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얼굴과 사진 속의 얼굴은 꽤 다르다. 거울은 좌우가 바뀌고 사진은 렌즈에 의한 왜곡이 생긴다. 결국 두 얼굴은 눈으로 보이는 ‘진짜 얼굴’과도 다르며 우리는 자기 얼굴도 모르고 살아간다. 얼굴처럼 스스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자신이 누리고 있는 특권과 특혜가 그렇다. 특권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존재하기 때문에 그 정체를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대학에 가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지방에서 온 친구들이 생기고 다양한 꿈과 목표들을 만났다. 누구는 로스쿨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고 누구는 회계사가 되고 싶다고 했으며 누구는 작가가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모두 같은 대학의 재학생이라는 것이다. 대학에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사람들’은 모두 인정받는 졸업장을 갖게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학벌주의가 우리에게 주는 특권과 특혜는 발견하기 가장 어려운 것이 된다.

대학교 이전의 학교에 입학하며 받았던 축하와 대학교에 들어오며 듣는 입학 축하는 의미하는 바가 조금 다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올라갈 때는 한 단계 성장했음을 축하한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도 성장과 새 시작을 축하하긴 하지만, 그 축하에는 대학 입시의 성공을 축하하는 마음도 내포돼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이렇게 큰 의미가 있다. 이것 역시 학벌주의와 관련성이 있는 현상이다.

친구와 기대 초봉을 가지고 대화한 적이 있다. 친구는 내게 어느 정도의 초봉을 받길 기대하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긴 모르지만 4000만 원 정도 받게 되지 않을까 답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의 예상은 나와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가 들려준 그 친구 생각은 달랐다. 그는 지방에서 나고 자라 지방에서 사립대학을 나온 배경을 가지고 있는데 4000만 원의 기대 초봉은 현실을 모르는 것이라며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학벌주의의 모습이다. 누구는 당연하다는 듯이 기대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된다.

학벌주의는 학벌로 사람을 판단한다. 그 판단의 기준이 되는 학벌에는 능력은 포함돼있지 않다. 학벌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하는 가장 큰 착각이 이 부분이다. 학벌이 능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학벌이 좋다는 것은 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좋았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리고 통계상으로도 드러나듯이 고등학교 시절 좋은 성적을 거둔 사람들은 대부분 좋은 환경에 있었다. 그렇다면 학벌주의는 현재의 능력보다는 과거의 능력을, 그의 환경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셈이다.

학벌주의는 마케팅 수단이기도 하다. 연예인, 정치인 등 유명인들은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 자신의 학벌을 적극적으로 밝힌다. 자신의 학벌을 이용해 자신의 발언에 무게를 싣고,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가수의 능력은 노래를 잘하는 것이고, 정치인의 능력은 좋은 정치를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능력과는 별개로 대중들은 그들의 학벌을 기억한다.

이러한 평가 방식은 사회뿐만 아니라 개인의 발전에도 위협이 된다. 학벌주의가 만연한 사회에서, 출신 대학 이름을 제외한 실질적인 능력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대학 이름에만 집착하며 현실에 안주하면 더 이상 발전할 동력을 잃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라는 말처럼 대학 입시라는 절차를 거쳐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이전의 사고방식을 던져버려야 한다.

좋은 대학과 안 좋은 대학으로 서열을 나누고 이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평가에 발맞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노력하는 학생들. 이런 각 개인이 불순한 의도로 사회와 개인의 성장을 저해하기 위해 학벌주의를 옹호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학벌이 꽤 명확하고 확실하게 사람을 평가하는 간편한 기준이라는 것에 동의하기 때문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이런 간편한 방식을 채택하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하지만 이 글을 통해 강조하려는 것은 그게 간편할 뿐,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의식하자는 것이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나도 모르는 새에 불쑥불쑥 학벌주의가 녹아있는 말이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내 주변에는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친구가 가장 많고, 수업 시간마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라오신 교수님들을 만난다. 그래서 나는 학벌주의의 특혜를 입지 않는 삶을 상상하기도 어렵게 된다. 나의 비루한 상상력으로는 학벌주의로 차별받는 사람들에게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학벌주의의 폐해를 인지하고 옳지 않음을 항상 자각하는 것이 최소한의 노력임을 안다.

독자 여러분은 지금은 좋은 교육을 받고 있고 졸업 이후에는 평생 가는 학벌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분명히 알아둬야 할 것은 그 학벌이 개인과 사회에게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공정은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의제로 떠올랐다. 공정하기를 요구할 때, 어떤 공정이 진정한 공정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려는 길을 알고 갈 때 올바른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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