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배들의 비아냥을 매일같이 들으면서도 공강이면 중도에 가서 그날 들은 수업 내용을 바로바로 정리했고, 학점을 관리하느라 재수강과 계절학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동아리마저 이력서에 쓰기 좋은 것들로 매년 바꿔가며 가입했고, 방학이면 괜찮은 아르바이트와 잘나가는 기업의 업무와 관련 있는 대외 활동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 와서 끼와 개성, 창의성을 펼치라니.”

장류진의 ‘펀펀 페스티벌’에서 주인공은 대기업 합숙 면접 마지막 관문으로 팀원들과 공연 무대를 꾸며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갖은 노력으로 온갖 스펙을 쌓아놨더니 이제는 처음 만난 사람들과 장기자랑까지 해야 한단다. 기가 차는 것도 잠시, 주인공은 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제멋대로에 협동심도 딱히 좋지 않은 팀원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우여곡절 끝에 주인공은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친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웬걸, 예비번호도 없는 불합격 통보다. 

제 밥그릇 하나 챙겨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한 문체로 읽고 나니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서늘했다. 현시점 나는 반년의 휴학으로 졸업이 한 학기 늦춰진 4학년 학생으로, 수료 학기는 1학기밖에 남지 않은 상황. 유달리 뺀질거리며 1학년을 보낸 덕에 넙죽 추가학기까지 다닌다고 하더라도 이화에서 보낼 시간은 고작 1년 정도다. 

미래에 대한 고민이 급작스레 엄습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되레 은밀하고도 교묘히, 나지막하면서도 강렬히 그리고 꾸준히 삶에 침투해왔다. 현실감각이 뛰어난 친구들은 하나둘씩 미래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대기업 서포터즈부터 봉사활동, 학회, 공모전까지 마치 게임 아이템을 장착하듯 척척 이뤄냈다. 그것이 아니라면 전문직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자발적 유배를 택한 친구들도 있다. 각자의 방식으로 다들 생존전략을 모색하느라 바쁜 실정이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21세기를 ‘액체 근대’의 시대로 정의했다. 고형적인 국면 대신 유동하는 액체적 국면이 절대적인 시대. 개개인을 이어주는 유대 관계는 해체되고 사회는 개인화된다. 이로 인해 구체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없는 공포가 삶에 스며들고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무기로 빈약한 개인의 자원을 쌓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개인의 자원, 그것을 현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면 곧 스펙이다.

사실 스펙 쌓기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수시 선발 확대로 중고등학생때부터 생활기록부를 위해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것이 권고됐으며, 학생들은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길 강요받았다. 스펙이 적은 학생은 불성실한 학생, 게으른 학생으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더러 발생했다. 사람들은 연대 대신 경쟁을 택했고, 성과를 중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키웠다.

그러나 지나친 성과중심주의 사회는 구성원들의 자기 착취 구조로 이어진다. 개인의 실패가 노력 부족으로 인한 결과임을 강조하는 사회는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자신을 혹사시키며 역설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사람들은 단 1분 1초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압박에 시달리며, ‘잉여인간’으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쳇바퀴를 굴리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력하는 모두가 왕관을 얻을 수는 없다. 누군가는 뒤처지는 것이 애석하게도 사회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뒤처지는 쪽이 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것이 현 시대 청년들의 모습이다.

이번 학기를 마치고 두 학기를 더 수료하면 나는 비상경 인문계열 전공 졸업생이 된
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나서기에 충분한 스펙을 갖춘걸까. 하루도 바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모두가 그럴 것이다.

아직 나아갈 길은 아득하지만, 하루하루 살아내면 괜찮을 것이라 믿고 오늘도 최선
을 다해본다. 더불어 지금 이순간도 빛나는 미래를 위해 어디선가 땀흘리고 있을 청춘들에게 응원을 전하고 싶다. 분주히 쌓아 올린 스펙만큼이나 찬란한 기억도 양껏 비축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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