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내 삶은 몇 챕터 정도에 와있을까? 새해가 시작되고 모두가 신년 목표를 외치던 연초가 얼마 안 지난 것 같지만, 벌써 올해의 3분의 1이 지났다. 나는 뭐든 쉽게 싫증나고 재밌어 보여 시작한 것도 익숙해지면 지루해한다. 매일같이 ‘지겨워’를 연발하기에 ‘분기’, ‘새해’, ‘학기’와 같은 경계선들은 반가운 상징이다. 이 경계선을 만나면 지금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새 시작을 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경계선들은 새로움에 대한 설렘이었고, 설렘은 반복되는 일상을 이끌어나갈 원동력이 됐다. 이 원동력에 대한 갈망이 심화된 것은 대학교 때부터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매해 바뀌는 담임선생님과 교실, 반 친구들 덕에 신학기의 설렘을 주기적으로 맛보았다. 당장의 일상이 지루해질 즘이면 신학기의 설렘은 활기를 불어넣어줬다. 졸업 후에는, 변화가 많은 도시인 서울에서의 일상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있었다. 서울은 예상보다 더 화려했고 시시각각 변했다. 그러나 서울의 화려함엔 곧 익숙해졌다. 반년이 지나도 한 해가 지나도 대학생으로서의 일상에 매해 바뀌는 담임선생님, 교실, 반 친구들 같은 정기적인 변화는 없었다. 변화없는 삶이 만드는 지루함이 화려함을 향한 설렘를 지워버렸고, 쉽게 활기를 잃게 했다. 상경 전에 살던 ‘구미’보다 새로운 것이 수없이 많았지만 그 새로움은 설렘과 원동력이 되진 못한 것이다. 설렘과 원동력이 사라져 텅 빈 내 속은 조급함이 대신했다. 정체된 것만 같은 내 모습과 달리 큰 보폭으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동기들을 보며 차오른 감정뿐이었다. 나름대로 학생회 활동도 하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바쁘게 살았는데도 발전 없이 사는 기분만 내내 들었다. 머리 스타일을 바꾸면 하루하루가 설렐까, 안 가본 음식점에 가보면 좀 재밌을까, 그렇게 자그마한 설렘을 찾다보면 덩어리지고 재미없는 지금의 삶이 다채로운 일상이 될 수 있을까. 그때부터 내 삶에 구획을 짓는 경계선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며 ‘원동력’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올해는 경계 짓는 삶을 살기 힘든 조건에 놓여있다. 거주하고 있는 지역 학사의 방에 창문이 따로 없는 것이다. 작년에 살던 호실보다 쾌적하고 넓다는 이유로 환호성을 지르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햇빛이 들어올 창문이 없음을 알았다. 하루의 경계를 짓는 게 원동력을 얻는 것에 있어서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수업이 없는 날에 밖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있다보면, ‘지금 내가 시계로 보고있는 시간이 진짜 시간일까’라는 의심까지 든다. 사계절이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극야’ 현상을 체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학사 속 ‘극야’ 현상과 살다보니, 2022년의 챕터 1,2,3 같은 식으로 계속해서 새 목표를 세우고 하루를 되돌아보며 경계 짓는 등 경계선을 긋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눈에 확연히 들어왔다.

대처방안은 사실 많았다. 방 밖을 나가고, 알람을 맞추고, 시계를 열심히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내 하루의 경계선은 상실되지 않는다. 다만 의식적으로 경계 짓는 작업이 더 필요해졌을 뿐이다. 이 곳에 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경계 짓는 습관’은 내게 중요하다. 의식적으로 경계 짓고 활기를 불어넣는 삶이 없다면, 계속해서 싫증이 나 내 삶은 낮이 없이 항상 어두운 ‘극야’ 상태일 것이다. 언젠가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학기’라는 기준점마저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나는 ‘끊어살기’로 삶의 여러 챕터들을 돌아보는 작업을 앞으로 더 하면서 흥미로운 일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모든 것에 흥미를 쉽게 느끼지 못한다면, 그리고 다양한 것들을 해내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면 하루하루를 끊어사는 것에서부터 시작해보면 좋겠다. 경계 짓는 삶은 다른 사람과 나의 행복을 재단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전의 나에서 더 나은 삶, 더 흥미로운 일상을 회복하는 방법을 고찰하게 만든다. 이런 의미로 삶의 챕터도 하나하나 끊어가며 되돌아보고 사소한 새로움을 더해보면 좋겠다. 하다못해 2개월동안 방영되는 드라마도 16개의 챕터가 있는데, 20년 넘게 나로 살아오며 필요한 챕터는 몇 개일 것인가.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경계 짓는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물어보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드라마는 16개의 챕터가 있고, 각 드라마마다 이 챕터를 나누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처럼 삶을 끊어살고 경계 짓는 방식 또한 제각각이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한다거나, 새 친구를 사귄다거나. 혹은 월을 기준으로, 계절을 기준으로, 감명 깊었던 예술 콘텐츠를 접한 날을 기준으로 한다거나. 기준점은 제각각일 것이다.

나는 오늘 잠에 들기 전, 하루를 되돌아보며 하루를 경계 지을 것이고, 내일 아침 햇빛 대신 알람과 함께 일어나며 내일의 할 일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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