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이라는 SNS 계정이 있다. 말 그대로 그날 일을 하다가 사망한 노동자들의 부고 소식을 싣는 계정이다. 2021년 0월 0일 노동자 n명 사망, 그리고 사망 경위에 대한 짧은 한마디를 전하는 방식으로 매일 글이 업로드 된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단순한 숫자들의 통계 나열에 불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를 시작했다는 계정주는 2021년 1월부터 어느덧 439명의 죽음을 전달했다. 대학에 들어와 노동자의 입장에 있을 수 있는 나이가 되니, 나 또한 노동문제에 관심이 생겼다. SNS로 관련 글들을 찾던 와중 무심하게 이 계정을 팔로우 했던 기억이 난다.

근래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갈수록 노동자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매스컴에 제한적으로나마 알려진 굵직한 참사들, 그리고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 계정에 올라온 글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죽음을 접해왔다. 계정을 팔로우한 지도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바뀐 것은 죽은 노동자들의 신원 뿐인듯 하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사람들의 무관심이다. 김훈 작가가 말했듯, 죽음의 숫자가 너무 많아서 이러한 죽음들이 무의미한 숫자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게 가장 슬픈일이라 할 수 있다. 일하다 죽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리면, 이는 더이상 어떠한 울림이나 충격을 가져다 주지 못하고 사람들은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나아가 변화의 의지마저 잃게 되는데, 노동자의 죽음이 우리사회의 일종의 ‘상수’가 되기 때문이다.

이미 이러한 무관심은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2021년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했다. ‘오늘 일하다 죽은 노동자들’에 올라오는 부고 소식들 말고도 크게 매스컴을 탄 사건들도 많이 있었다. 이를테면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다 사망한 모 이커머스 회사의 직원들, 음식배달 서비스의 갑질로 자영업자가 자살한 사건, 모 대학의 청소노동자들이 죽은 사건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기사들은 언론사 사이트 메인에 몇 시간, 많으면 며칠 정도 걸리기는 했지만 그뿐이다. 그들의 죽음으로 인해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사람들은 연예계 가십 뉴스처럼 그저 노동자들의 죽음을 ‘해프닝’이라 기억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그 사람이 운이 나빴지 하고서 말이다.

고 홍정운 군의 사망사건 역시 같은 맥락에서 무척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18살 어린 나이에 안전장치 없이 일하다 하늘나라로 간 그에 대한 추모는 어린 학생이 사망한 일임에 도 생각보다 조용히 이뤄졌다. 노동자이기 이전에 학생, 미성년자인 그는 단지 특성화고에 다닌다는 이유로 노동자들과 같은 취급을 받았고, 같은 무관심 속으로 던져졌다. 이러한 무관심이 이어지니, 해당 사업장도 장례기간이 끝나자마자 재개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어린 학생, 노동자가 죽었음에도 단지 부품이 하나 빠진 듯이 사회가 굴러가는 게 가슴 아픈 현실이다. 명문대생, 의대생의 죽음이었어도 이런 반응이었을까? 사람의 목숨을 저울질 할 수 없고,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허울뿐인 말 같다. 홍정운 군의 사망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은 우리 사회가 목숨에 귀천을 나누고, 노동자들을 천대시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취약한 현장에서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부당한 관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문제의 회사들을 이용하고, 언론 메인에서 내려지면 같이 기억에서 지운다. 자신의 직장에서 일어날 수도 있는, 자신의 동료나 가족이 당할 수도, 혹은 자신이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자신과 거리를 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진정 본인의 일이라면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을까. 진정 이 모든 것이 나와 거리가 먼 일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노동자들의 죽음의 원인은 잘못된 시스템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관심을 갖게 되면 공감을 할 수 있고, 공감을 하게 되면 행동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그래서 나는 기억할 것이다. 비록 내 기억이 무언가 큰 변화를 이루리란 보장은 없을지 언정. 그리고 많이들 기억해줬으면 한다. 사람 위에 돈이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에 밑거름이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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