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 유행이란다. 과거 ‘채식주의’는 이효리나 이하늬 등 유명인의 ‘유별난 행보’로 언급될 뿐이었다. 채식주의 일종인 비건이 비로소 진지한 생활 형태로 다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2013년부터였다. “동물을 소비하지 마세요, 동물을 죽이지 마세요.” 꾸준히 공장식 축산업과 환경파괴 문제를 지적하고 그 존재감 을 알리더니 근 3년간은 ‘열풍’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한국채식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채식 인구가 2008년 15만 명에서 2018년 150만 명으로 약 10배 뛰었다고 하니 근거 없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비건은 이제 유별난 게 아니란다. 각종 프랜차이즈에서 비건 옵션을 마련하고 있고, 인터넷에 비건 제품도 잘 정리되어 있어 만두, 카레, 라면, 파스타 소스까지 비건으로 구매할 수 있다. 이 정도면 비건 해볼 만하지 않은가? 실제로 내가 이런 이유로 비건에 도전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6개월 동안 했다. 지금은 잠시 본가에 와서 비건을 안 하고 있지만, 독립하여 나만의 생활방식을 만들면 다시 비건으로 돌아갈 생각이다. 어쨌든 비건은 꽤 할 만하다.

반년 동안 비건을 지향하며 느낀 것은, 비건 열풍은 대형 프랜차이즈 사업과 수도권 지역에나 해당하는 이야기라는 거다. 가족들과 지방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주변에 비건 옵션이 있는 프랜차이즈가 없어서 일단 휴게소 에서 비빔밥을 시켰다. “고기 빼주세요” 했더니 조리실로 가란다. 조리사에게 말했더니 난감한 얼굴로 랩에 쌓여있는 비빔밥을 들고 이미 비빔밥이 세팅돼있어 고기를 빼기 어렵단다. 조리사와 몇 분의 실랑이 끝에 겨우 채소만 있는 비빔밥을 얻었다. 지방에서 비건은 여전히 유별난 사람이었다.

아직 비건이 우리 삶 구석구석에 자리 잡기까지 갈 길이 멀다. 비건은 흑당 밀크티나 민트 초코처럼 반짝 떠오르고 마는 ‘유행’이 아니었으면 한다. 비거니즘은 고기로 태어나 고기로 죽는 생명을 구하기 위한 행동이며, 인류가 환경과 공생 할 수 있는 실천이다. 소수만 외로이 지향하던 비건이 이제야 공감을 얻기 시작했는데 일시적인 트렌드로 끝내선 안 된다. 비건은 더 확대돼야 하고 주류 문화가 돼야 한다. 논 비건이 어디서나 메뉴를 고르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비건도 그래야 한다. 비건은 그럴 가치가 있다.

그래서 나는 ‘지속가능 비건’을 제시한다. 오래 지치지 않게 일상생활에 파고드는 비건. 이를 위해선 비거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 시기 비건의 허들을 낮춰야한다. 채식주의의 단계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동물성 재료를 모두 거부하는 ‘비건’ 유제품과 달걀까지 먹는 ‘락토-오보 베지테리언’ 등이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단계가 있으니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시작해 동물성 재료를 천천히 줄여나가면 된다. 뿐만 아니라 요즘엔 특정 요일에만 비건식을 하는 ‘요일 비건’, 동물성 제품이나 옷을 소비 하지 않는 ‘쓰는 비건’도 있다. 우리는 구조상 완벽한 비건은 될 수 없다. 성분을 다 검사해 볼 수도 없고 전 생산 과정을 지켜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인정하고 엄격한 비건보다 만만한 비건이 되어야 한다.

둘째, 비건과 논 비건이 함께해야 한다. 같이 여행도 다니고 채식 맛집도 가자. 어떤 이는 비건과 논 비건을 함께하기 어려운 존재로 여긴다. 이는 비건식이 논 비건인 음식보다 못하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물성 재료 없이 충분히 맛있는 맛을 낼 수 있다. 강릉으로 여행을 갔을 때, 도토리 비건 탕수육으로 논 비건 다섯 명과 비건 한 명이 모두 즐거운 식사를 했다. 논 비건과 맛있는 채식에 대한 경험을 함께하는 것은 비건에 대한 편견을 깨고 비건 수요를 늘리는 기회이다. 실제로 또 친한 친구는 콩단백으로 만든 부리또를 맛 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서서히 육식을 줄여도 되겠어.”

작년 버거킹, 롯데리아, 써브웨이에서 각각 대체육을 사용한 신메뉴를 선보였다. 하지만 롯데리아 리아미라클버거를 제외하고 반년도 안가 단종됐다. 이런 걸 보면 비건은 그냥 유행에 그치는 건가 싶다. 비건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비건이 지속가능 할 수 있게, 지속가능 비건이 되어 비건 메뉴를 한 번 소비해보고, 논 비건인 친구에게 추천해보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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