든다.

독거노인의 자기 방임이 학대 유형의 하나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자기 방임은 노인 스스로가 최소한의 자기 보호 행위를 포기해 심신이 위험한 상황에 이르게 하는 행위다. 이를 온전히 개인적 의지박약의 문제로 볼 수 있을까. 그들도 언젠가는 열정 가득한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저 사회의 무관심에 익숙해져 스스로에게마저 무관심하기로 정해버린 것은 아닐까. 어찌 보면 다른 어떤 학대보다 사회가 더 큰 책임을 지니는 유형일 수 있다.

노인을 가장 가까이에서 돕는 요양보호사의 열악한 처우도 문제다. 지난 9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가 인터뷰한 요양보호사의 말에 따르면, 요양보호사로서 얻는 수입이 한 달에 100만 원 수준 혹은 그 아래라고 한다. 그마저도 고용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다. 노인 돌봄에 대해 전문적으로 공부한 후 진심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른 직장에 갈 능력이 없어 노인의 집에서 집안일이나 해주는 아줌마들’ 정도다. 이 환경에서 제대로 된 노인 복지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바람일지 모르겠다.

세상은 젊은 사람을 좋아하고, 젊은 사람들만 보려 한다. 노인 인구가 아무리 늘어도, 그들은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미 식상하리만큼 수차례 있었던, 노인이 사용하기 어려운 키오스크에 대한 담론도 잠시뿐 사회는 뒤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발 빠르게 쫓아가 화려한 첨단 기술을 누리는 자들이 멋진 사람들이며, 사회는 그들의 뒷모습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뒤쳐진 이들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드라마나 영화 속 노인 캐릭터는 치매를 앓다 절절한 자식 사랑을 보여주고는 세상을 떠나는 등 몇몇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종종 감성을 자극하는 용도로 쓰이고 이내 잊히고 만다. 7명 중 1명이 노인인 세상에서, 노인이 중심인물로서 극을 이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양한 노인 캐릭터를 만들어 내기엔, 다양한 젊은 캐릭터에 대한 대중의 요구가 너무도 뜨겁다. 젊음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노인은 너무도 쉽게 지워진다.

사람들의 시선 끝에 노인이 머무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 많은 노인들이 바삐 돌아가는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지만, 노인 인구 증가 속도만큼은 바쁜 세상의 속도를 추월하고 있는 듯하다. 실종된 노인들은 거리를 배회하다 경찰을 만나 다시 집에 돌아갈 수 있지만, 실종된 ‘시선’은 언제쯤 7분의 1의 인구에 닿을 수 있을지 요원하다. 이 사회를 위해 어디를 응시해야 할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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