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병에 걸린 적 있나. ‘내가 뭐라고’ 병은 ‘내가 뭐라고’ 이런 도전을 하나, ‘내가 뭐라고’ 이 호사를 누리나, ‘내가 뭐라고’ 이 어려운 시험을 통과할 거라고 믿나 등등 다양한 변이를 가지고 있는 아주 악독한 병이다. 이 병에 익숙하고 환절기 감기처럼 자주 겪는 사람으로서 이 병으로 끙끙 앓고 있는 이들에게 가벼운 비타민 같은 글을 남겨보고자 한다.

티켓팅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대개 티켓팅 실력은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 인내심으로 구성된다. 나는 앞의 둘 다 그다지 좋지 않은데 공연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긴장되고, 긴장하면 할수록 더 실력이 떨어진다. 티켓팅에 실패하면 이젠 인내심이 발동할 때다. 자리가 나올 때까지 버티고 버틴다. 시간이 길어질수록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내가 뭐라고’ 병에 걸리면, 반대로 ‘내가 뭐라고 쉽게 될 거라고 생각했나’하는 회의감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뭐라고’ 병은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지는 시기에 온다. 앞선 티켓팅의 예시에서는 자신의 동체 시력과 반응속도, 인내심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찾아온다. 운이 안 좋았던 것일 수도 암표상이 많이 붙어서일 수도 있는데 자꾸 자신의 부족한 점을 되짚게 된다. 물론 자기 성찰 자체는 긍정적이지만, 도가 넘으면 자기 자신을 의심하고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다.

특히 지독한 점은 도전할 때마다 재발해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동아리에 지원서를 넣을 때 가지게 된 ‘내가 뭐라고’ 병이 이후 회사에 지원서를 넣을 때 다시 발병하기도 한다. 실패의 경험을 비료 삼아 성장한 병은 나중엔 단순한 가지치기로는 해결되지 않는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을 남긴다.

흔히 알려진 치료제는 사회적 인정을 동반하는 큰 성공이다. 내가 가지고 있던 부족을 뛰어넘어 객관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만들어냈을 때, 자신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사회적 성공이 꼭 치료를 장담하지도 않을뿐더러, 한 번 성공 후 재발하면 더 높은 성공을 통해서만 치료하려 하니 몸과 마음이 다친다. 주변의 칭찬과 격려에도 자라난 자신에 대한 의심은 뿌리 뽑기 어렵다.

그래서 내가 추천하고픈 치료제는 3가지다. 첫 번째는 작은 성공 매일 하기다. 큰 성
공으론 치료가 안 된다더니 또 성공이냐고? 앞의 성공과 달리 이 작은 성공들은 내가 나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체크 리스트의 체크 표시나 문제집의 동그라미 같은 작은 확인 표시는 자신의 능력을 다시 확인하게 한다. 나는 다음날의 일과를 시간 순서대로 그 전날에 미리 정리해서 적어두고 당일에 진행 상황을 확인한다. 이 과정은 실패 확률을 낮출 뿐만 아니라 체크하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두 번째는 분기별 도전과제 만들기다. 1년을 크게 4개의 분기로 나눠서 게임의 퀘스트처럼 도전과제를 만들고 그에 매력적인 보상을 거는 것이다. 나는 작년 휴학을 하면서 1학기 인턴, 여름 계절학기, 2학기 유튜브, 겨울 계절학기의 도전과제를 진행했다. 결과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더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됐다. 중간 보상으로 산 카메라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세 번째는 적당히 세상 탓하기다. 생각보다 많은 일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티켓팅을 하다가 서버가 터졌는데, 자신의 고물 컴퓨터와 그걸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지갑 사정을 탓하진 않을 것이다. 구멍가게만한 서버를 열고 장사한 회사 탓을 하거나, 불법 프로그램을 쓰는 암표상을 잡지 않고 방치한 이들의 잘못을 물을 것이다. 동아리에서 회사에서 떨어지더라도 그저 유능한 이를 알아보지 못한 것뿐이다.

프리기아의 왕 고르디우스의 전차 매듭에 그것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신탁이 내려왔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매듭을 풀지 못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가 나타나 매듭을 푸는 대신 칼로 자르고 그 예언을 이루지만, 곧 제국이 분열되고 만다. 물론 잘라내는 것은 통쾌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매듭을 잘라버리면 우리는 그 매듭이 어떻게 묶여있었는지 다시 확인할 수도 없고, 직접 풀어볼 기회도 잃게 된다.

위의 세 방법은 모두 단숨에 매듭을 자르기보다는 시간을 들여가며 푸는 것이다. ‘내가 뭐라고’ 병이 남긴 두려움이라는 매듭을 직접보고 만지며 살펴보자. 꼬인 부분을 찾고 자신의 손으로 풀어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기자신의 진정한 지배자가 된다. 작은 성공과 행복을 통해 ‘그까짓게 뭐’라고 생각하며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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