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덕성의 기준이 불쾌감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관점에서 ‘잘’ 나온 사진은 사람에게 불쾌감이 아닌 쾌감을 선사하는 사진이다. 사진을 찍은 사람, 사진에 찍힌 사람, 또 사진을 보는 사람이 긍정적인 느낌을 받을 때 그 사진이 ‘좋은 사진’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보도사진을 찍다 보면 이 명쾌한 기준에 의문이 생긴다.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사실을 왜곡 없이 전달할 의무를 갖는다. 사진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해서는 안 된다. 이 원칙은 누가 봐도 당연하게 느껴질 것이다. 가끔 이 당연한 원칙이 딜레마를 안겨주는 상황이 있다. 인물사진을 보정하면서 때때로 이 딜레마가 찾아온다.

사진기자로 활동한 첫 학기에 취재원과 사진 보정의 정도를 두고 실랑이를 겪었다. 당시 취재원은 사진에 찍힌 자기 얼굴이 너무 부어 보인다며 눈을 키우고, 얼굴을 줄이는 등의 보정을 요구했다. 사실 그대로를 왜곡하지 않고 보도한다는 원칙을 기준으로 이 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였다. 나는 취재원이 불가능한 요구를 한다고 생각했고, 화가 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사진기자로 살아간 지 세 학기를 꽉 채워가는 지금은 그런 요구를 받을 때 보도 사진의 원칙을 설명하고 취재원을 설득하는 등 잘 대처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오히려 취재원은 아무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한다. 사진은 어떤 렌즈로 촬영했는지, 촬영 현장의 조명은 어땠는지 등 다양한 요소에 따라서 다양한 결과물이 나온다. 같은 사람이라도 어두운 곳에서 촬영하면 얼굴이 노랗게 나올 수도, 밝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면 하얗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럼 보정을 하는 나는 어두운 실내에서 찍힌 결과물을 가지고 최대한 ‘하얗고 예쁜’ 얼굴을 만들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글의 시작에서 언급한 나의 ‘좋은 사진’ 기준에 따르면 많은 보정으로 최대한 미형의 얼굴을 만들어 내는 것이 좋은 사진이다. 그것이 찍힌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호평받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길을 택하지 않는 것은 보도 윤리뿐만 아니라 사회적 맥락도 고려한 결과다.

인터뷰 촬영에 가면 “보정도 해주시나요?”. “피부도 만져주시나요?”하는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런 질문의 뒷면에는 사회에 만연한 외모지상주의, 루키즘(Lookism)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을 숭배하고 못생긴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사회의 당연한 규칙처럼 착용되고 있다. 사진 속의 자기 모습이 예쁘길 바라는 것은 취재원 개인만의 성향보다는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학습해온 결과일 것이다.

맛있는 식사를 하거나 멋진 풍경이 있는 곳에 여행을 갈 때. 혹은 대단할 것 없이 아주 소소한 일상을 보내면서도 사진을 찍는 것은 우리의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우리는 사진 잘 나오는 꿀팁, 인스타 여신의 보정법 같은 정보가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만큼 사진은 우리의 삶에 중요하게 자리 잡았다.

특히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찍는 것’에서 ‘보여주는 것’으로 그 위치를 이동시켰다.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해진 사회에서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지 걱정하는 것은 개인으로서 당연한 마음이다. 보정된 모습에 익숙해진 사람은 낯설어져 버린 실제 모습을 부정하고 미워하게 된다. 그걸 알게 된 때부터 나는 사진에 많은 보정을 바라는 취재원을 만나도 작년처럼 속상해하지 않는다.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지다 보니 ‘셀기꾼(셀카 사기꾼)’에 이어 코로나 시국 속 ‘마기꾼(마스크 사기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런 신조어의 배경에는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는 것에 대한 평가가 깔려있다. 사람들이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습관은 결국 자기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데에 이르러 스스로를 병들게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마스크 착용 기준이 완화되고 있는 요즘, ‘마스크 벗기 두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온다. 마스크를 착용하던 동안 외모 평가에서 벗어날 수 있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누렸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 스스로가 ‘마기꾼’이기 때문에 마스크를 벗는 것이 두렵다고도 한다. 상대방의 외모에 대한 불필요한 평가를 멈춰야 마스크가 필요 없어져 가는 세상에서 정말 마스크 없이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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